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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북, 핵프로그램 인식 재고할 때 왔다

중앙일보 2011.05.12 00:24 종합 33면 지면보기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명박 대통령이 독일에서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안을 했다. 북한이 국제사회와 핵포기를 진정으로 확고하게 합의하면 내년 서울에서 열리는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하겠다는 것이다. 제안의 내용은 짧지만 매우 함축적이다.



 무엇보다 북한 비핵화를 국제사회와 함께 적극적으로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장기간 정체에 빠진 6자회담 재개가 모색되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제안은 회담 재개를 위한 동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6자회담에서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포함한 전체 핵 프로그램의 폐기 용의를 밝히고, 나머지 5개국은 안보와 경제 관점에서 북한과의 협력사업 계획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는 당국자의 설명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 대통령의 제안은 2009년 9월의 그랜드바긴 제안을 6자회담의 협상의제로 올릴 수 있는 여지도 제공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제안은 북한에 대해 당장 핵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남북대화, 미·북대화를 거쳐 6자회담이 재개되면 그 자리에서 북한의 최우선 관심사인 안전보장과 경협문제를 핵의 포기 수순에 상응해 풀어가겠다는 것이다. 또 북한에 대해 국제사회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다는 의미도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여한다면 북한으로서는 국제사회로의 진출과 동시에 체제 안정화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북한은 이 대통령의 제안에 의구심부터 가질 것이다. 북한 지도부의 세계관이나 북한의 정책에 비추어보면 놀랄 일은 아니다. 리비아 사태를 보면서 북한은 핵 억제력 구비를 잘한 선택이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정책’ 때문에 핵 억제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 왔다. 북한이 느끼는 ‘외부위협’에 대한 안전보장의 방패로서 핵이 사용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의 인식은 세상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이다. 마침 미국과 중국이 워싱턴에서 제3차 전략경제대화를 마쳤다. 지난 1월의 미·중 정상회담에 이어 이번 전략경제대화가 국제사회에 확인시켜준 것은 두 나라가 새로운 세계질서 정립을 주도한다는 점이다. 북한의 후원국 중국이 미국과 협력해 양자 간 문제는 물론 국제문제를 풀어간다는데 북한이 안보위협을 느낄 이유가 없다. 냉전의 틀은 한반도에도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6자회담 참여국 중 북한 이외의 나라 간 관계발전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래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그것은 단지 개인 권력의 장기화를 위한 것일 뿐이다.



 한편 핵안보정상회의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연합 국가, 인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이 참여한다. 북한의 참여가 불리하지 않은 자리다. 또 핵을 포기한 우크라이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참여한다. 핵을 포기했다고 체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은 사례다. 오히려 경제는 물론 전반적인 국가발전의 기반이 한층 확대됐다.



 이 자리에서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로드맵을 확약하고, 한국·미국·일본 등이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의 세부계획을 제시하면, 이는 어떠한 국제합의보다도 실천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안전보장과 대규모 경제협력을 국제사회가 보장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국제무대에 등장하는 일이며 동시에 북한이 경제회복의 지름길을 찾는 기회이기도 하다. 생각을 바꾸면 길이 열린다. 덩샤오핑이 시작한 개혁·개방은 중국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시키면서 중국공산당의 통치구조를 침해하지 않았다. ‘원칙에 철저, 유연한 접근’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원칙을 이제는 이해할 때도 되었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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