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울시는 펜디를 알았을까

중앙선데이 2011.05.22 02:04 219호 28면 지면보기
새빛둥둥섬(플로팅 아일랜드)에선 펜디의 쇼가 열릴 수 있을까. 다음 달 2일 이곳에서 열리기로 한 모피 의류가 포함된 패션쇼(FENDI on Han River)를 두고 논란이 뜨거웠다. 서울시는 “동물 학대에 대한 사회적 반감 때문에 모피를 빼고 패션쇼를 열어 달라”고, 펜디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여론은 ‘서울시 잘못’이라는 쪽으로 흐르는 듯하다. 서울시의 주먹구구식 일처리를 문제 삼는 것이다.

스타일 인사이드

그런데 좀 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과연 서울시 실무자들이 펜디와 협의를 하면서 상대에 대해 정확히 이해는 했을까.

펜디는 모피 디자인의 선구자다. 펜디 하면 ‘더블 F’ 로고와 1997년 한 해에만 10만 개 넘게 팔린 바게트백이 떠오르겠지만, 출발은 작은 모피회사였다. 1925년 에두아르도 펜디와 아델 펜디 부부는 이탈리아 로마에 가죽과 모피 매장을 열었다. 다섯 딸들이 가업을 이어받았는데, 이들은 65년 젊은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를 만나게 된다. 이 만남은 모피의 혁신을 불러왔다. 기존의 모피 의류는 무겁고 커다란 신분의 상징이었다. 여기에 펜디는 스타일을 입혔다. 가볍고 부드럽게 만들었고, 염색과 커팅을 통해 모피를 패셔너블한 아이템으로 바꿨다.

오페라 애호가였던 펜디가(家) 자매들은 무대의상으로 공연에 기여했다. 86년 ‘라 트라비아타’에선 소프라노 카바이반스카가 펜디의 핑크 퍼(fur) 망토를 입었고, 86년 베로나의 아레나 극장에서 공연된 ‘카르멘’엔 무려 60벌 이상의 의상이 등장했다. 영역은 영화로도 넓어져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순수의 시대’에서 미셸 파이퍼가, ‘에비타’에서 마돈나가, ‘로열 테넌바움’에서 귀네스 팰트로가 입었던 퍼코트(사진)도 펜디였다.

새빛둥둥섬은 오세훈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역점 사업이다. 서울시는 행사를 잘 치르고 싶었을 거다. 그런데 동물보호단체가 시위를 벌이겠다고 하니 일단 피하자고 생각한 건 아닐까. 서울시의 이해 수준을 의심케 하는 ‘모피 빼고 패션쇼’ 요청도 이 연장선에서 나온 것 같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모든 걸 보여줘야 하는 쇼에서 펜디의 모피는 그냥 넣고 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서울시는 미처 생각 못한 것 같다. 오 시장에게 새빛둥둥섬이 중요한 것처럼 펜디에겐 출발점인 모피가 중요한 건 당연한데도 말이다.

한 서울시 공무원은 “동물보호단체가 난리를 칠 게 분명한데 그냥 진행하기는 어렵다”고 털어놨다. 그런데 전 세계 어느 패션쇼에서나 동물보호단체가 그의 표현대로 ‘난리를 치는 건’ 뉴스도 안 되는 흔한 일이다. 겨울 패션의 아이콘을 포기할 수 없는 브랜드는 런웨이에서 쇼를 하고, 이게 못마땅한 동물보호단체는 밖에서 퍼포먼스(시위)를 하는 거다. 그래도 만에 하나 충돌이 우려되면 예방에 만전을 기하는 게 서울시의 일이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