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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앙일보 2011.05.18 00:18 종합 34면 지면보기






강찬호
정치부문 차장




“이 책 읽어 봤는데 내용이 좋다. 우리 당국자들이 중국을 다룰 때 명심할 문제들을 잘 지적했다.”



 최근 이명박(MB) 대통령이 읽고 감탄했다는 책이 있다. 연세대 문정인 교수가 중국의 외교 전문가들을 인터뷰해 쓴 『중국의 내일을 묻다』다. 청와대는 이 책 20권을 구입해 당국자들에게 돌렸다. 김성환 외교부 장관과 외교부 고위관리들이 열독했다고 한다.



문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핵심 브레인이었다. 그의 저서를 MB가 숙독하고 주변에도 권한 것이다. 중국에 관한 한 ‘실용외교’의 필요성을 절감한 MB의 마음씀씀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국과 철통동맹을 유지하면서 중국과도 ‘전략적 동반자’가 되겠다는 정부 행보는 살얼음판을 걷는 아이 형국이다.



 당장 정부는 지난달 한·중 국방장관 간 직통전화선을 개설하려다 암초를 만났다. 중국은 “그러려면 대만의 소령급 군인을 대전의 참모대학에서 1년간 연수시켜온 프로그램부터 끊으라”고 압박했다. 한국이 이 요구를 받아들여 10여 년 넘게 이어져온 이 프로그램을 중단할 기미를 보이자 미국이 발끈했다.



 “중국과 군사교류를 늘린다고 대만과의 오랜 교류를 끊을 필요까지 있느냐”고 워싱턴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한국이 우리랑 사전협의 하나 없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게 놀랍다. 한국은 매사 중국엔 잘하면서 왜 우리에겐 거칠게 구느냐”는 가시 돋친 말까지 나왔다. 그러면서 미국은 “중국·대만과 동시에 군사교류를 하는 싱가포르 모델을 생각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결국 정부는 대만 군인의 참모대학 연수는 중단시키되 하위레벨 정부기관에서 대만 관계자의 연수를 허용하는 절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이 한국의 고유권한인 대만 군사교류 중단 문제에 왜 이리 민감하게 반응했을까. 한 미국 관리는 “우리에겐 중요한 ‘원칙’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조그만 일 같아 보이는 이런 사안부터 한국이 중국 하라는 대로 따라 한다면, 앞으로 중국은 더욱 많은 사안에서 한국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것이다. 그게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겠느냐”는 것이다. 한국을 위하는 얘기인 동시에, 한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미국의 속내도 드러낸 말이다.



 이번 에피소드는 갈수록 힘이 커지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 사이에서 우리가 처한 입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우리의 대책은 뭘까. 미·중과 더욱 많은 대화, 그것도 제대로 된 ‘외교적 대화’를 늘려갈 수밖에 없다. ‘좋은 게 좋다’로 일관해온 수사형 외교에서 탈피해 주권국가로서 한국이 고수해야 할 원칙과 이해관계만큼은 평소에 미·중에 확실히 인식시켜 놓아야 한다. 대신 우리의 이해관계가 덜한 분야에선 미·중의 입장을 가급적 존중해 신뢰를 쌓아 둬야 하는 부담이 따를 것이다. 낯설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만이 G2(미국+중국) 시대에 정확히 양국 사이에 낀 한국이 생존과 번영을 담보하는 길일 것이다.



강찬호 정치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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