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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끝나지 않은 동의대 사태의 눈물

중앙일보 2011.05.12 00:23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상진
부산·경남 취재팀장




부산 남부경찰서 광남지구대 최봉규(30) 순경은 대를 이어 경찰로 근무 중이다. 그의 아버지는 1989년 5·3 동의대 사태로 순직한 고 최동문(당시 36세) 경위다. 최 순경이 아버지를 잃었을 때는 여덟 살. 당시 순직 경찰관 장례식장에서 슬픔을 가누지 못하던 어머니(54)의 상복 치마를 잡고 동그란 눈을 두리번거리던 그다. 그는 어머니가 시장에서 자그마한 옷가게를 하면서 뒷바라지한 덕분에 대학에 다닐 수 있었다. 그는 5·3 동의대 사태로 순직한 경찰관 7명의 유가족 가운데 처음으로 지난해 10월 경찰에 특채됐다.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대부분 유족들은 가슴속 응어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 유족들의 이러한 속내를 아는 13만 현직 경찰관들도 마찬가지다. 이번 달로 22주기를 맞는 5·3 동의대 사태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동의대 사태 순직 경찰관 명예회복과 보상을 위한 관련법 개정은 아직도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동의대 사태 관련 법률안은 2개다. 2009년 전여옥·권경석 의원 등이 발의한 ‘민주화 보상법’ 개정안은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결정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인기 의원이 발의한 ‘동의대 사건 등 희생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은 순직 경찰관의 명예회복과 특별보상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2002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동의대 사태 관련자 46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면서 재심 논란이 시작됐다. 위원회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희생된 경찰관 유족들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으나 피해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됐다.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받은 학생들은 모두 사면되고 1인당 평균 2500만원의 보상금까지 받았다. 시위 가담 학생들이 민주화운동 관련자가 되면서 시위 진압에 나섰다 숨진 경찰의 명예는 땅에 떨어졌다. “학생이 죽으면 열사(烈士)고, 경찰이 죽으면 뭐냐”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유환(52) 유족회장은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 못 하면 이 나라를 떠나겠다. 숨진 경찰관 7명의 명예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나갈 13만 경찰이 자부심을 갖고 일하도록 해줘야 할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5·3 동의대 사태 때 동생 정영환(당시 27세) 경사를 잃었다.



 동의대 사태가 일어난 1989년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완벽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의 반정부 집회나 시위는 어느 정도 정당성이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동의대 사태는 부당한 공권력에 항거한 학생운동이 아니라 학내 문제에서 출발했다. 설혹 학생들의 주장이 옳다고 해도 전경을 납치하고 경찰에게 화염병을 던져 숨지게 한 행동은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 불편한 과거지만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재조명해서 바로잡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다. 법과 질서 유지의 최일선에 서 있는 경찰의 명예가 짓밟힌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김상진 부산·경남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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