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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황감독을 위하여 … ” 끌어주면 따라주는 ‘팔로어십’이 원동력

중앙선데이 2011.05.22 02:34 219호 20면 지면보기
황성홍 감독이 5월 15일 열린 전북 현대와의 홈경기에서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포항은 전북에 먼저 2골을 내주고도 3-2로 역전승했다. [포항 스틸러스 제공]
‘감독’ 황선홍(43·포항 스틸러스)이 재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15개 팀 중 9위에 그쳤던 포항은 올 시즌을 앞두고 ‘프랜차이즈 스타’ 황선홍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10경기를 치른 현재 포항은 K-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K-리그 선두 질주 포항 전력의 비밀

황 감독의 성적표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는 2008년부터 3년간 부산 아이파크를 이끌며 K-리그에서 20번 이기는 동안 24번 비기고 38번 졌다. 그를 향한 평가는 이렇게 바뀌었다. “황 감독이 3년간 부산에서 고생하더니 팀 운영에 눈을 뜬 것 같다. 요즘 포항이 잘나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의 칭찬이다.

조직에 미치는 영향력 80~90%는 팔로어십
하지만 정작 황선홍을 빛나게 하는 것은 그의 리더십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선수들의 팔로어십이라는 분석이 있다. 일본의 리더십 전문가 요시다 덴세는 조직을 성공으로 이끄는 리더십&팔로어십에서 팔로어십을 이렇게 정의했다.

‘리더의 지시를 따르고 그를 도와 조직의 긍정적인 발전을 유도하는 사람들을 ‘팔로어(Follower)’라고 칭하고, 그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성향이나 행동방식, 사고체계 등을 ‘팔로어십(Followership)’이라 한다.’

팔로어십의 중요성을 처음 포착한 인물은 미국 카네기멜런대 로버트 켈리 교수다. 그는 “조직의 업적에 미치는 영향력 중 80~90%는 팔로어의 것이고, 10~20%가 리더의 것”이라고 말했다. 요시다는 “리더의 평가는 팔로어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팔로어십은 리더십에 영향을 미쳐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다. 리더의 힘이 부족하더라도 팔로어가 힘을 내면 조금씩 리더가 제 기능을 하게 된다. 리더가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하면 팔로어가 힘을 발휘하기도 점점 쉬워진다.

베테랑 중용 “역사를 새로 써라”
올 시즌 포항이 줄곧 K-리그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는 바탕에는 이 같은 선순환 구조가 있다. 포항 선수들은 경기 전 “감독님께 승리를 선물하고 싶다” “감독님을 활짝 웃게 해 드리고 싶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이러한 마음은 골뒤풀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노병준(32)은 성남과 개막전에서 1-1로 맞선 후반 막판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황 감독의 포항 사령탑 데뷔전 승리가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음 경기에서 바로 만회했다. 전남과 경기에서 아사모아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한 뒤 황 감독에게 달려가 그를 껴안았다. 노병준은 “골을 넣으면 큰절을 하려 했다. 도움을 기록해서 포옹 세리머니로 바꿨다. 감독님께서 안아주시는데 따뜻함이 느껴졌다. 지난 경기 실수를 용서받은 기분이 들었다”며 웃었다. 김재성(28)은 “감독님 웃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기뻤다”고 말했다.
팔로어십이 처음부터 강했던 것은 아니었다. 부산 사령탑 시절 황 감독이 ‘선수들을 타이트하게 관리한다’ ‘훈련량이 많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장 김형일(27)은 “소문 때문에 긴장을 많이 했다. 그동안 파리아스·레모스 등 외국인 사령탑 아래서 자율적으로 운동했기 때문이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기우였다. 그는 “감독님께서 선수 개개인의 장점을 끌어내 주신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 큰 힘이 난다. 감독님은 어린 시절 포항의 레전드이자 나의 우상이었다. 감독님을 중심으로 우리가 단합이 되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필드 플레이어 최고령 선수 김기동(40)은 황 감독의 믿음 덕분에 11일 경남과의 경기에서 K-리그 최고령 득점 기록(39세3개월30일)을 새로 썼다. 황 감독은 “기동이가 포항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주길 바란다. 세대교체도 중요하지만 베테랑이 역사를 쓰는 장면도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13경기에 출전해 한 개의 공격포인트도 얻지 못했던 그는 올 시즌 9경기에 나와 2골·1도움을 기록 중이다.

황 감독, 꼼꼼한 메모로 선수와 소통
황 감독은 어떤 리더십으로 선수들의 팔로어십을 끌어내고 있을까. 그는 홍명보(42·올림픽팀 감독)·신태용(41·성남 감독)과 함께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젊은 지도자다. 흔히 말하는 ‘형님 리더십’의 소유자다.

성격은 꼼꼼하고 섬세하다. 수시로 생각을 메모해 전술을 짜는 데 반영한다. 황 감독은 스틸야드(포항 홈구장)에 도착하면 선수보다 먼저 라커룸으로 향한다. 바로 펜을 잡고 칠판 빼곡히 메모를 적는다. 경기 중에도 벤치에서 끊임없이 메모한다. 그는 “전반전을 보며 중요한 점 4~5가지를 정리한다”고 말했다. “생각만 하고 있으면 중요한 것을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선수들에게 애매하게 지시를 할 수도 있어 메모를 한다”고 그는 말했다. 황 감독은 경기 중 적은 메모를 부산 시절부터 한 장도 빼지 않고 모아두고 있다.

선수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자부심이다. 라커룸 칠판에 가장 먼저 쓰는 문구가 “우리는 포항이다-(자긍심)”이다. 8일 부산에 정규리그 첫 패배를 당했다. 고개를 숙이고 벤치로 돌아오는 선수들에게 황 감독은 “우리는 졌을 때도 당당해야 한다. 고개를 들어라”고 말했다.

팔로어십을 잘 활용한 사례로 꼽히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선거 유세와 황 감독의 말에는 공통점이 있다. 오바마는 당시 ‘We(우리)’라는 주어로 말을 시작했다. 민주당 경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I(나)’를 주어로 말한 것과 대조적이다. 오바마는 “Yes, We can(우리는 할 수 있다)”이라는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리는 포항이다”라며 자긍심을 강조하는 황 감독과 닮았다. 김형일은 “감독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마다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다른 어떤 감독이 같은 말을 하더라도 ‘황선홍’이 주는 느낌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올 시즌 포항은 비기거나 진 다음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다. 포철공고 출신의 토박이 스타 황진성(27)은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놓친 다음 날에도 훈련 분위기는 늘 경쾌했다. 안 좋은 기분은 빨리 잊는다. 대신 실수한 장면은 잊지 않고 훈련 때 더욱 집중한다. 이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맨유에서 활약하는 박지성(30)도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맨유에서 패배는 감출수록 악화된다는 것을 배웠다. 실수를 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하고 파괴할 수 없는 이 정신을 맨유에서는 위닝 멘털리티(winning mentality)라고 부른다”고 했다. 포항의 상승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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