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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MIT 강의도 안방서 수강, 글로벌 명문 파워 더 세진다

중앙선데이 2011.05.22 01:07 219호 10면 지면보기
“한국대학교 홍길동 교수는 하루 평균 3시간씩 강의한다. 사실 강의라고 해봐야 MIT 대학 스미스 교수의 온라인 원격 강의록을 받아 화상으로 재현해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혹 질문이 있으면 대답해 주는 것이다. 직접 현장에서 수강하는 학생은 전체 수강생의 10% 이내, 나머지는 화상을 통해 원격으로 수강한다.”

중앙SUNDAY 창간 4주년 기획 10년 후 세상 <9> 대학과 대학교육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오세정 교수는 이인식의 『미래신문』(김영사, 2004)이란 책에 기고한 글에서 미래 대학의 수업 광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이기도 한 오세정 교수는 김광웅 교수가 엮은 『우리는 미래에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생각의 나무, 2009)에도 ‘미래 대학의 모습-미래에 우리는 어디에서 공부할 것인가’라는 글을 게재해 학문과 대학의 미래를 전망했다.

여러 해 전에 미국 MIT가 자기 대학 교수들의 강의를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했을 때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상당한 예산과 시간을 투자해 개발한 양질의 강의 자료를 참조하거나 부분적으로 또는 거의 통째로 내려받아 자신의 강의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고마워하면서도 도대체 그들이 왜 그런 짓을 하기로 했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 거의 모든 대학이 크고 작은 규모로 인터넷 공개강좌를 실시하고 있다.

미래학자들이 예측하는 미래 유망산업의 목록에는 뜻밖에도 교육산업이 끼어 있다. 세계 전체로 보면 여전히 인구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비교적 윤택한 나라들은 거의 한결같이 심각한 출산율 저하를 겪고 있다. 그나마 제대로 된 교육 시장이 형성돼 있는 나라일수록 취학 아동의 수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교육산업이 미래 유망산업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연구중심 대학 캠퍼스는 거대해질 듯
미래학자들은 우리 인류가 제2의 유목시대를 맞이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지금 대학생들은 장차 직장이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든 옮겨 다니며 일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외교관 혹은 대기업의 해외 주재원이나 겪는 자녀 교육의 문제가 점차 절대 다수의 보편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전 세계를 상대로 공개 강의를 개발한 MIT가 ‘MIT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만든다고 가정해 보라. 새로운 지역의 새로운 직장에 부임할 때마다 자식들을 본국에 두고 올까 아니면 번번이 낯선 나라의 낯선 교육제도 속에 집어넣을까를 고민하던 부모들에게 전혀 새로운 선택지가 주어지는 것이다. 세계 어느 곳에 가든 원격으로 최고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MIT 초중등학교가 당신의 자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세계 교육 시장이 몇몇 큰손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1997년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2020년대에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캠퍼스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터넷을 이용한 원격 강의가 보편화할 것이기 때문에 고비용의 캠퍼스 경영은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미 미국의 많은 대학은 학생들이 모인 강의실에서 강의도 하지만 그 강의를 인터넷에도 띄워 학생들이 기숙사 자기 방에서도 들을 수 있도록 원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많은 학생이 인터넷 강의를 선호하는 바람에 교실의 공동화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을 지경이다. 하지만 이미 상당수의 대학은 이를 부정적인 현상으로 보지 않는다. 보다 적극적으로 인터넷 강의를 강화하며 심지어는 학사는 물론 석사 과정의 일부를 온라인으로 대체하고 있다.

시카고대 사회학과 석좌교수인 앤드루 애벗(Andrew Abbott)은 이런 추세를 분석해 대학의 양극화를 예측한다. 세계의 대학들은 전통과 명성을 바탕으로 엄청난 재원을 확보해 연구의 수월성을 확보하고 양질의 교육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소수의 명문 연구중심 대학과 이런 대학들이 개발한 교육 콘텐츠를 활용해 기본적으로 취업을 위한 교육을 담당하는 다수의 ‘대중 대학(mass universities)’으로 양분될 것이다. “아이비리그 대학의 교육이 다른 대학들의 교육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웅장한 도서관이나 교수들의 탁월함보다는 대학에서 얻는 인맥이다”라는 클린턴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의 말이 암시하는 것처럼 연구중심 대학의 캠퍼스는 어쩌면 더 거대해질지도 모른다. 날로 치열해지는 직업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상위권 학생들은 점점 더 전통의 명문 대학으로 몰릴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하버드대의 지원 학생 수는 전례 없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반면 대중 대학들의 온라인 강의 의존도가 늘어가면 자연스레 그런 대학들의 캠퍼스는 소멸의 길을 걸을 것이다. 실제로 89년에 설립된 온라인 위주 피닉스대(University of Phoenix Online)는 거의 2만 명의 강사가 인터넷으로 강의하는 대학으로서 공인대학 중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대학으로 성장했다.

저출산과 더불어 세계는 지금 전례 없는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다. 인생 100세 시대가 그리 멀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이 100세까지 살게 될 때 지금처럼 60세를 전후하여 은퇴하고 일찌감치 뒷방 노인이 되어 젊은 세대들이 차려주는 밥상을 받는 사회제도가 과연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이대로 가면 언젠가 일하지 않고 그저 차려주는 밥상이나 받는 사람의 숫자가 정작 일하는 사람의 숫자보다 많아질 것이 뻔한데, 과연 그런 노동 구조가 한 나라의 경제를 지탱해줄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한 산수 계산만 해봐도 이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필자는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삼성경제연구소, 2005)에서 멀지 않은 장래에 은퇴라는 제도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점진적으로 정년을 연장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나라도 있을 것이고, 단번에 정년제도를 없애버릴 나라도 나타날 것이다. 정년을 연장하거나 아예 없애려면 우선적으로 청년 실업의 문제를 해결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임금피크제나 사회적 기업 등을 잘 활용하면 훌륭한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성인 학생 재교육 위한 대학 필요
언젠가 정년제도가 없어지면 대학 졸업자의 경우 대개 25~30세부터 95~100세까지 일하게 될 것이다. 평균 70년을 일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미래학자들은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평생 동안 적어도 직업을 대여섯 번씩 바꾸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렇지 않아도 취직 걱정에 대학 4년 내내 오로지 ‘스펙 쌓기’에만 여념이 없는 우리 대학생들의 삶에는 과연 어떤 미래가 펼쳐질 것인가. 대학 4년 동안 일찌감치 낭만일랑 접어두고 젊음을 바쳐 학점을 관리하여 용케 첫 직장은 잘 잡았는데 40세가 되기도 전에 쫓겨나면 어떻게 다음 직장을 얻을 것인가. 일찍이 피터 드러커는 21세기를 ‘지식의 세기’로 규정했다. 지식의 세기에는 배움에 끝이 없다. 지금처럼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책을 덮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평생 수시로 새로운 걸 배워 새로운 직업을 얻으며 살아야 한다.

2004년 당시 우리 정부의 교육인적자원부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로 인해 날로 심각해지는 대학들의 미충원율을 감안해 2009년까지 모두 8개의 국립대와 79개의 사립대를 통폐합하는 ‘대학 구조개혁 방안’을 내놓았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 추이를 생각하면 당연한 조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반대의 발상도 가능하다. 노동인생 70년 동안 대여섯 가지의 직업에 종사하며 살려면 평생 배워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 직장인의 대부분은 불안한 미래를 대비해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있다. 이 같은 성인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할 대학이 필요하다. 직업을 바꿀 때마다 수시로 대학에 돌아가 새로운 공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조만간 대학은 20대에 한 번만 거치면 되는 통과의례 과정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 돌아가 몇 번이고 새로운 학위를 취득하는 곳이 될 것이다. 현재 직장을 갖고 있으면서 또 다른 직업에 도전하는 성인들을 위한 교육은 당연히 온라인 위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지식의 세기에서 살아남으려면 언제든 새로운 분야의 공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해야 한다.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한자말로 ‘수학능력’이라고 하며 줄여서 ‘수능’이라 부른다. 여기서 우리는 하버드ㆍ예일ㆍ옥스퍼드ㆍ케임브리지 등 세계적인 명문 대학들은 왜 수백 년 동안 한결같이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기초만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기초, 즉 기초학문이 바로 수학능력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기초학문의 기반을 튼튼하게 다져주면 언제 어디서나 새로운 학문에 도전할 수 있다는 걸 그들은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하버드대는 몇 년 전 핵심 교육과정(Core curriculum)을 새롭게 개편하며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비중을 한층 강화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인문학 열풍은 향후 10여 년간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아이폰은 과학에 인문학을 입힌 스마트폰이라고 으스대는 스티브 잡스의 카리스마는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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