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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119대원과 5분의 의미

중앙일보 2011.05.10 03:30 11면 지면보기



홍상의 천안소방서장



홍상의
천안소방서장




워털루 전투에서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를 격파한 것으로 유명한 웰링턴 장군이 한번은 어느 고관과 런던 다리 근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 고관이 5분이 지나서야 헐레벌떡 달려오자 웰링턴장군은 “5분이나 늦었군”하고 화를 냈다.



 그러자 지각한 고관은 “겨우 5분밖에 늦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웰링턴장군은 “겨우 5분이라고? 그 시간 때문에 우리 군대가 패전하게 될지 모른다. 결국 5분이 승리와 패배를 결정한다.”며 나무랐다고 한다. 이처럼 같은 시간이라도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진다.



 특히 소방관들은 이런 5분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자주 경험한다. 화재구조구급 현장 출동하다 꽉 막힌 도로에서 몇 분 이상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경우, 1분 1초의 촌각을 다투다 소중한 생명의 불씨가 꺼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5분의 시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하지만 긴급 상황에서 5분이 50분 같다는 느낌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최근 소방방재청이 화재와의 전쟁 2단계를 선포하고 나섰다. 천안소방서 역시 화재사망률 25%저감을 목표로 대형화재를 근절하고 화재로 인한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해 다시 한번 더 화재와의 전쟁 2라운드를 선포했다.



 119대원에게 5분이란 어떤 의미일까? 화재가 발생해 소방차가 5분 이내 현장에 도착하지 못하면 초기 진화 실패로 불은 건물 전체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 최성기에 이르러 이른바 플래시오버 현상이 일어나 성난 화마는 화재 현장을 완전히 집어 삼켜버려 인명피해와 막대한 재산피해를 초래한다.



 또한 심장이 멈추거나 호흡 곤란 등의 응급환자 경우에도 뇌손상을 입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5분이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심폐소생술을 실시해야만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심장마비 환자가 연간 2만 명에 달하고 있는 지금, 5분 이내 심폐소생술로 소생하는 사람은 단 2.5%에 그치고 있어 5분이란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일러스트=박향미



결국 화재와의 전쟁 역시 5분이라는 시간의 전쟁이며 5분 이내 화재구조구급 현장에 도착해야만 한 생명을 구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판가름한다. 하지만 지난해 천안소방서 5분 이내 현장출동은 전체 485건 중 318건으로 65.6%에 그치고 있다.



 왜 우리는 5분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한 연구에 따르면 소방관의 64%가 출동 중 일반차량이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고 답한 조사결과가 있다.



 실제로 화재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교차로 진입을 시도하지만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계속 교차로를 통과해 앞으로 나가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다. 편도 2차선 교차로의 경우엔 더 심각이다. 신호대기 차량이 꼼짝하지 않고 서 있어 소방차가 중앙선을 넘는 곡예운전을 해야만 한다.



 큰길에서 벗어나도 소방차의 시간 싸움은 골목에 접어든 순간 다시 시작된다.



 좁은 도로에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 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다른 차량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까봐 안절부절이다.



 심한 경우 차를 피해 멀리 우회해서 접근하거나 아예 현장에 접근조차 못해 소방관이 불필요하게 수관을 들고 뛰게 되는 경우까지 생긴다.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천안소방서는 시장 내 소방통로확보훈련, 소화전 주변 불법 주·정차단속과 소방차 길터주기 홍보 활동 및 교육, 과태료 부과 등 다양한 방법의 홍보와 정책으로 위기의 상황에서 1분 1초라도 출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현장의 5분 이내 출동은 소방관서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빠른 시간 안에 현장에 도착해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살리고 재산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시민 모두의 참여와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방차나 구급차가 오면 운전자는 도로 가장자리로 즉시 피하고 소방차가 지나갈 때까지 정지하도록 해야한다. 소방차량 진입이 용이하도록 긴급차량 진입로를 양보해 주는 건전하고 성숙한 문화가 절실하다.



 웰링턴장군이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이겨 해상을 지킨 것처럼 우리가 화재와의 전쟁에서 승전보를 울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나의 5분이 어떤 이에게는 50년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지금 소방차나 구급차가 도착하기를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나의 가족일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5분이 승리와 패배를 결정한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신속한 119출동으로 화재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홍상의 천안소방서장

일러스트=박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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