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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도전과 노력이다

중앙선데이 2011.05.22 02:09 219호 34면 지면보기
고인 물이 되기보다는 흐르는 강물이 되고 싶었다. 24년 전 한국에서 내 이름으로 브랜드를 론칭해 자리를 잡았지만 뉴욕 컬렉션에 도전한 건 그 때문이었다.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을 생각한 건 2006년 프랑스의 캐주얼 의류 전시회 ‘WHO’S NEXT’에 초청받았을 때였다. 당시에 나는 외국인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단독 초청을 받았는데 파리에서의 쇼는 성공적이었다. 그러자 한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과 함께 “내친김에 정상까지 올라가 보자”는 의지가 솟구쳤다.

뉴욕에 진출하겠다고 밝히자 주변의 걱정과 우려가 많았다. 나도 부담감이 적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더 큰 무대에 오르는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후배들에게 새로운 길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내가 직접 부딪혀보고 그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이렇게 단단히 마음을 먹고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자 부담감은 점점 사라지고 설렘과 기대감이 커졌다.

지난 2월 17일 뉴욕 링컨센터에 내 이름이 걸렸고 마침내 컬렉션 피날레 무대에 섰다. 지난 20여 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의 도전과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더 기뻤던 것은 세계 무대에 서게 됨으로써 대한민국 패션 산업의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한국 패션은 그동안 패션 선진 국가들에 몇 발자국 뒤처져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눈부시게 성장했다. 중견 디자이너들의 안정되고 힘 있는 컬렉션과 신진 디자이너들의 신선한 쇼가 어우러져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한국 디자이너의 해외 진출이 줄을 이으면서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뉴욕에서 내게 쏟아지는 언론의 관심을 보면서 한국 패션에 대한 인식이 확실히 달라졌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최고의 경쟁력이 뭘까. 그건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이다. 디자이너의 독창적인 아이덴티티와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세계인과 마주해야 한다. 하지만 세계 무대에서는 디자이너 개인의 실력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뭔가가 있다. 탄탄한 기획력과 추진력, 현지 고급 인력의 네트워크는 물론 패션을 국가의 대표 산업으로 ‘브랜드화’하기 위한 지원이다. 뉴욕의 패션 산업은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뉴욕 패션위크’라는 대규모 글로벌 행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현지의 에이전시, 모델, 스태프 등은 일사불란했다. 뉴욕시는 아낌없이 지원했다. 디자이너의 역량과 이를 뒷받침하는 지원시스템이 둥근 원으로 선순환을 이루는 것, 나는 뉴욕에서 그걸 봤다. 우리의 미래도 그렇게 가야 한다.

패션계는 새로움에 대해 언제나 개방적이고 호의적이다. 그러나 신선함을 잃는 순간 가혹하리만치 냉담해지는 곳도 바로 패션계다. 한발 늦었지만 도약을 시작한 우리 패션 산업이 냉혹한 세계 무대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길 기대한다. 뉴욕에서 갖게 된 나의 새로운 꿈이다.



손정완 숙명여대 산업공예과 졸업. 1987년 서울 압구정동에 숍을 낸 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연매출이 400억원에 이르는 성공한 디자이너다. 2005년 올해의 디자이너상을 받았고 올해 2월 뉴욕 패션 위크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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