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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백건우 이번엔 리스트다

중앙일보 2011.05.12 00:10 경제 17면 지면보기
백건우(65)는 느리다. 말 하는 데 한참이 걸리고, 걸음도 유난히 느리다.


러시아 영화 ‘행복’ 본 뒤 무소르그스키가 궁금해졌어요
전기와 자료 있는 대로 찾아 보고 그의 삶을 이해하게 됐죠
그때부터 한 작곡가만 파고들며 전곡 연주를 했어요
이번엔 리스트예요, 다음엔 또 누군가가 내게 다가오겠죠

“많은 연주자가 조급해한다. 자신은 왜 주목받지 못하는지, 세계적 명성을 빨리 얻어야 하는 것 아닌지 말이다. 하지만 꽃을 보라. 피는 시기가 다 다르다. 늦게 피는 꽃이 있다. 그때까지 쉬지 않되 기다리는 것이 예술가가 할 일이다.”



그는 후배들에게 느리고 늦은 성공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자신은 늦게 핀 꽃이 아니다. 열 살에 ‘신동’으로 데뷔하며 화제를 모았다. 열다섯에 장학금을 받으며 뉴욕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입학했다. 지금의 그를 만든 건 그 시절 이후의 고민이다. 평생 음악을 하기로 결심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바이올린을 사달라고 한 후 몇 번이고 음악을 그만뒀지만 결국 다시 돌아왔던 명 연주자 이츠하크 펄먼처럼, 나도 운명적으로 음악을 해야 했던 사람이란 걸 알았다.”



백건우가 늦게 피어 오래가는 꽃처럼 보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느리지만 진심 어린 고민과 결심이 있었다. 다음 달 내한 독주회를 앞둔 그를 만났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해 6월 피아니스트 신수정(69)씨가 명동예술극장(옛 시공관) 재개관 1주년 무대에 섰다. “여기에 다시 오니 옛 생각이 참 많이 나네요. 근처에서 식당을 하던 정명훈의 어머니도, 소년티를 벗지 못했던 피아니스트 백건우도 생각나요.” 신씨는 네 살 아래 백건우의 어린 시절을 잘 기억하고 있다. 가장 놀라운 기억으로 떠올리는 건 아무리 어려운 곡을 만나도 귀신처럼 정확하게 연주해내던 천재적 기질이다.



백건우는 만 열 살에 국립교향악단과 데뷔했다. 성인 피아니스트도 ‘시험에 들게’ 하는 난곡, 그리그 협주곡이었다. ‘천재’ ‘신동’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올해로 65세가 된 백건우를 화려한 천재 피아니스트로 분류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그는 한 작곡가를 천천히 파고드는 연주자다. 40여 년 전 미국에서 라벨 전곡 연주로 시작해 스크리아빈ㆍ리스트ㆍ프로코피예프ㆍ라흐마니노프 등을 깨친 후 2007년 한국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32곡)을 1주일 만에 연주했다. 이후 브람스 협주곡ㆍ변주곡을 묶어 앨범을 내놨다.



그리고 다시 프란츠 리스트(1811~86)를 골랐다. 리스트의 작품 15곡을 골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다음 달 19, 25일에 나눠 연주한다. ‘문학을 모티브로 한 작품’과 ‘후기 작품’을 주제로 정해 리스트의 인간적 정체성을 보여준다는 계획이다. 피아니스트는 보통 몇 작곡가의 음악을 독주회에 적절히 섞어 배치한다. 하지만 백건우의 차림표에는 대부분 한 작곡가만 올라 있다.



그는 왜 작곡가 한 명에 깊이 빠지는 피아니스트가 됐을까. 어릴 적 손가락이 귀신처럼 돌아가던 영재는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한 걸까.











-독주회 한 번 한 번이 작곡가 평전을 읽는 듯하다.



“나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독주회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1972년 라벨 전곡으로 뉴욕에 데뷔하기 전엔 그랬다. 프로코피예프ㆍ쇼팽ㆍ모차르트ㆍ하이든을 조금씩 섞어 보여주는 연주를 했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작곡가의 인간적 생애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아주 오래된 러시아 영화 ‘행복’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영화가 무소르그스키의 소품을 배경 음악으로 다수 썼다. 영화를 보고, 작곡가의 전기와 여러 자료를 찾아 읽어보게 됐다. 매력적 인간이었다. 사회 적응을 잘 하지 못했지만 아이들과는 희한하게도 잘 어울렸다. 초상화가 레핀이 그린 무소르그스키의 얼굴에서 너무나 불쌍한 인간도 봤다. ‘아, 한 곡을 연주해서는 작곡가를 알 수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이때 하게 됐다. 무소르그스키의 전곡 녹음을 했던 배경이다.”



-한 작곡가를 연주하는 것은 대중적이기보다 학구적이다. 청중에게 어려울 수 있다.



“음악은 인간을 그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에겐 여러 면이 있다. 연주에서 한 면밖에 보이지 않는 피아니스트가 많다. ‘테크닉이 좋다’ ‘클래시컬하다’ ‘남성적이다’ 등 한 가지 특징밖에 없다. 이렇게 좁은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다재다능한 예술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인 것 같다.”



-아버지의 열성으로 음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상을 살아봐도 생전의 아버님만큼 재주가 많고 예술성이 높은 사람이 없다. 뭐든지 손을 대면 됐다. 사진을 찍으면 사진가가 됐다. 옷과 구두는 직접 디자인해서 입었다. 그러다가 영화 회사에 입사해 카메라를 잡으면 영화를 찍었다. 그런 만큼 자유분방하고 하나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분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렇다 할 작품을 세상에 내놓진 못했다. 하지만 나에게 음악을 시켜보곤 재능을 곧바로 알아보셨다. 한국에선 아버지에게만 거의 배웠다.”



-뉴욕 유학 시절에 음악세계가 급변한 느낌이다.



“열다섯에 뉴욕으로 혼자 건너왔다. 스무 살이 되기까지 내가 정말 음악을 해야 하나 치열하게 고민했다. 집안이 풍족하지도 않았고, 지금처럼 한국이 든든한 조국이던 시절도 아니다. 급박함을 느꼈다. 이렇게 큰 대륙에서 혼자 살아나가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어쩌면 이 시절에 다른 길로 흐를 수도 있었다. 영화와 그림ㆍ사진에 푹 빠져서 피아노를 멀리하던 시절이다.”



-스무 살 나이엔 무거운 고민 아니었을까.



“아니다. 늦은 것이었다. 나는 사실 무리해서 음악을 시작했다. 아버지 열성으로 여덟 살에 시작했기 때문에 거리를 두고 볼 시간이 적었다. 그래서 한때는 일부러 음악을 피했다. 10대 시절에 일류 콩쿠르에 나가서 이기고, 세계적 이름을 날리는 길을 선택했다면 그렇게 했을 수도 있겠지만 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정말 음악과 피아노를 해야 할까 고민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이렇듯 백건우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진로를 정했다. 그때 그랬듯, 무대에 오를 때마다 느리고 꾸준하게 작곡가 한 명을 탐험한다. 전곡 연주를 앞두고는 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문헌을 구한다. 악보도 기존에 출판돼 있는 판본 대신 작곡가 국가의 재단 등을 통해 최대한 원본에 가까운 것을 손에 넣는다. 1970년대 파리ㆍ런던에서 리스트의 피아노 작품 전곡을 6회에 걸쳐 연주할 때에도 3~4 년에 걸쳐 악보를 모았다. 당시 기존에 연주되지 않았던 리스트 후기 곡을 발굴해 연주하면서 백건우의 존재감을 유럽에서 확실히 했다.



-왜 다시 리스트인가.



“우리가 그동안 들었던 것과 많이 다른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를 천재적 테크닉의 화려한 피아니스트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는 상당히 종교적인 사람이었다. 75년 평생에서 비르투오조(기교적 연주자)로 유럽을 휩쓸었던 시기는 7년 정도에 그친다. 화려하기보다 외롭고 슬픈 삶이었다. 이처럼 연주할수록 몰랐던 리스트가 자꾸 보인다. 예를 들어 문학 작품을 리스트만큼 피아노 작품으로 많이 옮긴 사람은 없을 텐데, 이런 측면에서 그를 조명하는 무대는 거의 없다.”



-베토벤을 끝내며 “다음에 연구할 작곡가가 누가 될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브람스였다. 그리고 리스트다. 다음은 또 누구인가.



“어떤 동기로 작곡가들이 내게 다가오는지를 설명하긴 힘들다. 리스트의 경우에도 대중적인 작곡가로만 생각하고 쉽게 빠지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 집중하게 됐다. 또 누군가가 내게 다가올 것이라 믿는다.”



백건우는



1946년 서울 출생



1956년 데뷔 무대에서 국립교향악단과 협연



1959년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국내 초연



1961년 뉴욕 미트로풀로스 콩쿠르 특별상



1969년 부조니 콩쿠르 입상



1971년 미국 줄리아드 스쿨 졸업



1972년 라벨 전곡 연주로 뉴욕 데뷔



1974년 런던 데뷔, 파리에서 무소르그스키 전곡 연주



1992ㆍ93년 프랑스 디아파종 음반상



2000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호암상 예술상



2003년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전곡 연주



2004년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전곡 연주



2007년 베토벤 소나타 전곡 중국ㆍ한국 연주



2010년 은관문화훈장



[시시콜콜] 영화광 남편, 클래식광 아내 윤정희

백건우 “영화에서 얻은 영감으로 연주할 곡 고르죠”




“연주할 곡을 어떻게 고르게 됐는가”는 질문에 백건우가 가장 많이 하는 대답 중 하나가 “영화에서 얻은 영감”이다. 지난해 브람스의 협주곡 1번을 녹음한 것도 1962년 영화 ‘엘(L) 자 모양의 방(The L-Shaped Room)’의 배경음악이었기 때문이다.



백씨는 예술적 영감이 풍부한 ‘르네상스 맨’이었던 아버지의 손을 잡고 부산시 광복동을 누볐다. “지금 가도 당시 지형을 생생히 기억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요즘도 피아노 연습을 하지 않는 시간엔 늘 영화 DVD를 보고 있을 정도로 영화광이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영화부터 최신작 ‘블랙 스완’까지 섭렵한다.



아내 윤정희(영화배우)는 클래식음악 애호가다. 4년 전 백건우가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참가했을 때 그는 예선부터 결선까지 모든 참가자의 연주를 듣고 수준을 가늠했다. 남편의 연주는 물론 녹음ㆍ연습 현장에 늘 함께하며 음악에 젖어 산다. 이처럼 부부는 서로의 영역을 나누며 산다. 각자의 연주ㆍ연기가 둘의 삶에 오래도록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비결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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