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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의 시시각각] 자대 배치의 추억

중앙일보 2011.05.13 00:22 종합 34면 지면보기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퀴즈. 대한민국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부대는 어디일까. 공수특전단일까 아니면 해병대 수색대일까. 해군 특수전여단(UDT/SEAL)이나 해난구조대(SSU)도 혹독한 훈련으로 유명하니 후보감이다. 그러나 어느 곳도 ‘최고로 힘든’ 부대는 아니다. 정답은 ‘자대(自隊)’. 자기가 근무하는 부대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힘들다는 뼈 있는 농담이다.



 나는 1980년 2월에 입대했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 받고 3월 말 의정부 보충대로 이동했다. 자대 배치를 앞둔 훈련병들이 머무르는 보충대는 당시 온갖 비리의 온상이었다. 어느 부대로 배치되느냐에 따라 군 생활이 상대적으로 편할지 고달플지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연병장에 집합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길게 늘어선 줄 맨 앞에 투표함처럼 생긴 상자가 놓여 있었다. 차례대로 상자에 손을 넣어 종이 한 장씩 꺼내라고 했다. 그리고 종이에 쓰인 글자를 복창하도록 시켰다. 내 차례가 와서 꺼낸 종이에 적힌 글자대로 소리쳤다. “30사(師)!” 감독 차 옆에서 지켜보던 부사관이 내 뒤통수를 탁 때리며 말했다. “너 임마, 땡 잡았다.”



 알고 보니 서울 방어를 맡은 30사단은 서울시내로 외출·외박을 나갈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선호도가 꽤 높은 부대였다. 그전에는 자기들 맘대로 배치하다 왜 추첨을 하게 됐을까. 나는 그때가 10·26(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찾아온 ‘서울의 봄’ 시기였다는 데서 힌트를 얻는다. 자대 배치를 둘러싼 비리가 영 꺼림칙했던 군 지휘부가 추첨 방식을 도입해 약점 잡힐 소지를 미리 차단했던 게 아니었을까. 권력의 향방이 어디로 튈지 몰랐으니 일종의 몸조심을 한 것으로 짐작한다. 실제로 추첨 방식은 곧 사라졌다고 들었다.



 그제 논산 육군훈련소가 훈련을 마친 1700여 명의 자대 배치 컴퓨터 추첨에 신병 4명과 신병의 부모 4명을 처음 참여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31년 전의 추억을 떠올렸다. 물론 기갑·통신·공병 등 이미 특기가 정해진 신병들은 해당 병과학교로 가겠지만, 야전부대로 가는 약 35%의 신병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추첨이다. 다 큰 자식인데 왜 부모가 나서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보다는 군이 공정성을 그만큼 중시하고 부모들 마음까지 배려하겠다고 약속하는, ‘애교 있는 이벤트’쯤으로 봐주고 싶다.



 며칠 전 나는 아들과 아들 친구에게 식사를 냈다. 아들과 어릴 때부터 친했던 친구가 오는 24일 입대한다기에 밥이나 한 끼 같이 먹자고 했다. 아들 친구가 “공익으로 갈 수 있었지만 현역을 택했다”고 해서 놀랐다. 무릎이 안 좋고 시력도 나빠 신체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았단다. 병무청에 재신검을 신청하고 무릎이 좋아졌다는 진단서도 제출했다. 올 3월에 ‘드디어’ 3급 판정을 받았다. “사회와 단절된 공간에서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었다”고 했다. 기특했다. 부모님이 말리시지 않더냐고 했더니 “외려 잘했다고 하시더라”는 것이다.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라섹 수술로 시력을 올려 입대한 친구도 있어요”라고 아들 친구는 말했다. 요즘 젊은이들, 나약하다고 지레짐작할 게 아니다.



 젊고 건강하니까, 게다가 더러는 신체검사를 다시 받아가면서까지 군문(軍門)에 들어서는 수많은 청춘들을 우리 사회는 정말 잘 대접해야 한다. 포시럽게 키우라는 말이 아니다. 군인답게 엄정한 규율로 단련시키되 모든 과정이 공정하면 될 것이다. 자대 추첨 배치도 그중 하나라고 본다. 결국 ‘믿고 맡길 만한 군대’가 관건이다. 신뢰가 핵심이다. 신뢰의 첫 단추는 공정성에서 찾아야 한다. 어제 대학 재학 중 입대한 육군 훈련병이 고열 상태에서 야간행군에 투입됐다가 숨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입대한 지 딱 한 달이었다. 안 그래도 불안한 판에 이런 소식이 들릴 때마다 속이 바짝 타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완전히 믿고 맡기려면 아직 멀었다. 군은 더 노력해야 한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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