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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것을 두려워 말라

중앙선데이 2011.05.22 02:06 219호 35면 지면보기
낯선 것을 두려워하는 성향은 누구나 지니고 있다. 하지만 다른 문화에 비해 낯선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특히 더 강한 문화는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네덜란드 학자 호프슈테드가 구분한 문화 차원에서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 강한 문화가 바로 이런 문화다.

한국은 조사된 세계 74개국 중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 23위로 높게 나타났다.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 낮은 대표적인 나라는 싱가포르·덴마크·스웨덴 등이다. 불확실성을 회피하려는 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다양성을 수용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에 맞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 큰 문화에는 일단 규칙이 많다. 규칙과 틀이 없으면 불안해하기 때문에 모든 영역에 규제와 감독이 많다. 이런 규제와 감독으로 인해 새로운 일을 추진하는 데 제약을 받는다.
또한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낯선 것을 호기심 있게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기보다 ‘내게 해가 되지 않을까, 기존의 질서를 흔들어놓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에서 피하고 싶어한다.

이로 인해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되기 어려워진다.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곧 적이 돼버린다. 따라서 내(內)집단 편애와 외(外)집단 배척이 합해진 토론 양극화나 정실인사가 쉽게 행해지곤 한다. 능력 있다고 판단되는 인물도 내부 사람들에게 낯선 사람이라면 채용을 꺼리게 된다.

유사한 이유로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 높은 문화에는 집단 간 갈등이 많다. 외국인에게 불친절하고 이주민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이념적·종교적·정치적 이견(異見)에 대한 인내력이 적고, 네 편과 내 편을 나누기 좋아한다. 집단 따돌림 현상도 그중 하나다.

경계 밖에 대한 두려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불안지수가 높기 때문에 그만큼 행복지수가 떨어진다. 교육에서도 틀에 짜인 학습상황을 더 편하게 생각하며, 너무 큰 자율성이 주어지면 오히려 불안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정답 찾는 교육에 더 익숙하다. 먼저 틀을 제시해 주어야 안심을 한다. 틀이 주어지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불확실한 상황이 올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화제가 되었던 ‘엘리트의 낯선 좌절’로 인한 자살 신드롬도 엘리트가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그래서 익숙하지 않은 ‘좌절’이라는 상황이 낯설게 다가왔을 때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생긴 결과일 수 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때 불확실함이나 낯선 것에 대한 인내력은 더욱 감소되고, 이러한 불안심리는 개인 내부에서 증폭되거나 사회 속으로 더 확대되기도 한다.

오랜 세월 뿌리 내려 온 문화적 특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미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나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그들의 다양한 행동, ‘지금까지와는 다른’ 가치관의 등장과 기술의 발달 등을 끊임없이 수용해 가야 하는 초고속 변화와 융합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익숙한 상황에만 안주해 있기에는 익숙한 것들이 너무나 빨리 낯선 것들로 대치되어 가는 시대인 것이다.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려면 어릴 때부터 다양한 세계를 경험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물리적으로 몸만 해외 연수를 다녀온다고 해서 경험이 확장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곳에서 어떤 것을 경험하든, 낯선 것을 위험하게 생각하기보다 ‘새로운 것’을 더 알아간다는 마음으로, ‘나’라는 영역 속에 들어오는 범위를 더 확장시킨다는 마음으로 바라볼 때 그 경험이 진정한 불확실성 수용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물리적 개방을 넘어 심리적 개방에도 노력을 기울일 때다. 자기집단 중심 폐쇄주의를 극복하고 의견이 다른 사람, 외모나 행동이 다른 사람들까지 적극 포용할 수 있는 문화가 미래의 발전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은영 서울대 학사·석사, 예일대 사회심리학 박사. 서강대 대외협력처장 역임. 최근 저서 『미디어심리학』이 한국방송학회 저술 부문 학술상을 받
았으며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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