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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제로니모 E-KIA’ 작전과 천안함

중앙일보 2011.05.21 00:09 종합 34면 지면보기






정경민
뉴욕 특파원




9·11테러 주범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사살 작전에 ‘제로니모 E-KIA(Enemy Killed In Action)’란 이름을 붙인 건 우연치곤 짓궂다. 빈 라덴은 아파치 전사 제로니모 못지않게 신출귀몰한 도피술로 미국 정부의 애간장을 태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무 싱겁다. 10년 동안 수조 달러를 퍼부으며 그를 추적해온 미국이 파키스탄 수도 외곽의 대저택이란 ‘등잔 밑’을 몰랐다니? 그것도 1년 이상 한 장소에 10여 명의 아이와 부인들까지 거느리고 살았는데 말이다.



 위치가 발각될까 겁나 인터넷도 끊고 지냈던 그다. 그런 위인이 전 세계 알카에다 조직을 실질적으로 지휘했다고? 눈만 감아도 세상사를 다 꿸 수 있는 천리안(千里眼)이라도 있었던 걸까. 미국 정부의 발표도 오락가락했다. 처음엔 부인을 인간방패로 삼아 AK소총을 쏘며 격렬하게 저항하다 총에 맞았다고 했다. 그런데 하루 만에 말을 바꿨다. 집에선 권총 한 자루도 안 나왔다. 대신 100여 편의 하드코어 포르노물이 쏟아져 나왔다는 거다. 미국을 상대로 성전(聖戰) 중이었던 54세 종교지도자의 모습과는 어쩐지 안 어울린다.



 이쯤 되면 온갖 음모론이 미국 여론을 들끓게도 할 만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의 출생지가 미국땅 하와이가 아니라 케냐라는 의혹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온 도널드 트럼프조차 ‘제로니모 E-KIA’ 작전엔 토를 달지 않았다. 심지어 오바마는 일요일 밤 그가 진행하는 TV쇼 시간에 맞춰 빈 라덴 사살을 발표하는 ‘불경(不敬)’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정부가 사건을 조작했다”고 다그치는 야당 의원도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미국 정부가 거짓말하고 있으니 진실을 밝혀달라”는 서한을 유엔에 보낸 시민단체 소식도 듣지 못했다.



 오히려 미국인 열의 여섯은 빈 라덴 사진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 정부 결정을 두둔했다. 무분별한 군사기밀 유출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다. 왜 이런 걸까. 적어도 알카에다·탈레반의 심리전 공세나 인터넷에 떠도는 의혹보다는 정부 말을 더 신뢰한다는 뜻이 아닐까. 꼭 1년 전이다. 백령도 앞바다에서 천안함이 침몰해 46명의 장병이 목숨을 잃었다. 국내는 물론 외국 전문가까지 참여한 조사 결과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침몰이란 정부 발표가 나왔다. 그 뒤 어떤 일이 벌어졌나. 한국의 제1 야당은 아직도 정부 발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는 “천안함 사건이 6·2 지방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이명박 정부의 음모”라고 가르쳤다 한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가. 정부 일거수일투족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는 시민단체·네티즌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곳 아닌가. 한데 그런 나라 정부 말은 “0.00001%도 못 믿겠다”면서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악랄한 북한 정권의 억지엔 이내 솔깃해하는 그 까닭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정경민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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