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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수요지식과학] 소설 『천사와 악마』 속 반물질 규명하나

중앙일보 2011.05.18 01:26 종합 8면 지면보기
우주는 137억 년 전 태어났다. 그 억겁의 세월에 비하면 17년은 미미한 시간이다. 하지만 16일(현지시간) 미국 우주왕복선 인데버호의 발사 장면을 지켜본 세계 물리학자들의 심정은 달랐다. 인데버에 실려 우주로 날아간 알파자기분광계(AMS-02) 때문이었다. 이 장비를 만들고, 테스트하고, 우주로 쏘아 올리는 데 꼬박 17년이 걸렸다. 16개국 60개 연구소의 600여 명이 제작에 참여했고, 역대 우주 실험장비 가운데 가장 많은 비용(20억 달러, 약 2조1780억원)이 들었다. 137억 년 우주의 신비를 풀기 위해서라지만 17년의 기다림은 결코 짧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장비이기에 그토록 오래, 세계 과학자들을 애끓게 했을까.


인데버가 싣고 간 2조원짜리 AMS-02
우주 신비 풀 우주 실험, 세계 물리학계 흥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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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번역 출간된 댄 브라운(Dan Brown)의 소설 『천사와 악마』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다빈치코드』의 전작이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탈취한 반(反)물질(antimatter)을 이용해 바티칸을 폭파시키려는 비밀결사조직의 음모를 다뤘다. 2009년 영화로 개봉되기도 했다. 여기에 등장하는 반물질이란 무엇일까.











 ‘빅뱅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한 점에 모여 있던 질량과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팽창하며 시작됐다. 대폭발 직후 쏟아져 나온 입자들의 상호작용으로 물질이 만들어졌고, 이들이 모여 지구 같은 별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 등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태초의 순간’ 튀어나온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입자만이 아니었다. 이들과 질량은 같지만 전하(정전기의 양)는 다른 입자도 있었다. 양성자(+)의 반대인 반양성자(-), 전자(-)의 반대인 양전자(+) 등이다. 이 같은 반(反)입자 로 이뤄진 게 반물질이다.



 빅뱅 직후 우주에는 이런 반물질과 물질이 반반씩 존재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는 반물질이 없다.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면 쌍소멸(높은 에너지의 빛을 내며 함께 사라지는 것)을 하기 때문이다. 『천사와 악마』는 이를 모티브로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반물질을 이용한 폭탄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반물질 0.25g을 만들기 위해선 LHC를 쉼 없이 돌려도 3억 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비용도 현재 기준으로 2경5000조 달러나 필요하다.



 학자들은 그러나 우주 어딘가에 반물질이 여전히 존재하며, 이들로 만들어진 별·은하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계 물질과 접촉하지 않아 쌍소멸을 피한 천체들이다.









소설 『천사와 악마』



AMS-02는 이런 곳에서 날아온 반입자를 검출할 수 있는 장비다. 강력한 자석으로 우주선(宇宙線, cosmic ray, 지구 밖 천체에서 나온 고에너지 입자 다발)을 끌어당겨 궤적·질량·속도·에너지를 측정한다. 만약 특정 양성자와 같은 질량 값을 가진 입자가 자석의 음극이 아닌 양극 쪽으로 휘어진다면, 반양성자의 증거가 된다. AMS-02는 이를 위해 강력한 자기장(지구 자기장의 4000배)을 만들어 내는 영구 자석과 검출기를 탑재했다. 입자가 날아온 위치·방향을 추적하는 별 추적기(Star tracker)·GPS 등도 갖췄다. 이를 통해 초당 7기가비트의 데이터를 생산하고, 이 중 의미 있는 데이터를 추려 초당 6메가비트씩 지구로 전송한다. 필요한 전력(2400W)은 태양광 발전기를 갖춘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부터 얻는다. 인데버는 발사 나흘째 ISS에 도킹, 로봇팔을 이용해 ISS 외부 구조물에 AMS-02를 설치할 예정이다.



 AMS-02가 추적할 또 다른 우주 신비는 암흑 물질(dark matter)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전체 우주를 이루는 물질 중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물질은 4%에 불과하다. 3.6%가 우주에 흩어져 있는 먼지와 기체, 0.4%가 별과 은하를 구성하는 물질이다. 나머지 96%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다(물질과 에너지는 상호 변환 가능).



 하지만 암흑물질은 이론적으로만 존재한다. 별의 회전 속도, 우주 팽창 속도를 관측해 추정한 것일 뿐, 실제 그 정체는 수수께끼다. 초대칭(supersymmetry) 이론상의 가상 입자인 초중성소자(neutralino)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을 뿐이다. 과학자들은 초중성소자가 실제 존재한다면 서로 충돌해 다량의 고에너지 반전자를 방출할 것이고, AMS-02가 이를 검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AMS-02 제작에 참여한 경북대 고에너지물리연구소 손동철 교수는 “반물질과 암흑물질의 정체는 물리학계의 가장 근원적인 의문”이라며 “이들의 정체가 밝혀진다면 우주의 기원·구조 연구에 새 장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한별 기자





137억 년 우주 기원 찾는 AMS-02 … 17년 산고 끝 우주왕복선 ‘막차’



중국계 미 과학자 팅 ‘작품’

10년간 우주정거장서 운용










새뮤얼 차오 충 팅



AMS-02는 새뮤얼 차오 충 팅(Samuel Chao Chung Ting·丁肇中) 미 MIT대 교수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팅 교수는 1974년 벡터 중간자의 하나인 ‘제이/프시(J/ψ) 중간자’를 발견해 노벨 물리학상(76년)을 받은 석학이다.



 팅이 주도한 입자물리학 연구그룹은 94년 각국에 AMS 제작을 제안했고, 이듬해 미국·이탈리아·스위스 등의 승인을 받았다. 주 스폰서는 미 에너지부(DOE)였다. 운반체로는 미 우주왕복선이 결정됐고, DOE가 미 항공우주국(NASA)과 관련 협정을 체결했다.



 이후 98년 시험모델(AMS-01)을 발사할 때까진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디스커버리호에 실려 우주로 나간 AMS-01은 반물질이나 암흑물질을 찾진 못했지만 10일의 우주 비행 기간 동안 고장 없이 작동돼 과학자들을 고무시켰다. 하지만 2003년 컬럼비아호 폭발사고가 발생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일정 지연은 천문학적인 비용 논란으로 번졌다. 99년만 해도 3300만 달러 정도로 예상됐던 개발비가 이후 15억, 20억 달러로 계속 치솟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주왕복선 수송비용은 별도였다. 예산 압박에 시달린 NASA는 급기야 AMS-02 수송계획을 취소했다.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한 AMS 프로젝트를 살려 준 것은 미 의회였다. 전 세계 과학자들의 탄원을 받은 미 의원들은 2008년 우주왕복선 추가 발사를 승인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AMS-02 수송 예산을 지원했다.



 하지만 일부 계획 수정은 불가피했다. 당초 AMS-02에는 초전도 자석을 탑재할 예정이었다. 섭씨 -269도의 액체 헬륨을 이용해 초전도현상을 유도, 강력한 자기장을 만드는 장비다. 하지만 이 자석은 3년에 한 번씩 액체 헬륨을 교체해 줘야 한다. 미 우주왕복선이 올해 모두 퇴역하는 마당에 이는 큰 부담이 됐다. 결국 개발진은 초전도 자석보다 성능은 30%가량 떨어지지만 국제우주정거장(ISS) 퇴역(2020년 예정) 때까지 계속 운용할 수 있는 영구 자석을 AMS-02에 장착했다.



김한별 기자



 ※참고:AMS-02(www.ams02.org), NASA(ams.nasa.gov) 홈페이지, 『LHC,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이강영, 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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