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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tory] 임지순 “소통과 설득, 과학에서 배워라”

중앙일보 2011.05.21 01:24 주말섹션 2면 지면보기
“골방서 나와 대화하라, 설득하라, 인정하라”


세계 최고 권위의 ‘미국과학학술원’ 종신회원, 임지순 서울대 교수
‘경기고 수석’ ‘예비고사 수석’ ‘서울대 수석 입학’
‘21세기 과학적 리더십’ 내세우는 세계적 물리학자









서울대 임지순 (60·물리천문학부) 석좌교수는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고체물리학자다. 이달 초 학술단체 중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과학학술원(NAS)의 종신회원으로 선임됐다. 국내 물리학자로는 처음이요, 한국 과학자 중 세 번째다. 그는 청년 시절부터 유명했다. ‘경기고 수석 졸업’ ‘예비고사 전국 수석’ ‘서울대 수석 입학’(물리학과 70학번) 등 수석이 아니면 하지 않았다. j는 천재 물리학자가 바라보는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한국 사회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소통과 설득을 원한다면 과학자의 세계를 들여다 보라”고 조언했다.



글=성시윤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교수님의 연구 분야를 간략히 설명해주시죠.



 “저는 고체물리학을 해요. 일상에서 접하는 고체의 근본 성질을 규명하는 학문이죠. 새로운 물질을 디자인하기도 하고요.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는 분야이기도 하지요. 반도체가 대표적인 예죠. 반도체 연구가 원래 제 전공이었어요. 지금은 탄소나노물질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탄소를 바탕으로 한 신물질이라고 할 수 있지요.”



●과학자로서 한국 사회의 리더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답하기가 조심스럽네요. 사회 문제라는 것이 합리적 사고로만 해결하기에 매우 복잡한 면이 있겠죠.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의 지도자들이 이해가 되기도 해요. 하지만 너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좌우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겉으로 드러난 문제들만 단기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도 같고요. 그런 해법은 길게 보면 약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데 말이에요.”



●합리적 사고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비단 지도자만들의 문제는 아닙니다만, 소통이 중요하죠. 광우병·천안함 사태를 보세요. 지도자들이 ‘과학적으로 (미국 쇠고기에) 해(害)가 없다’ ‘천안함 사고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했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국민 중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에요. 저는 기본적으로 광우병이나 천안함에 대한 정부 조사, 발표가 맞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합리적인 것으로 충분하지 않아요. 평소에 신뢰를 줘서 소통이 되게 해야죠.”



●천안함 사건 때 정부 발표를 수용하지 않는 과학자들도 있었죠.



 “과학이 해결할 부분에서는 그다지 논쟁의 여지가 없었다고 생각해요. 일부 과학자가 이념적 선입관을 가지고 전체가 아닌 일부만 본 상태에서 판단을 했기 때문에 논쟁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과학적 사고의 습관과, 소통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선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장기적으로는 교육제도에서 문과·이과 구분을 철폐하고, 단기적으로는 교양교육을 강조해야 해요. 고등학교에서 문과·이과를 나누다 보니 ‘상대 쪽 공부는 골치 아프고 도움도 안 되고 재미도 없다’ 이런 선입견을 갖게 만들어요. 우리 대학에서도 보면 이과 학생들은 문과계열의 수업을 ‘억지로 듣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자기한테 도움은 안 되지만, 졸업을 하기 위해 교양수업을 어쩔 수 없이 듣는다는 식이죠.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당장 눈앞의 문제 하나를 푸는 데 도움이 되느냐의 여부로 판단들을 해요.”



●과학자이시면서도 교양교육을 중요하게 여기시는군요.



 “그렇죠. 저도 대학 다닐 때 문과 쪽 책을 많이 봤어요. 그때 공부를 좀 안 하긴 했지만(웃음). 문과건 이과건 상대 쪽 공부도 해보면 분명히 재미라는 게 있어요. 안 해서 그렇지. 그런 공부는 은연중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생 동안 도움이 되거든요. 안철수 박사 같은 분을 보세요. 이과 전공을 했지만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하죠.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굉장히 훌륭하다, 폭이 넓은 사람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한국의 발전을 위해선 영역 간의 경계를 너무 나누려 해서 안 될 것 같아요.”












●한편으론 한국 과학자들이 사회 문제에 관심이 적다는 지적도 있죠.



 “그런 비판이 맞는 것 같아요. 전통적인 사고방식의 영향이죠. ‘다른 것을 하는 것은 외도다’ 이런 인식 말이에요. 자기 분야에 몰두해서 깊이 파는 것은 좋은 일이죠. 하지만 과학자도 사회에 대한 책임이 있어요. 그런데 부끄러운 것은 저도 젊었을 때는 ‘사회 참여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솔직히 전공 분야의 일에 바빠서 잘 하질 못했어요. 교수가 사회적 발언을 하려면 상식적 얘기만 할 순 없잖아요. 시간을 내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제가 원하는 만큼 사회를 위해 봉사를 하지 못했어요. 아쉬움이 좀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강조하시나요?



 “우리 제자들은 나이가 젊어서 그런지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생각 자체가 굉장히 진보적인 것 같아요.”



●과학적 사고가 우리 사회에 제시하는 가치가 클 것 같습니다.



 “과학적으로 연구 업적을 인정받기 위해선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필수적이죠. 탄소나노물질의 경우를 보더라도 연구 결과라는 게 나라마다 다르게 나올 수는 없단 말이에요. 어떤 연구 결과가 나왔을 때 많은 과학자가 그것을 보고, 인정을 하고 상호 동의를 해야 되는 것이죠. 수많은 과학자가 벽돌을 하나씩 쌓아나가면서 과학의 발전을 이루는 것이죠. 그런데 힘들게 벽돌을 쌓아 왔는데, 전혀 새로운 이론이 나올 수도 있단 말이에요. 새로운 이론이 확립되려면 시간이 좀 걸리지만 결국 다른 학자들이 도미노 넘어가듯 설득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죠. 금방은 안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하나하나 설득을 당하는 것이죠. 그런 설득의 과정이, 과학에서는 굉장히 필요한 것이죠.”



●과학은 독불장군 식으론 절대 할 수 없다는 말씀이군요.



 “제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AT&T 벨연구소에서 연구원을 했어요. 그때 보니 과학자들이 서로 대화를 엄청 많이 해요. 그러니까 과학은 혼자 연구하는 게 아니에요. 자기가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개인의 한계가 있고 잘못 아는 것도 있을 수 있단 말이에요. 과학은 골방에 들어가서 혼자 깨달음을 얻는 게 아니잖아요. 연구 주제가 창의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다 ‘아, 내 생각에서 이 부분이 틀렸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죠.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갑자기 무엇인가가 명확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대화를 강조해요. 혼자서만 연구하고, 다른 사람이랑 토론을 하지 않으면 언제나 오류에 빠질 수 있고, 결코 학문이 늘지 않는 것이죠.”











●과학은 설득이고, 커뮤니케이션이군요.



 “그렇죠. 그런데 그 점에선 우리 한국 과학자들도 많이 부족해요(웃음). 그래서 우리 국내 학회에선 누가 논문을 발표했을 때 그것에 대해 ‘맞다, 틀리다’ 이런 코멘트를 못해요. ‘틀리다’ 하면 상대편 얼굴이 빨개지게 된단 말이에요. 그러면 안 되거든요.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서로 발전할 것 아니에요.”



●최근 정부에서 과학벨트 입지를 선정했죠.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십니까?



 “전 사실 그렇게 큰 관심은 없었어요. 너무 정치적인 문제가 돼서 우선 관심을 갖기가 싫었고요. 그리고 제가 그 분야를 잘 모르거든요. 제 입장에선 ‘국가가 과학에 투자를 많이 하면 좋겠다’는 정도 이상의 생각을 많이 하진 않았어요. 입지 선정 문제에 대해선 제가 전문성이 별로 없거든요. 입지 선정은 인문, 사회과학적 문제이니까요. 입지라는 것은 복합적인 것이잖아요. 입지 선정 문제에 과학자도 일부 참여를 해야겠지만 그건 과학자만 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굉장히 넓은 사회정치적 문제이고, 인문학까지 포함되는 문제니까요.”



●올봄 KAIST에서 학생들의 자살이 잇따랐습니다.



 “인간적으로 굉장히 충격을 받았죠. KAIST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나라 교육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서울대생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나 싶었고요. 우리 서울대는 현재 어떻게 하고 있나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우리 대학 전체의 문제로 본다면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까요.



 “우리가 두 가지를 학생들에게 줘야 할 것 같아요. 공부를 위해선 힘든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마음의 자세를 줘야 하고요. 그러면서도 어떤 결과가 나왔을 때 장려해주고, 용기를 북돋워주어야 해요. 경쟁이 옛날보다 더 치열해졌단 말이에요. 경쟁을 피할 수는 없죠. 하지만 경쟁의 결과를 ‘이겼다’와 ‘졌다’로 양분해선 안 될 것 같아요. 학생들이 그런 두려움이 많아서인지, 공부의 즐거움을 잘 몰라요.”



●미래의 과학영재들을 위해 하시고 싶은 말씀은요.



 “제가 과학영재들을 만날 일이 간혹 있는데요. 이런 얘기를 꼭 합니다. ‘지금은 마음속에 와닿지 않더라도 기억했다가 나중에 생각해라.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남에 대한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기본이다. 과학자가 되기 이전에 사람이 돼야 한다. 성공한 최고경영자(CEO)가 되기 전에 사람이 돼라.’”





링컨이 만든 NAS … 회원 중 노벨상 수상자만 200여 명



임 석좌교수, 한국 물리학자로선 첫 회원




임지순 서울대 석좌교수의 연구실 문에는 ‘2005년 세계 물리학의 해’ 포스터가 붙어 있다. 포스터 중앙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실려 있다. 임 교수와 아인슈타인의 공통점은 물리학자이면서, 동시에 미국 과학학술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s, NAS) 회원이라는 것이다. NAS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임 교수는 들뜬 얼굴이 됐다. NAS는 과학자인 그의 철학적 지향과 맞닿아 있는 듯했다.



●NAS는 어떤 단체죠.



 "미국 남북전쟁 중에 만들어진 단체예요.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 중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역사가 약 150년 됐죠. 세계 학술단체 중에서 가장 권위가 높아요. 역대 회원 중 노벨상 수상자가 200명 정도 되고요. 미국 학회이니까 아무래도 미국인 중심이지만 외국인 회원도 400명 정도 돼요. 일본인이 30명, 중국인이 열 명, 한국인은 저를 포함해 세 명이에요.”



●임 교수님보다 먼저 회원이 된 한국인 과학자는 어떤 분들이죠.



 “한탄 바이러스를 발견한 이호왕(83·고려대 명예교수) 박사님이 가장 먼저 회원이 되셨죠. 아주 전설적인 분입니다. 참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이루셨죠. 그리고 생리·의학분야의 신희섭 교수님,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장이시죠. 그분이 두 번째로 받으셨는데 저보다는 2년 선배가 됩니다. 두 분 다 생리·의학분야죠. 그래서 물리학자로서는 제가 처음이에요.”



●NAS 회원 중에 쟁쟁한 분이 많겠군요.”



 “유명한 스티븐 호킹 박사, 또 복제양 돌리를 만든 이언 월머트 박사 이런 분이 회원이죠. 탄소나노튜브를 세계에서 처음 발견한 이지마 스미오(飯島澄男) 박사 같은 분도 3년 전쯤에 회원이 됐죠.”



●그런 석학들이 모인 단체에서 교수님의 연구 업적을 인정한 셈이군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물리학이 인정을 받았다는 그런 의미도 있죠. 저는 내년 총회부터 참석하게 되는데, 학술원의 전통 의상을 입고서 입회식을 한다고 해요. 회원 가입한 사람이 사인을 하는 책이 있대요. 아인슈타인도 옛날에 그 책에 사인을 했다 하고요. 제가 이전에 이런저런 상을 받으면서 굉장히 좋았지만, 이번처럼 흥분된 적은 없네요(웃음).”



 입회식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듯 임 교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인터뷰 중에 그는 NAS를 여러 번 언급했다. 그는 과학자가 추구해야 할 ‘열린 마음’을 얘기하다 NAS 회원인 노엄 촘스키를 언급했다.



 “과학자들이 기본적으로는 보수적이에요. 왜냐면 여태까지 워낙 착실하게 쌓아온 연구 성과에 기초해 일하기 때문이죠. 과학에선 무엇인가가 획기적으로 바뀌는 게 굉장히 드물죠. 그런데 열린 마음을 가져야 돼요. 이론이 언제라도 바뀔 수 있거든요. 그동안 쌓아온 게 무너지는 수가 있어요. NAS를 보니까 노엄 촘스키도 회원으로 있더라고요. 미국에선 좌파의 선봉에 서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 사람 생각이 학회 회원 대부분과는 다를 거예요. 그 단체의 포용력이 그만큼 큰 것이죠.”



 최근 ‘사후 세계란 없다’고 발언을 한 스티븐 호킹에 대한 임 교수의 생각은 어떨까.



 “저는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스티븐 호킹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해요. 호킹의 과학 전반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최근 그가 한 말에 동의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호킹을 과학자로선 존경하죠. 우리가 같은 NAS 멤버인데요(웃음).”












j 칵테일 >> “대학 졸업은 수석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저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어요. 대학 졸업은 1등이 아니었어요.”



 학창 시절 워낙 ‘수석’을 하도 많이 하다 보니 주변에서 응당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임 교수는 과학자답게 ‘자신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고 싶어 했다.



●어릴 때 주변에서 ‘너 나중에 법대 가라’ 이런 소리는 안 들으셨어요.



 “참 고마운 점이 부모님이 별로 제게 간섭을 안 하셨어요.”



●대학에선 공부만 열심히 하셨나요.



 “유신 때라 학교가 거의 문을 닫았거든요. 그래서 소설을 엄청 많이 읽었죠. 그때는 학교에서 진도도 나가는 게 별로 없었어요. 그때는 사회가 느슨해서 살기가 좀 편했는데.(웃음)”



●학창 시절에 ‘천재’ 소리를 많이 들으셨죠.



 “듣기는 했죠. 그런데 제가 천재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럼 어떤 사람이 천재인가요.



 “제가 미국 유학 가서 보니 거기에 천재가 진짜 많더라고요. 뭔가를 외우고 이해하고, 문제 푸는 것은 제가 더 잘했죠. 그런데 아이디어에서 저보다 더 독창적인 친구가 아주 많더라고요.”



●물리학 말고 교수님을 유혹한 분야는 없었나요.



 “대학교 3, 4학년 때 제가 ‘홍역’을 앓았어요. 사회과학이 참 매력적이더라고요. 내 생각이 너무 좁았던 게 아닌가 싶었어요. 제로 베이스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그래도 내 적성은 과학이다’ 결론을 냈죠.”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아버진 서울대 공대의 전신 격인 평양고보 광산전문학교를 나오셨어요. 아버님도 머리 좋으셨다고 하더라고요. 철광에서 현장소장을 하셨어요. 어머니는 결혼하면서 이화여전(현재의 이화여대)을 중퇴하셨어요. 어머니가 굉장히 똑똑하셨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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