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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창지대 거치는 동선…경협 · 식량 지원 요청에 무게

중앙선데이 2011.05.22 01:31 219호 4면 지면보기
중국을 방문 중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태운 것으로 추정되는 승용차가 21일 중국 공안의 통제 속에 창춘역을 빠져나가고 있다. [창춘=연합뉴스]
김정일 위원장이 9개월 만에 다시 중국을 방문한 이유가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러나 방중 이틀째를 맞은 김 위원장의 동선에는 경제에 쏠린 관심이 많이 엿보였다. 그가 찾은 중국 동북3성이 경제 지원과 식량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기대할 수 있는 코스이기 때문이다.

9개월 만에 동북 3성 방문한 김정일

김 위원장은 이르면 22일로 예상되는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포괄적인 양국 관계 강화 방안뿐 아니라 북한에 대한 중국의 경제 지원과 식량 원조를 비중 있게 거론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만큼 북한의 전반적 경제 사정이 악화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을 태운 특별열차는 21일 오전 창춘(長春)역에 도착했으며 김 위원장 일행은 곧바로 승용차로 갈아탄 뒤 이치(一汽)자동차 공장을 참관한 것으로 현지 소식통이 전했다. 이치자동차는 중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업체다.

지난해 8월 창춘을 방문한 김 위원장이 이 공장을 시찰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방문하지 않았었다. 김 위원장이 찾은 창춘은 중국 정부가 동북 진흥 전략 차원에서 역점을 들여 추진 중인 창지투(長吉圖)개발계획의 중심 도시다. 창지투는 창춘·지린(吉林)·투먼(圖們)을 연결하는 지린성의 대대적인 개발 축이다.

김 위원장의 방중에는 중국 측에서 관례대로 왕자루이(王家瑞·왕가서) 당 대외연락부장과 성광쭈(盛光祖·성광조) 철도부장이 수행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장더장(張德江·장덕강) 국무원 부총리가 무단장(牧丹江)에서 김 위원장을 직접 영접하고 안내를 맡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장 부총리는 지린성 당서기를 지낸 데다 창지투 계획을 잘 아는 인사다. 그가 김 위원장에게 창지투 개발 현장을 직접 설명하고 북한의 적극 참여를 권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해 8월 방중 때 김 위원장은 창춘 외곽의 농업전람관을 찾아 한 시간가량 관람했고 창춘궤도객차유한공사를 참관했다. 지린시에서는 지린화학섬유그룹을 찾았고, 그 뒤 하얼빈(哈爾濱)혜강식품공사·하얼빈전기그룹 등을 방문했다. 모두 경제 협력과 밀접하게 관련된 시설이었다.

창춘 현지 소식통의 말은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에 숨은 의도를 짐작하게 해준다. 창춘의 한 대북 사업가는 “최근 북한의 경제 관료를 만났는데 그가 ‘북한이 내부적으로 이명박 정부와의 단절을 결심하고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전력을 기울이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 북한 관료가 중국 훈춘(琿春)을 방문한 길에 만났다. 이 사업가는 또 “북한은 2012년 봄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 정상회의에 한국 정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하면서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사과’와 ‘비핵화의 진정성 확인’을 요구한 것은 북한과의 단절을 선언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중국 지도부가 진작부터 초청했기 때문에 김 위원장의 방중이 이상할 것은 없지만, (한국 정부와의 불편한 관계를 고려해) 김 위원장이 작심하고 방중을 강행한 인상을 풍긴다”고 말했다.
1년 만에 세 번째인 김 위원장의 방중 배경에는 또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 때문에 김 위원장이 중국의 곡창지대인 헤이룽장(黑龍江)성과 지린성을 찾았다는 것이다. 헤이룽장성은 중국의 대표적 쌀 생산지이며, 지린성에선 중국 옥수수의 40%가 생산된다.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해외 주재 공관을 통해 국제사회에 식량 지원을 간절히 요청할 정도로 식량난이 가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남한으로부터 식량 및 경제 지원은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중국에 더욱 매달린다는 것이다.

이 대북 사업가는 “당초 김정은 당 군사위 부위원장의 방중이 예상됐지만, 김정일이 직접 나선 것은 그만큼 다급한 북한 내부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김 위원장의 방중을 앞두고 이달 초부터 지린성에는 조선합영투자위원회(위원장 이수영) 관계자 수십 명이 나와 지린성 정부 관계자들과 경제 관련 협의를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린성은 중국 옥수수의 40% 생산
현지에선 “양측이 북한의 나선경제특구 공동개발에 합의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북·중 합영투자공동위원회’를 발족해 민간이 앞장서고 국가가 보증하는 형식으로 진행키로 했다는 얘기다. 공동위원회는 중국 측에서 지린성이, 북한에서는 함경북도가 맡기로 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김 위원장이 후 주석을 다시 만나면 북·중 경협에 대한 모종의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현장에서 들렸다.

대북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의 목적이 북·중 경협 확대에 있다면 합영투자위원회를 이끌어온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당 행정부장이 동행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수영(가명 리철) 합영투자위 위원장이 대표단 명단에 들어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와 관련, 한 정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이 북·중 경협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이번 방문에서 경협 문제가 집중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며 “지난해 8월 중국 방문 뒤 9개월 만에 경협 진행 상황을 점검하려는 목적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국내의 북한 전문가들도 대체로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김 위원장이 9개월 만에 직접 중국으로 움직인 것은 북·중 경제협력 때문으로 보인다”며 “중국이 그동안 해온 여러 약속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자 이를 돌파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지난해 8월 방중 이후 진행된 양국 경제협력의 성과가 북한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중국의 적극 투자를 우회적으로 촉구하기 위해 재차 방중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최근 북한의 식량 사정이 다급한 것으로 알려졌는데도 중국이 아직 대규모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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