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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포토메일로 느끼는 감흥

중앙일보 2011.05.10 00:16 종합 29면 지면보기






신승철
큰사랑노인전문병원장




가까운 선배 의사로부터 포토메일을 받은 지가 일 년도 넘는다. 거의 매일 두세 건의 두툼한 분량이다. 점심 무렵이면 이젠 습관처럼 아예 포토 감상 시간을 갖곤 한다.



그 내용 중 더러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옮겨온 것도 있다. 하나 대부분 그 출처를 알 수가 없다. 허블 망원경으로 촬영된 우주의 휘황찬란한 광경, 아프리카나 남미의 비경에서부터 각종 희한한 마술쇼, 유럽 유명 미술관을 옮겨 놓은 갤러리, 아프가니스탄 등 피폐된 나라에서 그 영혼까지 찍은 듯한 애잔한 삶의 감동적인 모습들.



 그동안 그 종류는 이루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런 기막힌 풍광들을 자주 보다 보면 늘 세계 여행 중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록 정지된 화면이긴 하나 대 자연과 우주의 숨결 속에 잠시 홀로 서 있음의 삼매경에 들면 사람의 말이란 게 하등 필요치가 않음이고, 살아 있음 그 자체가 대단한 은혜인 것으로도 다가온다.



정밀하며 순수한 빛깔을 띤 꽃의 자태는 또 어떠한가. 아무리 작은 미생물이며 생명 없어 보이는 광물의 세계도 깊이, 확대해 들어가면 놀라운 그 신비로운 모습에 무어라 말이 떨어지지 않게 된다. 인간사에서 아무리 고상한 삶이 있더라도 이런 것에 비하면 모두가 시시해 보이기만 하는 것이다.



 최근 일련의 포토메일 가운데 또 다른 감동을 받은 일이 있다. 세상에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지금에 다시 새롭기만 하다. 헬렌 켈러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란 에세이 한 토막이다. 1933년. 시각·청각 장애인이었던 그녀가 만일 단 사흘만 볼 수 있다면, 하는 가정 하에 쓴 글이다.



“첫째 날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해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이제껏 손끝으로만 알던 그 얼굴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 모습을 내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겠다. … 둘째 날엔 먼동이 트며 밤이 낮으로 바뀌는 웅장한 기적을 보고 서둘러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찾아가 하루 종일 인간이 진화해온 궤적을 눈으로 확인하고, 저녁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셋째 날엔 낮에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큰길에 나가 그 표정을 볼 것이다… 나를 이 사흘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다시 영원의 암흑세계로 돌아가겠다.”



 이번엔 내 자신이 헬렌 켈러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다시 느껴 본 것이다. 이제껏 잘못 살아왔다는 생각이 물밀듯이 사무치며 떠오른다. 의학이나 예술, 세상사에 대해 뭘 좀 안다고. 하, 그 얼마나 웃지 못할 희·비극의 삶이었나. 어찌됐든 잡담으로 점철된 삶 아니었던가. 못내 부끄러웠다. 무엇에든 신세 진 삶에 감사를 못 느낀다면 그 역시 부끄러운 일이리라. 단순하고, 소박한 삶에 대한 동경이 일었다. 포토메일 천사 최중언 교수님, 감사합니다.



신승철 큰사랑노인전문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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