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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전관예우

중앙일보 2011.05.18 00:20 종합 33면 지면보기








조선에서 전임자를 제도적으로 우대한 것은 세조 3년(1457) 7월 봉조청(奉朝請)을 설치해 관직이 없는 공신과 종친들에게 녹봉(祿俸)을 준 것이 시초다. 그전에도 정승 등을 역임한 원로들을 자문 자격으로 우대한 적은 있지만 이때 정기적으로 녹봉을 주게 제도화한 것이다. 한 해 전 사육신(死六臣) 사건, 곧 상왕(단종) 복위 기도 사건이 발생하자 위기를 느낀 세조 정권이 쿠데타 동지들을 결속하고 종친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반대급부를 준 것이다. 세조 10년경 설치된 봉조하(奉朝賀)는 정조(正朝)·동지(冬至)·탄일(誕日) 등의 하례의식에만 참석하고 평생 녹봉을 받았다. 놀고 받는 돈은 항상 불의와 결탁한 결과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사례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전관예우(前官禮遇)라는 말은 일본 왕실 용어다. 다이쇼(大正) 15년(1926) 10월 21일 개정된 황실의제령(皇室儀制令) 제31조의 ‘대신의 예우와 전관예우 하사’에 관한 조항에서 나온 것이다. 일왕(日王)이 전직 고관들에게 하사하는 특전을 뜻하는 법률용어로서 메이지(明治) 시절부터 존재했다. ‘일본외교문서’에 따르면 1899년 7월 26일 하야시 곤스케(林權助) 주한 일본공사는 고종에게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후작은 우리나라 유신(維新)의 원훈(元勳)으로 지금은 한직에 있다고 하지만 전관예우(前官禮遇)를 받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동아일보 1934년 7월 9일자는 “궁중(宮中)에서 사이토(齋藤實) 전 일본 총리(조선총독 역임)와 다카하시(高橋是淸) 대장상(大藏相), 야마모토(山本達雄) 내무상에게 전관예우를 하사했다”고 전하고 있고, 1938년 6월 10일자에도 전 외상 히로다(廣田弘毅)에게 “종(從)2위, 훈(勳)1등을 내렸다”고 전한다. 이때 “특별히 전관예우를 사(賜)함”이라고 부기해 전관예우가 선택적으로 내려지던 은전임을 말해주고 있다. 법조계·국세청·금감원 등 국민들의 인신과 재산을 다루는 부서들을 중심으로 전관예우가 남아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할까? 일반 국민들의 인신과 재산을 희생시켜 자신들의 직업적 이익을 취한다는 뜻이다. 일제 잔재인 전관예우가 개정 변호사법으로 일부 사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다. 퇴직 전 1년간 근무했던 법원·검찰의 사건을 1년 동안 맡을 수 없게 한다는 것인데, 여타 기관에 남아 있는 전관예우도 국민들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는 범죄행위라는 관점에서 전면적으로 폐지돼야 한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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