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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스타 총장이 많아야 한다

중앙일보 2011.05.13 00:29 종합 33면 지면보기






양영유
정책사회 데스크




연세를 밝혀 죄송하지만 1936년생인 서남표 KAIST 총장은 우리 나이로 76세다. 전국 200명의 4년제 대학 총장 중 여덟 번째 연장자다. 연임 임기(2014년 7월)를 마치면 79세가 되는데도 집념은 청춘 같다. 최연장자는 건양대 김희수 총장이다. 83세(28년생)지만 매일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대전 건양대병원과 캠퍼스를 살핀다. 점퍼를 입고 다니는 그에게서 ‘근엄’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길여 경원대 총장(32년생)은 여걸이다. 경원대와 가천의과학대 통폐합을 진두지휘하며 경쟁력 높이기에 열정을 불사른다. 전국 200명의 총장 중 칠순 이상은 30명 정도다. 나이를 잊고 손자뻘 대학생, 자식뻘 교수들과 씨름하는 모습에 경의를 표한다.



 교육담당 기자를 하면서 여러 대학 총장을 인터뷰했다. 40명이 넘는다. 교육에 대한 열정과 철학이 모두 훌륭했다. 하지만 가슴을 콕 찌르는 말은 외국 총장한테 주로 들었다. 취재수첩을 들춰봤다.



 “테뉴어(정년보장)든, 강의평가든 미국에선 뉴스도 안 된다. 총장은 피 말리게 경쟁하는 자리다.”(한인 최초의 미국 대학 총장인 캘리포니아주립대 계열 UC머시드 강성모 총장)



 “교수가 스트레스 받지 않는 대학은 발전이 없다. 대학 생존의 법칙은 교수다. 우리는 정년보장을 안 한다.”(국립 대만대 리쓰천 총장)



 “노벨상 수상자를 7명 배출했다. 기초과학이 중요하다.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장기 프로젝트를 지원해야 한다.”(일본 도쿄대 하마다 준이치 총장)



 특히 “테뉴어는 뉴스도 안 된다”는 강 총장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국에서는 전체 교수의 절반도 정년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뉴스거리도 아닌 일로 서남표 총장이 스타가 됐단 말인가. 순간 우리 대학의 현실이 부끄러웠다. 고교생 때 도미(渡美)한 뒤 2006년 52년 만에 귀국해 KAIST 총장을 맡은 그가 유명해진 시발점은 테뉴어 심사를 무기로 한 교수개혁이었기 때문이다. 간판(KAIST) 효과도 있었다. 서남표여서 화제가 된 게 아니라 KAIST여서 뉴스가 됐다는 것이다. 서 총장은 일단 ‘학생 자살사태’의 위기를 넘겼다. 그렇다고 방법론까지 면죄부를 받은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진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0.1%의 영재를 박제된 ‘공부기계’로 다그쳐선 세계적인 과학자가 나오지 않는다. 공부·연구 재미에 푹 빠져 창조적 상상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KAIST를 만드는 리더십이 진짜 실력일 것 같다.



 총장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그들의 실력이 대학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대학은 그동안 양적으론 발전했다. 이젠 질을 따져야 한다. 사회에서 써먹지도 못하는 교육을 하고, 교수 자리 보전을 위해 억지로 전공을 유지하는 것은 경쟁력을 좀먹는 행위다. 그런 폐부를 도려내는 일은 총장의 몫이다. 뚝심 있고, 열정 있고, 강단 있고, 리더십 있는 스타 총장이 많이 나와야 한다. 총장이 욕을 먹어야 교수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대학이 발전한다. 정부에도 쓴소리를 해야 한다. 자율과 경쟁이 원칙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관치(官治)로 돌변했다며 한숨 쉬는 분이 많다. 정부가 돈줄을 쥐고 흔드니 도리가 없다고 한다. ‘뒷방’ 비판보다는 정면에서 송곳 비판을 하는 분들이 절실하다.



 총장은 어떤 자리인가. 시대의 지성이며 대학의 상징이며 사회의 리더다. 권력 눈치 보지 말고 교육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교수들을 편하게 하거나, 외부 활동에만 열심이거나, 개인 명예 쌓기에만 욕(慾)을 보이는 분이 있는 대학은 미래가 암울하다.



 학생과 교수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린 리더십, 대학을 마케팅하는 열린 경영마인드, 욕먹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소신과 뚝심이 진짜 실력이다. 서울대니까, KAIST니까 얘기가 되는 게 아니라 ○○○총장이니까 뉴스가 돼야 한다. 실력이 탄탄하고 모두가 존경하는 스타 총장이 많은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다.



양영유 정책사회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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