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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거장들 ‘신음하는 지구촌’을 응시하다

중앙일보 2011.05.18 00:20 종합 26면 지면보기



빈곤 … 총기난사 … 매춘 …
사회성 짙은 경쟁작들 다수
30~40대 여성감독 4명 포진
아시아선 일본 2편이 전부



제64회 칸영화제의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장편 경쟁부문에 진출한 ‘더 트리 오브 라이프(The Tree of Life)에서 주연을 맡은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가 16일 시사회 직후 아내 앤절리나 졸리와 함께 차에 오르고 있다. 전쟁영화 ‘씬 레드 라인’으로 유명한 테렌스 맬릭 감독이 5년 만에 내놓은 ‘더 트리 오브 라이프’는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가족과 소년의 성장을 다룬 작품이다. [칸(프랑스) 로이터=뉴시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16살 소년의 총기난사 사건(‘위 니드 토크 어바웃 케빈’), 생활고로 버림받은 아들의 ‘아빠 찾아 삼 만리’(‘더 키드 위드 어 바이크’), 등록금을 충당하기 위한 여대생의 매춘(‘슬리핑 뷰티’), 교황 취임을 거부하는 추기경의 고뇌(‘하베무스 파팜’)….



 16일로 엿새째 접어든 제64회 칸영화제 장편 경쟁작의 면면이다. 예술영화는 ‘뜬 구름 잡는 얘기’일 거라는 고정관념은 올해 칸영화제에서 보기 좋게 깨진다. 최근 수 년간 전세계적인 금융위기와 양극화 등을 겪은 지구촌,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폐한 내면이 칸을 수놓았다. 내로라하는 거장 감독들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일까.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좋으리만큼 현실 밀착적 소재와 대중적 화법이 눈에 띈다.









벨기에 다르덴 형제의 ‘더 키드 위드 어 바이크’.



 ◆세 번째 황금종려상 노려=경쟁작 20편 중 이날까지 8편이 공개됐다. 이중 가장 호의적인 반응을 얻은 작품은 벨기에 감독 다르덴 형제의 ‘더 키드 위드 어 바이크(The Kid with a Bike)’다. 가난 탓에 아버지한테 버려진 소년이 우연히 만난 중년여성으로부터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받는다는 ‘올리버 트위스트’류의 이야기다.



 다르덴 형제는 ‘낯선 이로부터의 구원이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든다’는 주제 의식을 담담하지만 가슴을 뒤흔드는 특유의 연출력으로 풀어놓았다. 영화전문지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별 4개(5개 만점)를 주며 “그들의 영화가 늘 그랬던 것처럼 깊은 울림을 주는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들의 세 번째 황금종려상 수상 여부는 올해 가장 뜨거운 관심사 중 하나다. 다르덴 형제는 ‘로제타’(1999년)와 ‘더 차일드’(2005년)로 두 번이나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안았다.



 2001년 ‘아들의 방’으로 황금종려상을 탄 ‘칸의 아들’ 난니 모레티(이탈리아)의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도 비교적 호평을 받았다. 추기경들이 모여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투표인 ‘콘클라베’부터 신임 교황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도망 다니다 결국 교황직을 고사하기까지를 코믹하게 그린 작품이다. 신임 교황을 치료하기 위해 불려온 정신과 의사 역 모레티의 코미디 연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하지만 종교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발견한다는 역설적 시각만큼은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성 감독 약진, 아시아영화 주춤=올해 칸 영화제는 경쟁 부문에 30∼40대 여성 감독이 4명이나 포함돼 눈길을 끈다. 여성 감독의 작품 3편이 이미 공개됐다. 다양성을 위한 칸 영화제의 포석이었겠지만, 영국 감독 린 램지의 ‘위 니드 투 토크 어바웃 케빈(We need to talk about Kevin)’을 제외한 두 편에 대한 반응은 썩 좋지 않다. 프랑스 감독 마이웬은 아동 성폭력 전담반 형사들의 일상과 애환을 대담하게 접근한 ‘폴리스(Polisse)’를, 호주 출신 줄리아 리는 여대생 매춘을 소재로 한 ‘슬리핑 뷰티(Sleeping Beauty)’를 선보였다.



 경쟁 부문에서 아시아 영화는 여성 감독 가와세 나오미의 ‘하네주 노 츠키’와 미이케 다카시의 액션물 ‘하라-키리: 사무라이의 죽음’ 2편밖에 없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엉클 분미’가 태국 영화 사상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고, 이창동 감독의 ‘시’가 각본상을 수상했던 지난해에 비하면 아시아 영화가 주춤한 모양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핀란드)의 ‘르 아브르(Le Havre)’, 라스 폰 트리에(덴마크)의 ‘멜랑콜리아(Melancholia)’, 페드로 알모도바르(스페인)의 ‘더 스킨 아이 리브 인(The Skin I Live in)’ 등 거장들의 벽은 올해 유난히 높아 보인다. 칸영화제는 22일 시상식과 함께 폐막한다.



칸(프랑스)=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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