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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중심 엘리트 대학 아니라면 대중 대학으로 변신이 살 길

중앙선데이 2011.05.22 01:08 219호 10면 지면보기
대학 양극화의 추세가 가시화되는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과연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는가. 우리 대학들 중에서 과연 누가 엘리트 연구중심 대학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단 한 대학이라도 그 반열에 올라설 수 있는 것일까.

양극화 갈림길에 선 대학

나는 이 점에서 지금 우리나라 거의 모든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하고 있는 영어 강의 열풍을 심히 우려한다. 1990년대 중반 미국 대학의 교수직을 접고 서울대에 부임한 나는 첫 학기부터 영어 강의를 시작했다. 학문의 언어는 어차피 영어로 굳어진 지 오래고 세계화 시대에 영어 능력의 함양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영어로 배우는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하버드대와 미시간대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서울대 학생들의 능력에 한층 고무되어 퍽 여러 해 동안 영어 강의를 계속했다.

그러나 나는 MIT가 그들의 강의를 인터넷에 공개한 다음부터 영어 강의를 접었다.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오세정 교수의 상상 속 홍길동 교수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영문도 모른 채 MIT가 촉발한 세계 교육시장 점유전략에 말려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강의 시대가 도래하면 영어로 하는 나의 ‘동물행동학’ 강의와 스탠퍼드대 교수의 강의 중에서 학생들이 어느 걸 선호할지는 너무도 뻔한 일이다. 이 땅의 대부분의 대학이 외국 명문 대학의 콘텐츠에 의존해 학생들의 시험 준비나 도와주는 학원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KAIST의 모든 강의를 궁극적으로 영어로 제공하려던 서남표 총장의 소신은 나름대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꿈대로 KAIST가 진정 MIT와 대면 경쟁을 하려면 KAIST의 언어는 당연히 영어라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 점차 영어 강의가 불편한 교수들은 다른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고 KAIST의 교수진은 절반 이상이 외국인 교수로 채워질 것이다. 최근에 새로 설립된 오키나와 과학기술연구원(OIST:Okinaw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은 아예 교수진의 50% 이상을 외국인으로 채용한다는 규정을 갖고 있다. 콘텐츠를 개발하여 제공할 수 있는 대학의 반열에 올라서려면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

나는 우리나라의 대학들이 이제 양극화의 갈림길에서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향후 10년이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엉거주춤 걸어가는 대학은 결국 도태되고 말 것이다. 이대로 가면 조만간 폐교의 위기를 맞을 사립대학들은 스스로 발 빠르게 교육 위주의 대중 대학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어차피 통폐합 대상으로 지목되는 국립대학들 중에서 20대 학생보다 오히려 제2 인생을 준비하는 고령 학생들을 교육하는 대학으로 거듭나겠다고 결단하는 대학이 나올 수는 없는 것일까.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들을 냉정하게 평가할 때 세계적인 연구중심 대학으로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대학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상당 부분 등록금에 의존해 학교를 운영해야 하는 대학들은 양극화의 거친 파도를 견뎌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 대학들의 미래를 밝게 해주는 확실한 길이 하나 있다고 생각한다. 2010년에 나는 ‘대한민국, 대학문국(大學問國)’이라는 제목의 TV 강연을 한 적이 있다. 2010년은 우리가 나라를 빼앗겼다가 되찾은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석유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나라까지 빼앗겼다가 겨우 되찾아 일어서려는데 전쟁으로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던 나라가 불과 반세기 만에 어떻게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을까. 답은 너무나 명확하게 그리 좋지도 않은 제도 속에서도 죽어라 공부했기 때문이다. 학문을 숭상하고 사람에 투자했기 때문에 가진 것 별로 없는 이 작은 나라가 엄청난 경제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 지난 100년 동안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우리가 살길은 오로지 학문에 투자하는 일이다. 지금의 수십 배 예산을 교육과 연구에 투자하면 대학문국을 건설할 수 있다. 나는 우리가 미래의 교육 경쟁만큼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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