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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르포] ‘나라시’의 진화 … 강남 ‘콜뛰기’ 기자가 직접 타보니

중앙일보 2011.05.10 00:25 종합 18면 지면보기



1억짜리 벤츠가 앞에 섰다 “콜뛰기 부르셨죠”



지난 6일 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유흥가 골목에서 한 여성이 대기 중이던 ‘콜뛰기’ 차에 탑승하고 있다. 한 콜뛰기 운전자는 “전화가 오면 강남 일대 어디든 15분 안에 도착한다”고 했다. [김태성 기자]





7일 오후 6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앞. 1억2000만원을 호가하는 벤츠 CLS 클래스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전화를 건 지 5분 만이다. “얼른 타세요.” 야구모자에 반팔 티셔츠 차림의 젊은 남자 기사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기자를 맞았다. 전화를 걸 때부터 “언니 이름은 뭐라고 저장하면 되죠?”라고 묻던 그였다. 기자가 “오늘 처음 타 본다”고 말하자 “요즘은 술집 언니들 말고도 많이 타신다”는 답이 돌아왔다. ‘콜뛰기’ 경력 6년차라는 그는 “요즘 콜 받는 것 중 30% 정도는 (유흥주점 종업원이 아닌) 일반 고객”이라고 했다. 은은한 방향제 내음, 깔끔한 가죽시트에 최신곡이 흐르는 차 안에는 비행기 좌석에서 볼 수 있는 작은 모니터가 설치돼 있었다.



 최근 강남 일대에서 ‘콜뛰기’ 영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콜뛰기는 국산 고급차·외제차를 이용해 영업하는 불법 자가용 택시를 일컫는 속어다.



과거 ‘나라시’로 불리던 자가용 택시가 고급차로 진화한 것이다. 운전자들은 일반인 고객에 대해 “이미 익숙하다”는 반응이었다. 지난 4일 새벽 1시 검정색 오피러스를 몰고 신사동 가로수길 앞에 나타난 운전자 A씨는 “낮에는 증권사 직원이나 성형외과 환자들이 많이 탄다”고 귀띔했다. 사생활을 감추고 싶은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도 주된 고객이다. A씨는 유명 댄스 가수 S양과 아이돌 스타 K군의 이름을 댔다.



 콜뛰기 운전자들은 주 고객층이 자주 드나드는 강남 유흥업소와 미용실 등에 명함을 뿌려 고객을 모은다. 일반 택시에 없는 각종 서비스도 손님이 다시 찾는 이유다. 크라이슬러 차량을 몰고 나타난 B씨는 “담배가 종류별로 준비돼 있다”며 미리 뜯어 놓은 담뱃갑 여섯 개를 내밀었다. 트렁크에는 여성 고객을 위한 스타킹과 사탕이 들어 있었다. 요금은 정액제다. 강남에서 출발할 경우 강남권 안쪽은 1만원, 관악·강동 3만원, 강북·경기 지역은 3만~4만원이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현금 결제만 가능하다. 기사 1인당 월수입은 250만~300만원이 많지만 900만~1000만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콜뛰기가 성행하는 이유는 꾸준한 수요와 가벼운 처벌 때문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3월 콜뛰기 영업으로 110억여원을 챙긴 10개 조직 255명을 적발했으나 이 중 20명에 대해서만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업주 1000만원, 기사 300만원씩 벌금을 물리는 데 그쳤다. 경찰 관계자는 “전체 규모가 4000~5000여 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강남 일대에서 차량 40~50대 규모로 운영되는 조직만 20여 개”라고 말했다. 콜뛰기는 업주가 기사를 10~20명씩 모집해 조직적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영업 특성상 단속이 쉽지 않다. 현장에서 잡아도 기사와 승객이 “서로 아는 사이”라고 잡아떼면 처벌이 어렵다. 난폭 운전과 2차 범죄의 위험성도 도사리고 있다. 올해 초 경찰이 적발한 콜뛰기 기사 중에는 강도·강간 등 강력범죄 전과자 5명이 포함돼 있었다. 개인택시 기사 이상홍(37)씨는 “콜뛰기 차량들은 골목에서 과속으로 달리거나 중앙선 침범, 신호위반 등을 일삼곤 한다”고 말했다.



글=심새롬·김혜미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콜뛰기=운전기사에게 ‘전화(콜)’를 걸면 출발지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의미의 ‘콜 대기’에서 유래했다. ‘자콜(자가용 콜택시의 준말)’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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