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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시시각각] 정부, 금감원 뒤에 숨지 말라

중앙일보 2011.05.10 00:14 종합 30면 지면보기






남윤호
경제선임기자




움직이는 것 뒤엔 움직이도록 하는 게 있는 법이다. 겉만 보다간 근본을 놓치기 쉽다. 저축은행 사태를 계기로 진행되는 금융감독 개혁도 그렇다. 근원을 손보지 않고선 외양을 아무리 뜯어고쳐도 소용없다. 일단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한 금융감독원 직원들의 비리는 엄중히 처벌받을 일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대통령이 정부기관도 아닌 무자본 특수법인인 금감원을 직접 방문해 질타했을 정도다.



 그러나 책임은 금감원에만 있는 게 아니다. 금융은 다면적이다. 금감원만 조지는 건 도마뱀 꼬리 자르기나 같다. 지금의 금융감독 체계를 만든 건 바로 이명박 정부다. 2008년 재정경제부의 금융정책 기능을 금융감독위원회에 묶어 금융위원회를 만들었다. 금융위는 금감원을 지도·감독하도록 돼 있다. 그 전엔 금감위가 금감원을 지시·감독했다. 말은 ‘지시’보다 ‘지도’가 부드럽지만, 권한과 책임은 ‘지도’ 쪽이 더 포괄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4일 금감원에 간 대통령은 같은 건물의 정부기관인 금융위에 대해서도 호된 질책을 해야 했다.



 그런데도 금감원을 집중 질타한 건 무슨 뜻인가. 잘못은 금감원이 저질렀으니, 수습은 정부가 하겠다는 인상을 준다. 함께 책임져야 할 정부가 뒤로 빠진 셈이다.



 과거에도 비슷한 선례가 있다. 2004년 감사원이 카드대란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다. 감사원은 정부의 정책실패를 지적하면서도, 문책은 금감원 직원에게만 했다. 재경부나 금감위 관료는 ‘노터치’였다. 정부와 금감원의 위상 차이를 잘 보여줬다.



 금융위 출범 이후엔 어땠나. 정부와 금감원의 수직관계는 더 굳어졌다. 금감원의 독립성·중립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중앙은행의 독립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심하게 말해 금감원은 사나운 사냥개 노릇을 했다. 물라면 물고, 짖으라면 짖었다. 금감원은 금감원대로 권한 독점에 안주했다. 낙하산으로 감사 자리를 독식한다는 비판은 진지하게 듣질 않았다. 더 높은 자리도 정권 주변인사끼리 낙하산으로 나눠 갖는데, 감사로 가는 게 뭐 대수냐는 식이었다. 도덕적 방향감각이 마비된 것이다. 그러다 이번에 시궁창에 입을 들이대다 딱 걸렸다.



 그렇다면 방치한 주인 책임도 크다. 누가 그 주인이겠나. 이에 정부·청와대가 분명한 입장표명을 하지 않으면, 금감원 때리기로 물타기 한다는 오해를 받기 쉽다. 금감원을 흠씬 두들겨 패고, 그들의 손발을 묶는다고 능사가 아니다. 금융권 감사에 금감원 출신을 못 가게 한다고 비리를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관치는 더더욱 유효기간이 끝났다. ‘책임 있는 관치’란 ‘뜨거운 얼음’처럼 현실적으로 성립하기 참 어렵다.



 뒤늦게나마 총리실 주도로 금융감독혁신 태스크포스가 설치됐다. 여기서 근본대책을 내놓겠다고 한다. 당장의 금감원 개혁도 급하지만, 더 중요한 건 감독기구의 지배구조 개편이다. 감독권의 재조정, 감독기관 사이의 협조와 견제, 정책과 감독의 분리 여부 등 원점에서 다시 고민할 이슈가 한두 건이 아니다. 금융감독의 독립성·효율성·투명성·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이를 매듭짓지 않고선 부실 감독으로 인한 금융위기가 언제 또 올지 모른다.



 문제는 그런 작업엔 여러 이질적인 조직들의 이해가 민감하게 얽혀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정치판과 비슷하다. 이런 상태에선 개혁이 순조롭게, 일사천리로 진행될 리 없다. 10년 전에도 상호신용금고의 부정대출 사건을 계기로 비슷한 조직이 구성됐으나, 결과적으론 관료들 힘만 키워주다 끝났다. 이게 되풀이되면 곤란하다.



 애초에 서둘러서 될 일은 아니다. 이번 정부는 책임을 통감하면서 연구에 매진하고, 결정은 다음 정부에 넘기는 것도 방법이다. 19세기 프랑스의 언론인 알퐁스 카르는 “자주 바뀔수록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금융감독 체계가 그렇게 돼선 안 된다.



남윤호 경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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