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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천년, 백년, 그리고 5년

중앙일보 2011.05.18 00:16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진국
논설실장




헨리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는 미수(米壽·88세)다. 1923년 5월 27일생이니 88번째 생일이 며칠 안 남았다. 그가 어제 역작을 내놓았다. 『중국에 대하여(On China)』다. 과거를 회고하기도 버거운 나이에 정력적인 그의 활동은 놀랍기만 하다.



 그의 경력은 화려하다. 하버드대 교수와 대통령 외교안보보좌관, 국무장관. 죽(竹)의 장막을 뚫었고, 베트남 휴전 중재로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전설적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현역이다. 그의 전기를 준비 중인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 하버드대 교수는 키신저가 “존 F 케네디부터 버락 오바마까지 모든 대통령에게 공식·비공식 조언을 해줬다”고 말했다. 청와대 행사처럼 밥 먹으며 대통령 연설을 들어주는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중요한 역사적 고비마다 뉴욕 타임스에 싣는 장문의 칼럼을 보면 날카로운 통찰력이 번득인다.



 1971년 7월 9일 그의 극비 중국 방문은 역사적 사건이다. 하지만 닉슨 대통령의 방중을 수행 취재했던 막스 프랭클(Max Frankel) 전 더 타임스 편집장은 “그건 너무 쉬운 일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 이후 고비고비마다 역대 정권에 조언해 오늘날 G2로 공진화(共進化·coevolution)하도록 만든 그의 역할이 훨씬 더 컸다는 말이다. 미국의 지도자와 중국의 지도자가 생각하는 방식은 너무 달랐다. 가치관의 차이가 세계적 위기로 급전될 수 있는 결정적 순간마다 키신저는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통역’을 맡았다.



 키신저가 본 중국 지도자들의 사고는 서양인이 생각하는 시공(時空)의 벽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먼저 시간 개념이다. 키신저는 미국 지도자들이 어떻게든 빨리 결론을 내려고 조급해한다고 지적했다. 분초를 다툰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지도자의 가치관은 참을 ‘인(忍)’자다. 마오쩌둥은 언젠가 키신저에게 “우리는 천년 단위로 시간을 잰다”고 말했다고 한다. 40년 전 오늘의 G2를 내다보며 손을 잡은 것도 긴 시간을 설계한 덕분이다.



 키신저가 중국 지도자에게서 본 또 한 가지는 실용적인 유연성이다. 키신저는 마오쩌둥의 선생은 마르크스나 레닌이 아니라 BC 247년에 즉위한 진시황이라고 말한다. 미·중 관계 개선을 처음 제안한 것은 마오다. 미·소 국경분쟁이 한창이던 1969년 마오는 자신의 주치의에게 이렇게 물었다. “북쪽과 서쪽에 소련, 남쪽에 인도, 동쪽에는 일본이 있다. 이들이 손을 잡고 우리를 공격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오는 진시황의 원교근공(遠交近攻)책을 따랐다. 멀리 있는 미국의 손을 잡았다. 중국 지도자들에게 이념은 중요한 게 아니란 사실을 키신저는 간파했다.



 키신저의 혜안, 40년 동안 현장을 누비며 자신의 전략을 구체화해온 정력이 부러운 것은 우리야말로 장기적 비전이 필요한 분단국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키신저의 방중 직후인 71년 11월부터 북한과 비밀 접촉을 시작했다. 이듬해 5월 초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해 7·4 남북 공동선언을 만들었다.



 그러나 남도 북도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말았다. 당시 서울에 파견된 CIA 지부장이었던 도널드 그레그(전 주한 미국대사)는 평양을 다녀온 이후락이 “(김일성은) 매우 강한 인물이다”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회고했다. 방북(訪北)이 통일 대신 유신(維新)의 빌미가 됐다는 증언이다. 정권을 초월해 일관성을 지녀야 할 남북관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요동쳤다. 100년은커녕 10년을 지속할 그림도 그리지 못했다. 5년 단임 정권의 업적 장식에만 골몰한다.



 협상의 상대가 있으니 이런 기복들이 남쪽 탓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를 하느냐 마느냐는 북한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북한의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는 원칙론이다. 원칙만 고수하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변화를 위해 필요한 건 키신저처럼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뛰어넘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창의적 사고, 나아가 직접 뛰어들어 새 판을 짜는 추진력이다.



 중국처럼 1000년, 미국처럼 100년은 아니더라도 조금 더 길게 내다보는 전략을 세울 수는 없는 걸까. 키신저 같은 거물이 없다면 다수 전문가들이 손을 잡아 대안을 찾아내는 방법도 있다. 키신저의 현실주의와 마오의 실용주의가 빚어 놓은 ‘G2 시대’에 이념이란 너무나 작은 곁가지가 아닌가.



김진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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