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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새 신호등, 스탠더드 아니다

중앙일보 2011.05.10 00:14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상언
파리 특파원




3주 동안 눈을 부릅뜨고 돌아다녔다. 차를 운전할 때나 걸어 다닐 때나 신호등을 유심히 관찰했다. 한국에서 논란이 된 ‘빨강 화살표’ 좌회전 금지 신호 때문이다. 한국 경찰청에서 그것이 유럽형 신호등이라고 설명했지만 1년 넘게 유럽의 중심 도시 파리에 살면서 본 기억이 없었다. 개인적 경험에만 의존할 수는 없기에 파리의 택시운전사에게 물어봤다. 경찰관에게도 그림까지 그려가며 그런 신호등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돌아온 답은 “비슷한 게 있기는 있는데, 어디서 봤는지 정확히 떠오르지는 않는다”였다. 그래서 평소 다니지 않는 길로 우회하기도 하며 이곳저곳을 뒤졌다.



 찾기는 찾았다. 3주 동안 지나친 신호등이 족히 500개는 넘었을 텐데 그중 딱 두 곳에서 빨간색 화살표로 좌회전을 금지하는 신호등을 ‘발견’했다. 하나는 16구의 라디오 프랑스 건물 뒤편 골목의 삼거리에 있었다. 다른 하나 역시 16구에서 찾아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본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첫째 것은 일방통행 도로가 둘로 갈라지는 지점의 왼쪽 길로 접어드는 길목에 설치돼 있다. 둘째 것은 편도 3차선 교차로의 좌회전 차로 앞에 놓여 있었다. 통상 그런 곳에서는 비보호 좌회전을 하게 돼 있는데 특이하게도 신호에 의한 좌회전을 강제하고 있었다.



 ‘프랑스에 존재하지만 극히 드물다.’ 빨강 화살표 등에 대한 3주 탐색의 결론이다. 대개의 좌회전은 별도의 신호 없이 비보호로 하거나 로터리를 4분의 3바퀴 돌아 가는 것이었다. 간혹 ‘적·황·녹’ 3색 신호등의 위나 옆에 백열구 빛깔의 화살표로 좌회전 신호를 주는 곳도 있었다. 빨강 화살표 3색등은 ‘유럽 스탠더드’는 고사하고 ‘프랑스 스탠더드’도 아니었다.



 평소 무심히 지나치던 신호등을 열심히 보고 다닌 덕에 얻은 소득도 있다. 신호등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프랑스에는 직진 금지 신호가 빨간색 십자(+)로 된 것이 꽤 있었다. 지난달 마지막 주에는 윌리엄 왕자 결혼식 취재 때문에 영국 런던을 다녀왔다. 그곳에는 직진 신호가 세로의 초록 화살표(↑)로 된 곳이 많았다. 런던에서는 빨강 화살표 신호등을 하나도 찾지 못했다.



 한국 경찰청은 새 신호등에 대한 홍보자료에 “외국인들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적었다. 4색 신호 체계에 외국인들이 헷갈려 한다는 얘기다. 프랑스나 영국에서 처음 운전하는 한국인들은 신호등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애를 먹는다. 지나친 뒤 옆에서 달려오는 차를 보고 놀라 멈춰서는 일도 종종 있다. 도로 가운데 위쪽에 달려있는 한국과 달리 신호등이 도로 옆에 나지막하게 세로로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신호등을 높이 잘 보이게 달아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적응은 이방인의 몫이다.



 한국의 신호등 교체는 긁어서 부스럼 낸 일로 보인다. 신호등에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게 있는지도 의심스럽지만 있다 해도 따라 할 일인지 모르겠다.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냐에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없다면 부스럼이 종기가 되기 전에 손을 떼는 게 옳다.



이상언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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