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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통상관료들의 전문가 함정

중앙일보 2011.05.12 00:22 경제 8면 지면보기






서경호
경제부문 기자




2009년 12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인터뷰하면서 적잖이 놀랐다. 이제까지 장관 여럿과 인터뷰를 해봤지만 문서로 된 공식 답변서 없이 즉석에서 답하는 건 그가 처음이었다. 김 본부장은 서면질의를 하나씩 훑어가면서 군더더기 없이 정제된 답변을 이어갔다. 그를 보면서 통상관료의 전문성과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전문성과 자신감이 어떻게 최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 오역 파동으로 이어졌는지는 참으로 연구할 만한 주제다.



 얼마 전에도 통상관료의 전문성에 두 손을 들었다. 지난 9일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는 ‘한·EU FTA에 대한 오해, 사실은 이렇습니다’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외교통상부 FTA 홈페이지(www.fta.go.kr)에도 같은 자료를 올렸다. 한·EU FTA 비준 동의 과정에서 일부 시민단체가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국회의 지적에 따라 그간 제기됐던 오해에 대한 사실관계를 정리한 문서다. 기사 마감시간 한참 뒤인 오후 6시반에야 자료를 배포하는 ‘불친절함’은 굳이 탓하고 싶지 않다. 필요하다면 한밤중에라도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게 기자의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무려 94쪽에 달하는 이 자료를 보면서 통상관료들이 전문성의 함정에 빠진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WTO SPS 협정, ENT(경제적 수요심사), OBD, MFN 세율, 역외산 재료 조달 방식(sourcing pattern)…. 알 듯 모를 듯한 이런 단어들이 아무런 설명 없이 나열돼 있었다.



통상교섭본부 조직 내에서나 부처 간에 알 만한 전문관료 간에는 얼마든지 그들만의 전문용어(jargon)를 쓸 수 있고, 그게 또 효율적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의 오해를 풀겠다는 좋은 취지로 애써 만든 자료가 왜 이래야 하는지는 이해하기 힘들다. 일반인에게, 아니 비교적 가까이서 통상정책을 지켜본 출입기자들에게 이 자료를 보고 얼마나 오해가 풀렸는지 한번 물어봤으면 한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한·미 FTA 비준 반대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정부로선 진짜 고비가 남아 있는 셈이다. 정부가 FTA 여론전에서 승리하려면 눈높이를 더 낮춰서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아는 것을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그게 진짜 전문가다.



서경호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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