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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97> 주차딱지를 떼이고 나서

중앙일보 2011.05.12 00:05 종합 28면 지면보기








며칠 전이었습니다. 아침 출근길이었죠. 잠시 고민했습니다. “우체국에서 소포를 하나 부쳐야 하는데 어떡하지? 회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다시 올까, 아니면 길가에 잠시 주차하고 들어갔다 나올까.” 그런데 회사에 차를 세우면 무거운 짐을 들고 다시 걸어와야 했습니다. “에이, 번거로우니까 잠깐만 차를 세우지 뭐.”



 길가에 불법주차를 했습니다. ‘이면 도로라 지나는 차가 많지 않으니 괜찮겠지’ 싶었죠. 도로를 건너 우체국으로 뛰어갔습니다. 서둘러 물건을 부치고 밖으로 나왔죠.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도로 건너편에 주차 단속 차량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불법 주차한 차의 꽁무니로 다가가는 겁니다. 그때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죠. 막 달렸습니다. 그러나 단속 차량은 지붕 위의 CCTV로 자동차 번호판을 찍고서 ‘휘~익’하고 가버렸습니다. 불과 30초 차이였습니다.



 “어휴~, 조금만 빨랐으면 딱지를 끊기지 않아도 되는데.” 속이 상하더군요. “아니, 신호등이 1분만 빨리 바뀌었어도 괜찮았는데.” 화가 났습니다. 원망하는 생각에 발동이 걸린 거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소포만 안 부쳤어도 괜찮았는데. 하필 오늘 아침에 그런 부탁을 받아 가지고.” 이젠 소포를 부탁한 사람에게도 원망이 미칩니다.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화를 내는 나’가 보이더군요. 화를 내는 나, 짜증 내는 나에는 ‘풀어야 할 문제’가 숨어 있습니다. 무언가 이치에 대해 착각할 때 화가 나는 거니까요. 착각을 풀면 화도 풀리는 법이죠. 그래서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때는 오히려 “찬스!”라고 외쳐야 합니다. 착각을 깨트릴 기회를 잡은 거니까요.



 가만히 생각했죠. “주차 딱지가 끊겼는데 왜 화가 났을까?” 마음이 답을 합니다. “그럼 벌금을 내야 하잖아. 피곤한 일이지.” 다시 묻습니다. “그게 정말 피곤한 일일까?” 그리고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에 끊긴 딱지는 내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걸까.”



 그랬더니 보입니다. “이런 식으로 불법 주차한 게 오늘이 처음은 아니구나. 전에도 잠깐 주차하고 볼일을 보고 나온 적은 많았구나. 그때도 열 번에 한 번 정도는 딱지를 끊겼구나. 그건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오는 걸 ‘귀찮아 하는 나’ 때문에 그랬구나.”



 주차 딱지가 그걸 보게 하더군요. 그럼 앞으로는 어떨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러겠지. 그리고 10회에 1회 정도는 계속 주차 딱지가 끊기겠지. 그럼 그걸 바꾸려면 어떡하면 될까. 아하! 그렇구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오는 걸 ‘귀찮아 하는 나’를 바꾸면 되겠구나. 그럼 앞으로 이런 일로 딱지를 끊길 일도 없겠군.”



 그렇게 생각하자 고맙더군요. 그날 아침에 끊긴 주차 딱지가 앞으로 끊길 수십 장의 딱지를 막아줬으니까요. 덩달아 아침에 소포를 부탁한 사람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덕분에 수십 장의 딱지를 미리 막고, 이런 깨달음도 얻었으니까요. 예전에는 주차 딱지가 끊기면 오전 내내 찜찜했습니다. 불쑥불쑥 화도 나고요. 그런데 그날은 종일 유쾌했습니다.



 눈치를 채셨나요? 그렇습니다. 이 일화에는 번뇌의 덩어리를 지혜의 덩어리로 바꾸는 노하우가 녹아 있습니다. 그게 뭐냐고요? 화가 나는 일, 짜증 나는 일을 깊이 들여다보며 거기서 ‘진심으로 감사한 이유’를 뽑아내면 됩니다. 그럼 번뇌가 엎어져 버립니다. 짜증 덩어리가 감사 덩어리로 싹 바뀌니까요. 그걸 아는 사람은 이렇게 외칩니다. “땡큐, 주차딱지!”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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