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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설탕

중앙일보 2011.05.10 00:13 종합 31면 지면보기








중세 유럽에서 설탕은 약재나 향신료·방부제의 원료로 쓰였다. 11세기 아랍에서는 만병통치약으로 불리기도 했다. 천연당분인 설탕은 3대 영양소인 탄수화물의 원천이다. 성장과 뇌 활동에 필수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먹으면 금세 혈당으로 전환돼 몸에 에너지를 공급한다. 기력이 없는 사람이 포도당 주사를 맞는 이유다. 등산이나 마라톤을 하다 지치면 사탕이나 초콜릿을 먹는 것도 같은 이치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백해무익(百害無益)이란 말을 달고 산다. 위상이 이처럼 추락한 식품도 드물다. 문제는 과잉 섭취다. 사람은 필요로 하는 당 에너지를 쌀·잡곡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곡류를 통한 당분은 긴 소화과정을 거치면서 연소돼 몸에 별 부담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설탕은 빠른 흡수력으로 인해 자칫하면 과잉 축적된다. 체중 증가와 성인병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당분은 혈액 내 칼슘의 배설을 촉진해 뼈를 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정상상태에서 약알칼리성을 유지하는 우리 몸은 당분을 많이 섭취해 산성으로 기울면 면역력이 떨어진다.



 사탕수수(sugarcane)와 사탕무(sugar beet)에서 추출하는 설탕은 온갖 식품에 들어간다. 과자·빵·스낵·청량음료·케첩·아이스크림·껌·라면 등 헤아리기도 힘들다. 과잉 섭취를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첫 기록은 기원전 327년에 나타난다. 알렉산더 대왕 휘하의 한 장군이 인도를 항해한 뒤 “이곳 사람들은 벌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갈대의 줄기에서 꿀을 만들고 있다”고 썼다. 십자군 전쟁 때 유럽으로 전파됐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뒤엔 중남미 지역에 사탕수수 재배를 위한 대규모 농장(플랜테이션)이 마구 생겨났다. 노동력은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노예들이었다. 면직물과 함께 설탕은 노예무역을 낳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땅에선 1920년 일본이 평양에 세운 ‘대일본제당’이 처음이다. 우리 기업으론 해방 후인1953년 제일제당이 부산에 지은 공장이 효시다. 70년대만 해도 설탕은 명절 선물 목록의 상단을 차지했다. 손님이 오면 설탕물을 대접하기도 했다. 참 옛날 얘기다.



하지만 물가를 관리하는 관리들의 생각은 이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물가 문제만 나오면 설탕을 흘겨보곤 한다. 소비자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03%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설탕 가격을 틀어쥔 결과 국내 가격이 주요국에 비해 30% 이상 싸다고 한다. 혹시 과잉섭취를 유도한다는 비난이 나오지 않을까.



심상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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