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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287> 새마을 운동의 과거와 현재

중앙일보 2011.05.13 00:07 경제 18면 지면보기



41년 역사 새마을운동, 회원 200만 명 넘는 전국 최대 시민단체죠





올해부터 새마을의 날(4월 22일)이 법정 기념일로 승격됐습니다.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을 제창한 지 41년 만의 일입니다. 제창일은 법정 기념일이 됐지만 새마을운동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극과 극을 달립니다. 농촌 근대화 프로젝트의 결정적인 열쇠였다는 찬사와 독재정권이 농민을 동원해 체제 유지에 이용했다는 비판이 평행선을 긋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마을운동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전영선 기자



새마을운동 약사



새마을운동중앙회에 따르면 새마을운동은 1970년 4월 22일 부산에서 열린 한해(旱害) 대책 지방장관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이전에도 농촌운동은 존재했지만 ‘새마을’이란 명칭은 이때부터 사용됐다는 것이 중앙회 측 설명이다. 이후 김현옥 당시 내무부 장관이 새마을운동 1~3기 대책을 발표하고 “새마을운동을 통해 1980년까지 도시와 농촌생활 환경의 격차가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시작은 이처럼 농촌 환경 개선 프로젝트였다.









1970년대 농촌 새마을운동의 주요 사업이었던 마을 길 포장 현장. 전북 남원시 운봉읍 신기리의 옛 행정구역인 ‘남원군 운봉면 신기리’가 새겨진 새마을 표지판이 눈에 띈다. [중앙포토]






80년 내무부에서 발간한 ‘새마을운동 10년사’에 따르면 새마을운동은 71년 시험단계를 거쳐 72년부터 본격화했다. 73년부터는 전국 3만4655개 마을을 ‘기초마을’ ‘자조마을’ ‘자립마을’ 3개 등급으로 나누고 각 마을 실정에 적합한 새마을 사업을 추진하도록 독려했다. 우수 마을에 자원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마을 간 경쟁을 유도했으며 이는 70년대 농촌사회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마을마다 경운기가 드나들 수 있도록 잘 다져진 길이 생겼으며 초가 지붕은 사라졌다. 새마을운동의 전성기였다. 전상인(사회학)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신뢰, 연결망, 공동체, 리더십 등을 따지는 사회자본 이론이 정립되기 전인 70년대에 근면·자조·협동 등 무형의 자원을 정책 수단으로 효과적으로 사용했고 새마을운동을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농촌 새마을운동은 제창자인 박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침체기를 겪었다. 80년대 들어 운동의 주도권은 형식적으로나마 관에서 민간으로 이양됐다. 80년 12월 1일 새마을운동중앙본부가 만들어졌고 운동 중심축도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했다. 80년대는 86년 아시안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에 대비한 ‘질서 지키기 캠페인’ 등을 전개했다. 90년대 들어서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금 모으기 운동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었다. 2000년 6월 15일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북 교류사업이 진전돼 새마을운동 차원의 교류사업이 추진됐다.



 새마을운동의 평가









2008년 3월 서울 중랑천에서 새마을운동 회원들이 강 바닥에 쌓인 쓰레기를 걷어내고 있다.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한 마을에서 주민들이 새마을운동 로고가 선명히 새겨진 마을회관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새마을운동 중앙회는 아시아·아프리카 10개국 17개 마을과 결연을 맺고 ‘저개발 국가 새마을 협력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학계에서는 새마을운동이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그 의미와 성과에 대한 평가와 해석은 일부 엇갈린다. 평가는 새마을운동이 성공인지 실패인지에서부터 나뉜다. 황병주 국사편찬위원회 편사 연구사는 이런 현상에 대해 “성공을 주장하는 논의들은 새마을운동 이후 농촌의 몰락을 설명할 수 없다. 실패라고 주장하는 입장도 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농민의 열정을 설명할 수 없다”(논문 ‘새마을운동을 통한 농업 생산과정의 변화와 농민 포섭’ 중)고 말한다. 보는 각도에 따라 새마을운동은 성공인 동시에 실패일 수 있지만 성공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새마을운동의 의미를 운동 자체에서가 아니라 운동이 초래한 사회 변화에서 찾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에는 특히 새마을운동 열성 회원들을 이끈 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새마을운동은 분명 관이 주도한 운동이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통해 목표가 설정됐고 지시를 따르도록 했다. 이 때문에 새마을운동은 동원된 시민운동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참여한 농민들의 역할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관이 앞장섰지만 운동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개인의 참여와 그에 따른 삶의 변화를 ‘조정된 것’으로만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민대 사학과 김영미 교수는 저서 『그들의 새마을운동』에서 “새마을운동의 성공사례 뒤에는 지역사회의 자발적인 노력과 에너지가 있었다”고 말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지역농민들은 단순히 국가가 지시한 사항을 수행한 것을 넘어 지역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자발적인 판단을 했고 이들의 판단은 때로는 국가의 지시와 일치하지 않기도 했다. 98년부터 5년간 새마을중앙회 회장을 지낸 강문규 지구촌나눔운동 이사장도 “기쁜 마음으로 동원돼 자발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회원들을 움직이는 것은 권력의 지시라기보다는 애향심이었다”고 말했다. 관이 주도한 시민운동이라는 한계 속에서도 새마을운동의 회원들을 움직이는 동력은 아래서부터 나온 것이기에 40년 넘는 세월 동안 지속할 수 있었다.



새마을운동의 현재











80년대 이후의 활동은 이전만큼 뚜렷한 기억을 남기지 못했다. 새마을운동에 대한 비판과 긍정이 새마을운동 초창기인 70년대 농촌운동에 한정돼 있는 이유다.



새마을운동에 지속적으로 관여해 온 사람들은 이런 시각을 무척 서운하게 생각한다. 새마을운동은 70년대 이래 이어져 왔으며 헌신적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해 왔다고 말한다. 이재창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은 “80년대에는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시민문화운동으로, 90년대에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금 모으기 운동 등으로 꾸준히 사회 변화에 반응하며 참여해 왔다”고 말한다.



조직도 건재하다. 현재 새마을운동 회원은 전국적으로 200만 명이 넘는다. 이 중 운동을 주도하는 새마을 지도자, 새마을부녀회 지도자는 17만8000여 명. 회원만 놓고 봤을 때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민단체다. 17개 시·도 지부와 232개 지회 등 전국에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어 행정력이 안 미치는 곳까지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새마을운동은 홀몸노인 돌보기 사업, 결식아동 도시락 배달 사업 등을 통해 사회안전망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재해지역, 재난지역 등 새마을운동 특유의 조직력이 필요한 곳에서도 빛을 발한다.



물론 새마을운동이 극복해야 할 문제점도 적지 않다. 주요 사업이 국가 정책과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특정한 정파를 대변하는 ‘관제 시민운동’을 한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 1인당 국민소득 100~300달러 시대에 적합한 운동을 2만 달러 시대에도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뉴 새마을운동



결국 새마을운동이 살아남으려면 변해야 한다. 이에 따라 시대에 맞는 시민단체로서의 역할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이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긴 역사가 오히려 변화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잘살아보세’로 요약되는 새마을운동의 낡은 이미지도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열성 회원들은 빠른 속도로 퇴장하고 있지만 새로운 세대를 운동으로 끌어들이는 속도는 더딘 점도 새마을운동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새마을운동은 현재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새마을운동 중앙회 측은 이런 시도를 ‘뉴 새마을운동’으로 명명하고 새로운 과제를 찾고 있다. 뉴 새마을운동이 가장 공을 들이는 분야 중 하나는 환경운동이다. 환경운동의 성공과 실패는 일상에서의 실천에 달려 있다. 이 때문에 생활 속 작은 규칙을 정하고 이를 열성적으로 실천하는 데 익숙한 새마을운동이 환경운동을 주도하는 게 제격이라는 평가다.



새마을운동 중앙회는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을 40세 이하의 젊은 회원들의 모임 ‘Y-SMU’ 포럼을 만들고 14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창립대회를 연다. 포럼은 사이버위원회, 글로벌청년위원회, 직능위원회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기존 새마을운동 조직과는 다른 운영체계를 구성하고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포럼은 앞으로 지역 브랜드 가치 높이기 사업, 영농체험 사업 등을 꾸려나갈 예정이다.



새마을운동의 세계화도 주목받는 사업이다. 새마을운동의 경험을 필요한 곳에 ‘수출’하면서 세계시민으로 역할을 하는 한편 국가 위상도 높일 수 있다. 통일 후를 대비해 북한 재건과정에서 새마을운동이 하나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어 관심을 모은다.



장기명 새마을중앙회 홍보부장은 “역사 속 새마을운동이 아닌 현재의 새마을운동으로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특히 통일 후에는 새마을운동이 축적하고 있는 경험이 빛을 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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