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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의 살아있는 전설들, 떠난 전설에 고개 숙이다

중앙일보 2011.05.12 00:30 종합 30면 지면보기



스페인 골프 천재, 세베 바예스트로스 장례식



세베 바예스트로스의 아들 미겔(오른쪽)이 유골을 들고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파드라냐 AP=연합뉴스]





바람에 날리는 길고 검은 머릿결 속에 문뜩문뜩 드러나던 오똑한 코와 날카로운 눈매는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 히스클리프를 연상시켰다. 1979년 디 오픈 챔피언십. 스물두 살 골프 천재가 폭풍 속에서 클라레저그를 높이 치켜올린 지 32년이 지났다. 이제 그의 영혼은 그 바람에 실려 영겁의 시간 속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



 전례 없는 카리스마, 열정과 허세, 모험을 즐겼던 드라마틱한 승부사, 골프라는 고루한 스포츠에 생명을 불어넣었던 필드의 엘비스 프레슬리. 스페인을 넘어 유럽 골프의 심장을 고동치게 한 승부사 세베 바예스트로스의 장례식이 11일(한국시간) 스페인 북부 해안의 작은 마을 파드라냐의 산페드로 교회에서 거행됐다. 파드라냐는 세베의 고향이다.



 닉 팔도, 콜린 몽고메리,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 등 유럽의 명골퍼들이 바예스트로스의 유골 앞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경쟁자였으며 친구였다. 골프의 고향인 스코틀랜드에서 날아온 백파이프 연주자는 굴곡 많은 바예스트로스의 생애를 닮은 강렬하면서도 애절한 멜로디로 장례 행렬을 인도했다. 수많은 인파는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바예스트로스의 마지막 앞에서 “그가 너무 빨리 천상의 필드로 갔다”고 아쉬워했다.



 32년 전 바예스트로스가 입었던 짙은 네이비 블루 색깔의 옷을 입은 소년소녀들이 장례식을 이끌었다. 아이들은 바예스트로스가 어린 시절 가질 수 있었던 유일한 클럽 3번 아이언을 들었다. 바예스트로스는 복싱연습을 하다 허리를 다쳐 드라이버를 똑바로 치지 못했다. 그러나 페어웨이 한가운데보다 깊은 숲 속에서 그는 더 빛났다. 낡아빠진 3번 아이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샷을 했다. 그가 숲 속에서 트러블샷을 하는 모습은 헨델이나 피카소 같은 예술가의 모습이었다. 바예스트로스는 디 오픈 3승과 마스터스 2승 등 메이저대회 5승을 거뒀다.



 유러피언 투어는 로고에 있는 스윙 모습을 해리 바든에서 바예스트로스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그의 동생인 발도메로는 “장례식은 이 마을 촌로의 그것처럼 평범하게 치러졌다”고 말했다. 그의 유골은 집 마당 앞 목련 나무 아래 뿌려졌다. 목련 나무 아래에는 그가 사랑한 3번 아이언과 추모 편지 등이 수북이 쌓였다. 골프의 찬란했던 한 시대는 막을 내렸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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