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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 연결되자 갈라선 두 도시, 질긴 축구전쟁 맨유가 뒤집는다

중앙일보 2011.05.10 00:21 종합 24면 지면보기



맨유, 첼시 꺾고 EPL 19번째 우승 눈앞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가운데 회색 양복)이 9일(한국시간) 영국 맨체스터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첼시와의 프리미어리그 36라운드 홈 경기에서 2-1로 승리하자 두 팔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풀타임을 뛴 박지성은 경기 시작 35초 만에 치차리토의 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맹활약하며 BBC 등이 선정하는 주간 베스트 11에 뽑혔다. [맨체스터 AP=연합뉴스]





하워드 웹 주심이 길게 휘슬을 불었다. 금속성을 띤 함성이 올드 트래퍼드를 가득 메웠다. 7만5445명의 관중이 일제히 트럼펫을 부는 듯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의 프리미어리그 36라운드 경기가 끝난 것이다.



 은발의 신사가 서둘러 그라운드를 가로질렀다. 알렉스 퍼거슨 경. 경기 시간 내내 붉은 색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안절부절못하던 그는 먼저 첼시의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을 위로했다. 그 다음엔 몇몇 선수와 악수했다. 그중엔 박지성도 있었다. 퍼거슨은 마지막으로 관중석에 허리를 굽혀 감사의 뜻을 전했다.



 9일(한국시간). 맨체스터와 올드 트래퍼드는 역사의 문턱에 섰다. 맨유는 2-1로 승리했다. 구단 통산 19번째 우승이 눈앞에 다가왔다. 전인미답의 위업이다. 맨유는 리버풀과 더불어 통산 18차례 우승을 기록했다. 이제 맨유는 홀로 새로운 역사 속으로 출발한다.











◆분리된 샴 쌍둥이, 맨유와 리버풀=1893년 ‘맨체스터 운하(Manchester ship canal)’가 완공됐다. 운하는 맨체스터에서 리버풀 인근의 아이리시만으로 통한다. 운하의 동쪽 끝에 맨체스터가, 서쪽 끝에 리버풀이 있다.



 운하는 공동운명체로 출발한 두 도시 사이에 증오를 심었다. 맨체스터와 리버풀은 산업혁명 시대에 빠르게 성장한 도시다. 산업도시 맨체스터는 리버풀항을 통해 물자를 조달했다. 1830년 개통된 철도와 두 도시를 관통하는 머지강은 우정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맨체스터는 운하를 통해 공장 가동에 필요한 물자를 직접 조달했다. 통관료 등의 수입이 줄자 리버풀의 경제가 휘청거렸다. 여기서 리버풀 시민들의 맨체스터를 향한 증오가 싹텄다.



 두 도시의 축구가 격돌하는 축구장은 전장(戰場)이 되어 갔다. 축구는 노동자의 스포츠. 리버풀에는 항구 노동자, 맨체스터에는 철도 노동자가 넘쳤다. 맨체스터에 대한 리버풀의 우월감은 엄청났다. 1892년 창단된 리버풀FC는 1989~90시즌까지 18차례 잉글랜드 프로축구 정상을 차지했다. 특히 74~83년 리버풀을 지휘한 밥 헤이슬리는 희대의 명장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잉글랜드축구=리버풀’ 공식이 통했다.









경기장을 빠져나가던 퍼거슨 감독이 홈 팬들을 향해 두 팔을 들고 허리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맨체스터 AP=연합뉴스]











박지성(오른쪽)이 9일(한국시간) 첼시의 존 오비 미켈과 볼 다툼을 하고 있다. [맨체스터 로이터=뉴시스]



◆애버딘에서 온 스코틀랜드인=86년 11월 6일. 얼굴에 분홍빛이 감도는 중년의 사나이가 맨체스터 클럽하우스에 나타났다. 훗날 ‘맨유의 독재자’로도, ‘위대한 퍼기 경’으로도 불리는 퍼거슨이다. 낯선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25년이 지난 뒤 스스로 말했듯 그토록 오랫동안 권좌를 누리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맨유의 퍼거슨 영입은 의외였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애버딘을 이끌고 83년 유럽클럽대항전인 컵 위너스 컵을 제패했다. 그러나 맨유는 거대 구단이다. 비록 리버풀과 아스널의 위세에 눌려 중하위권을 전전하고 있었지만.



 켈트족의 후예 퍼거슨은 피가 뜨거운 전사였다. 양보나 타협, 자비 따위는 없었다. 주전이랍시고 술에 빠져 지내는 선수들은 남김없이 솎아냈다. 대신 훗날 맨유 축구의 전설로 남는 스티브 브루스, 브라이언 매클레어 등을 영입했다. 3년 만에 퍼거슨 축구의 위력이 폭발한다. 90년 FA컵을, 이듬해엔 FC바르셀로나를 제압하고 컵 위너스 컵을 들어올렸다. 잉글랜드 프로축구가 프리미어리그로 재탄생한 92~93시즌엔 마침내 맨유를 우승으로 이끈다. 66~67시즌 이후 26년 만이었다.



◆뒤바뀐 맨유-리버풀=맨유는 프리미어리그 출범 후 18시즌 동안 11차례 우승했다. 2008~2009 시즌 우승으로 리버풀의 최다 우승 기록(18회)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리버풀을 향한 맨체스터의 열등감은 종식됐다. 퍼거슨의 통치 속에 회색도시 맨체스터는 잉글랜드를 넘어 세계 최고의 축구 도시로 우뚝 섰다. 퍼거슨에게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데이비드 베컴, 로이 킨 등 스타 선수도 팀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떠나야 했다. 선수를 감별해 내는 퍼거슨의 눈은 현미경과 같다. 2005년 7월 네덜란드의 에인트호번에서 박지성을 사들일 때 퍼거슨이 ‘빅 클럽 킬러’를 잡았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맨유가 잘나갈수록 리버풀의 울분은 증폭된다. 리버풀은 맨유를 ‘돈으로 명예와 전통을 산 졸부’라 야유한다. 맨유는 리버풀을 향해 ‘머지강에 결코 띄울 수 없는 배는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십’이라고 놀린다. 챔피언십(championship)의 십이 배를 뜻하는 십(ship)과 철자가 같은 데 착안했다.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리버풀의 약점을 꼬집고 있다.



 ◆박지성, 역사의 일부=9일 첼시를 물리친 맨유는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눈앞에 뒀다. 승점76을 기록한 맨유는 2위 첼시(승점70)를 6점 차로 따돌렸다. 남은 두 경기(14일 블랙번, 22일 블랙풀)에서 승점 1점만 추가하면 자력으로 우승한다. 박지성은 첼시와의 경기 시작 35초 만에 치차리토의 선제골을 도왔다. 수비에서도 맹활약했다. 스카이스포츠, BBC 등이 주간 베스트 11에 뽑았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맨체스터 이브닝뉴스는 평점 9를 줬다. 



김종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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