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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시대 열어 인류 역사 바꿔, 노벨상 2번 수상 진기록

중앙선데이 2011.05.22 02:16 219호 32면 지면보기
2003년 발행된 존 바딘 기념우표.
노벨상 역사가 110년이다. 아직 한국엔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없다. 그런데 과학자 중엔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사람이 4명이나 있다.

권기균의 과학과 문화 트랜지스터 발명자 존 바딘

우선 마리 퀴리다. 그녀는 1903년 남편 피에르 퀴리와 ‘라듐 및 폴로늄의 방사능 발견’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1906년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마리 퀴리는 혼자 연구를 계속했다. 그 결과 1911년 ‘순수 라듐 발견’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다음은 미국의 라이너스 폴링. 54년 ‘화학 결합에 관한 연구’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62년 ‘핵무기의 국제적 통제와 핵실험 반대운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영국의 프레더릭 생어는 58년 ‘단백질·인슐린의 구조’에 관한 연구로, 80년 ‘핵산의 염기 배열(DNA)에 관한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또 한 사람은 미국의 존 바딘(사진). 56년 반도체 연구와 트랜지스터 발명으로 벨 연구소의 동료 윌리엄 쇼클리, 월터 브래튼과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리고 72년엔 초전도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을 제시해 제자인 리언 쿠퍼와 대학원생 존 슈리퍼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 세 사람 이름의 머리글자를 따서 그의 초전도체 이론을 BCS(Bardeen, Cooper, Schrieffer)이론이라고 한다.

트랜지스터는 실리콘이나 게르마늄 같은 반도체로 만든 ‘다리가 3개 달린’ 전자 소자다. 트랜지스터 발명은 반도체 시대를 열어 인류 역사를 바꿨다. 오늘날 컴퓨터를 비롯한 첨단 전자공학의 경박단소(輕薄短小) 대용량 기술들은 모두 반도체의 발달과 관련 있다.

위대한 발명은 연구에 몰입하다 발생한 뜻하지 않은 실수의 해결책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트랜지스터의 경우도 그렇다. 트랜지스터 개발로 바딘과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브래튼은 실험의 달인이었는데 어느 날 실수를 했다. 회로 실험에서 접점 역할을 하는 텅스텐 바늘이 건드리면 안 되는 부분을 건드리는 바람에 큰 스파크가 생겨 회로가 망가져 버렸다. 그런데 이 스파크가 생길 때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전류 증폭 현상이 일어났다. 이것으로 트랜지스터 발명의 실마리가 풀렸다.

공동 수상자 쇼클리는 트랜지스터 개발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다. 진공관을 대체하는 반도체의 개념을 처음 생각해낸 천재다. 또 핵분열의 연쇄 반응 속도 조절로 두 달 만에 세계 최초의 원자로를 설계한 사람이다. 샌타클래라에 트랜지스터 상용화를 위해 사상 최초의 반도체 회사를 설립해 ‘실리콘 밸리’의 역사를 시작한 사람이기도 하다. 너무 머리가 좋아 그의 부모들은 여덟 살까지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가르쳤다.

쇼클리는 인재 발굴에도 천재였다. 존 바딘을 45년 벨 연구소로 영입했고, 세계 최대의 반도체 칩 메이커인 인텔을 설립한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도 쇼클리의 반도체 사업에 영입됐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쇼클리는 성격이 괴팍하고 독선적이었다. 인구 문제를 우생학적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며 상원의원에 출마했다가 8명 중 꼴찌를 했다.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사업은 실패했다. 명예도 다 잃었다. 그가 영입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떠났다. 한때 그를 ‘반도체의 아버지’라고 불렀는데, 지금 반도체 관계자들은 그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존 바딘도 천재였는데 쇼클리와는 좀 달랐다. 1908년 5월 23일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태어난 바딘은 초등학교 3학년에서 바로 중학교로 월반하고, 13세에 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마쳤다. 16세 때 위스콘신대에 입학해 28세에 박사가 됐다. 위스콘신대 석사, 프린스턴대 박사, 하버드대 박사 후 과정 동안에는 디랙, 하이젠베르크, 유진 위그너, 반 블랙 등 노벨상 수상자들 밑에서 배웠고, 양자 역학과 반도체 이론에 관한 충분한 지식을 얻었다. 벨 연구소에서 트랜지스터를 개발한 후 쇼클리와의 불편한 관계로 일리노이대 교수로 옮겨서는 초전도 현상을 열정적으로 연구했다.

바딘의 노벨상 수상에는 ‘그의 인품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56년 노벨상 시상식에 그는 아내와 딸만 데리고 참석했다. 하버드대에 다니는 두 아들은 공부에 방해될까 데려가지 않았다. 시상식 뒤 기념 만찬장에서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6세가 “왜 가족들을 다 데리고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얼떨결에 “다음번 시상식엔 꼭 같이 오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그 말이 사실이 됐다. 72년 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2002년 바딘의 전기가 발간됐다. 제목이 진정한 천재(True Genius)였다. 2006년 쇼클리의 전기가 발간됐다. 제목은 꺾인 천재(Broken Genius). 두 천재 과학자의 삶에 관한 대조적 평가다. 두 사람의 삶은 과학적 천재성과 관계없이 남을 배려하는 인성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미국 정부는 과학자 바딘을 기려 2008년 3월 바딘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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