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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대인 관계 좋은 건 당연 … 왜? 가치관 비슷하니까”

중앙선데이 2011.05.22 01:04 219호 14면 지면보기
‘상하이의 유대인’.
왠지 귀에 설고 어색하다. 유대인이라면 으레 중동이나 유럽·미국에 사는 이들로 여겨지는 탓이다. 그러나 유대인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해가 된다. 이들에게 상하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스실로 갈 위기의 유대인을 구해준 독일인 사업가 쉰들러만큼이나 신성하다. 이곳으로 도망쳐 온 덕에 수많은 유대인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찾은 ‘미국 유대인협회’ 로버트 엘머 회장


로버트 엘머(사진) 미국 유대인협회(AJC) 회장에 따르면 중국 내 유대인의 역사는 유구하다. 유대인의 본격 중국행은 19세기 말이다. 당시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탈출한 유대인이 시베리아와 몽골을 거쳐 중국 북부로 이주한다. 특히 하얼빈에 많은 유대인이 정착해 이곳에는 아직도 커다란 시나고그(유대인 성당)가 남아 있다.

둘째 계기는 아편전쟁이었다. 중국에 승리한 영국은 상하이에 조계지를 설치하고 본격 무역을 한다. 이때 바그다드 등에 살던 이재에 밝은 유대인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홍콩과 상하이에 들어온다. 마지막 중국 러시는 2차 세계대전이다. 유대인 멸종에 나선 히틀러를 피해 유대인은 탈출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갔다. 중국이 특히 관대하게 받아줬다. 1933년부터 41년까지 중국이 받아준 유대인은 3만 명을 넘었다. 캐나다·호주·뉴질랜드·남아프리카공화국 네 나라가 수용한 유대인 탈출자보다 많다. 중국 북부가 일제 수중에 떨어지면서 하얼빈 등에 거주했던 유대인은 남쪽으로 또다시 탈출해 대부분 상하이로 집중했다.

일본이 상하이를 점령하자 유대인은 또 죽음의 위험에 놓인다. 42년 7월 일본 주재 나치 비밀경찰 대표였던 요제프 메싱거 대령이 상하이로 건너가 일본 점령군 사령부에 “상하이 유대인을 모두 없애 달라”고 특별 요구를 한다. 일본군은 거절하는 대신 특수 거주지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상하이의 수만 명 유대인은 종전까지 살아 남았다. 상하이가 쉰들러만큼이나 신성하게 불리는 배경이다.

1907년 하얼빈에 세워진 유대인의 시나고그(회당). 상하이와 더불어 유대인이 많이 사는 곳이었다.
그러나 중국도 문화혁명을 기점으로 180도 바뀐다. 유대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고 자연히 이들도 짐을 싸서 다른 곳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쫓겨난 유대인 중 많은 이가 간 곳은 홍콩이었다. 이리하여 홍콩은 아시아 내 유대인들의 거점으로 자리 잡게 됐다.

이렇게 반유대인으로 돌아섰던 중국도 요즘은 또다시 유대인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유대인과의 교역은 물론 이들의 대중 투자도 장려한다. AJC와는 ‘중국 내 유대인’이라는 사진집도 발간한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어 유대인은 아시아에 대해 대체로 우호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 게다가 세계의 중심축이 아시아로 움직이고 있어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엘머 회장이 이끄는 AJC 대표단 일행 9명이 이번 주 초 한국을 찾은 것은 아시아와의 유대 강화를 위한 것이다. 지난 17일 엘머 회장을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나 미국 내 미국인 사회와 한인 교민들의 관계 등을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방문 목적은.
“‘중국의 유대인’ 사진집 발간 건도 있고 해서 한·중·일 3개국과 유대인 그룹 간의 관계 개선을 위해 왔다.”

-AJC란 어떤 단체인가.
“미국유대인협회는 미국 내 유대인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단체다. 106년 전인 1905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을 당시 많은 유대인이 박해를 받아 미국으로 쫓겨왔다. 이때 이들을 돕기 위해 결성된 것이 AJC다. 이후에는 독일·폴란드 등 다른 지역에서 이민 오는 유대인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제는 전 세계 유대인의 안전 보장을 위한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또 다른 주요 사업 영역은 미국 내 다원주의의 확대다. 다른 인종이 유대인의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우
리 조직은 현재 17만 명의 회원 및 지지자들로 이뤄져 있으며 뉴욕 본부와 함께 27개의 지부를 두고 있다.”

-구체적인 타민족 지원 사례를 들어달라.
“예컨대 우리는 포드재단으로부터 50만 달러를 지원받아 멕시코 국경을 넘어온 히스패닉 이민자 후예들이 미국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 이민법 개혁에도 앞장서 불법이민자라도 미국에 기여한다고 판단되면 합법적 지위를 얻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무슬림 그룹과도 관계를 맺고 있나.
“물론이다. 유대인과 무슬림의 관계에 대해 많이 오해한다. 우리는 여러 무슬림 그룹들과 관계를 갖고 있다. 문제는 극단주의자일수록 언론의 조명을 받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AJC 행사에 무슬림과 힌두교 종교 지도자들을 초청한다. 온건한 무슬림 국가의 목소리가 빈 라덴과 같은 극단주의자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아야 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아시아에도 유대인이 많나.
“한국에 미국 군인과 군속, 학계, 대사관 등에서 일하는 유대인이 있지만 1000명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에는 하얼빈·상하이 등에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다. 이 중 일부는 중세 때 넘어온 유대인의 후손으로 500년 넘게 중국에서 살았다. 또 중동에서 홍콩으로 건너간 이들도 있다. 다른 중요 그룹은 2차 대전 때 홀로코스트를 피해 도피해 온 이들이다. 당시 상하이에는 별도의 유대인 지역이 있었을 정도로 많았다.”

-한국인과 유대인이 서로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많다.
“두 민족은 가치관이 비슷하다. 모두 가족과 교육을 중시하며 오랜 시간 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과 유대인이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대인은 미국 주류 사회에 합류한 반면 한국인은 아직도 소외돼 있다는 지적도 있다.
“어느 민족이나 언어 문제 등으로 이민 초기에는 여러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유대인·중국인이 그랬고, 심지어 이탈리아인·아일랜드인도 각종 차별을 당했다. 그러나 이민 1세대가 자식들을 열심히 교육시켜 언어 문제 등을 극복하면 주류가 될 수 있다. 한인들도 유대인처럼 될 수 있을 걸로 믿는다.”

-한인사회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지금처럼만 하라는 거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교육시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온다.”

-최근의 중동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혁명이 일어나더라도 민주화가 수반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쿠바·이란 혁명이 그런 예다. 이들 나라에는 지금도 표현의 자유조차 없다. 최근의 중동 사태도 좋은 결과로 나타나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중동평화 정책을 추진했던 인물인데 그의 몰락으로 이스라엘이 더 위험해지지 않을까.
“무바라크로 인해 이뤄진 건 차가운(cold) 평화였다.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 간에 평화와 우애가 넘치는 따뜻한 평화가 아니었다. 이번 이집트 사태로 진정한 민주정권이 들어서면 이스라엘과 주변국 간 관계가 훨씬 더 개선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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