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정수 전문기자의 경제 산책] 세종시 갈 기관, 안 갈 기관

중앙일보 2011.05.12 00:21 경제 8면 지면보기






김정수
전문기자




세종시 얘기를 해야겠다. 정책과 법으로 정해진, 철 지난 얘기를 왜 하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사안은 아직 진행형이다. 그곳에 아파트 건설 부지를 분양받았던 건설사들이 최근 사업을 포기한 것이나, 대통령 직속 지방발전위원회 위원장이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에 예외는 없다”고 지난주 얘기한 것을 보면 아직 진행형임은 분명하다.



 세종시로 가야 할 기관부터 보자. 36개 중앙부처는 지난해 가을 확정된 원안에 따라 내년부터 옮겨야 할 것이다. 그러는 게 나라에 도움이 되어서는 아니다(계산법에 따라 나라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과 도리어 해가 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할지 모르겠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약속이어서도 아니다(국민에 대한 약속을 저버린 게 한두 번인가). 이전계획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거나 적어도 무언(無言)으로 방조한 게 그들이어서다.



 옮겨가야 할 곳이 또 있다. 바로 세종시 이전을 법으로 만든 국회다. 그렇게 좋은 일을 남을 시키고 자기는 빠지겠다는 것은 너무나 큰 자기희생이라서다. 또 지난해 재발한 논란 중에서도, 지방균형발전을 통해 나라에 도움이 된다며 세종시 이전을 지지한 정치인 중에 다음 대통령이 될 사람은 청와대와 함께 옮겨가야 한다. 세종시 이전이 나라를 위해 도움이 된다고 그토록 믿는 분들이라면 자발적으로 이전에 참여할 것이다.



 이들 모두가 세종시로 가야 하는 이유는, 이전의 결과가 좋을 경우 그 공을 스스로에게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전의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다시는 스스로에게 또 나라에 해가 되는 정책을 발상·기획하거나 추진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야 이 땅에 책임행정과 책임정치가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젠 세종시로 보내지 말아야 할 기관을 보자.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건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다. 그들의 처지가 안쓰러워서도, 그들만을 위해서도 아니다. 나라를 위해서다. 나라가 처한 상황이 다른 어느 때보다 그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나라 밖 사정은 한국의 정책과 제도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신흥국의 부상, 글로벌 경제 불안, 고령화, 기후변화와 자원 고갈 등은 나라 전체의 환골탈태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 도전은 정책담당자들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과 강도를 넘어선 것들이다. 정치·사회적 바람(風)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연구기관의 역할 강화가 절실하다는 얘기다.



 나라 안 사정은 더욱 그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글로벌 위기 이후 진행된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믿음의 훼손이 심각해서다. 그 훼손이 얼마나 심했으면 초과이윤공유제, 국민연금을 통한 대기업 통제, 중소기업 적합업종(옛말로 중소기업 고유업종) 등이 공공연하게 주장될 지경에 이르렀겠는가. 이 또한 정책담당자로서는 입도 벙긋하기 힘든 사안이다.



 관련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난 수십 년 정부 주도와 개입이 당연시되어 온 가운데서도 나름대로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오늘의 시장경제체제로 키우는 역할을 해온 것이 연구기관이라는 점이다. 시장경제의 재발진을 위해서도 그들의 더 큰 역할과 머리와 줏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들에게서 기대되는 역할 수행에는 나라에 대한 충성심, 소속된 연구원에 대한 헌신, 맡은 바 정책 연구에 대한 소명의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들더러 삶의 터전을 옮기라면서 그들에게서 그런 사명감을 기대할 수 있을까 싶어 안타깝다. 또 민간과 소통을 잘 해야 한다면서 왜 정부와 민간 사이의 핵심적 소통채널인 연구기관이 민간에게서 더 멀어져야 하는지 궁금하다. 그들도 사람이다. 같이 살고픈 가족과 공부 잘 시키고픈 자식이 있다.



 오늘도 무시 못할 숫자의 연구원(員)들이 연구원(院)을 떠나고 있다. 지금 방향을 제대로 잡느냐 마느냐에 따라 나라가 여기서 주저앉느냐 선진국으로 뛰어오르느냐가 정해지는 중차대한 때다. 이러한 때에 나라의 두뇌들이 둥지를 뒤로 하고 있다. 떠나는 이들의 두뇌 유출과 남아 있어야 하는 이들의 사명감 저하가 정책 오류와 왜곡을 통해 국민경제에 입힐 피해는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김정수 전문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