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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업계 주목받는 우주과학자, 정재훈씨

중앙일보 2011.05.07 02:22 주말섹션 12면 지면보기



“원전 수소 연소장치에 고도의 항공우주기술 썼죠”





우주과학자가 원자력발전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의 우주선 부품 제조업체 테이코 엔지니어링의 최고경영자(CEO)인 정재훈(63) 박사가 주인공이다. 정 박사는 1990년 원자로 격납시설 내 수소 폭발을 방지하기 위한 수소 연소장치를 개발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의 제품은 이전까지 사용되던 유사 장치의 30배에 달하는 수명 주기로 호평을 얻었고 지금까지 미국과 캐나다·한국·중국·일본·핀란드 등 세계 각지의 원전 60여 기에 장착됐다.



 그런데 일본 대지진 여파에 따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 이후 다시 그의 수소 연소장치가 관심을 끌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잇따라 수소 폭발이 일어난 뒤 원전 보유국들이 유사시에 대비한 대응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원전 안전성과 관련해 특히 주목받고 있는 부분은 수소 폭발을 방지하는 것이다. 정 박사는 “원자로에선 수소가 발생하는데 그 농도가 높아질 경우, 산소와 만나면 폭발이 일어난다”며 “후쿠시마 원전에서도 수소 폭발이 격납용기 또는 격납 건물 외벽 손상을 가져와 방사능을 대량 누출시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박사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그의 수소 연소장치가 신고리 원전 5, 6호기를 포함해 향후 건립될 원전을 염두에 두고 심각한 사고가 나거나 격납시설 내부 온도가 치솟는 경우에도 문제 없이 가동될 수 있는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원자력엔지니어링공사(SNPEC)에선 싼먼, 하이양 원전에 설치하기 위해 매우 가혹한 환경을 견딜 수 있는 제품을 납품할 수 있는지 문의해 왔다. 일본 간사이 원전 측에선 정전 사고에 대비해 전기 대신 배터리로 작동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 박사는 “2년 전부터 기존 제품보다 전력 소비량을 75% 절감할 수 있고, 사고로 원자로 격납시설의 환경이 악화될 때에도 고장 없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신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다”며 “현재 성능 업그레이드의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과 중국에서 원하는 기준을 새롭게 충족시켜야 하므로 개발 완료 시점은 3~4개월쯤 뒤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초기 원자력발전소엔 자동차 엔진 점화 플러그의 일종인 디젤 엔진 플러그가 장착됐다. 하지만 이 장치는 수명이 1년에 불과해 매년 일주일씩 원전 가동을 중단하고 새 제품으로 교체해 줘야 하는 불편이 따랐다.











 정 박사는 “82년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원자력발전소 관계자가 ‘1년에 한 번씩 발전을 중단하며 입는 금전적 손해가 크다’고 푸념하기에 ‘내가 해결책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개발하다 보니 8년 뒤에 제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가 개발한 수소 연소장치는 가로 12인치, 세로 8인치 크기의 스테인리스 스틸 상자에 점화기가 돌출돼 있다. 센서를 통해 수소 농도를 측정,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점화기 끝부분에서 화씨 1700도의 고열을 내 수소를 태운다. 이 장치의 가격은 개당 5000달러이며 원전의 격납시설마다 60~80개가 장착된다.



 정 박사는 “장치가 간단해 보이지만 쉽게 만들 수 없다. 내 제품을 분해해 보고 만들어 보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했다”며 “업그레이드될 제품엔 고도의 항공우주기술이 적용된다”고 귀띔했다.



LA중앙일보 임상환 기자 limsh@koreadaily.com

정재훈 박사미 연방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 프로젝트가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활로를 열며 세계적인 우주과학자로 주목받은 인물이다.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참사의 원인이 된 보조추진 로켓의 고무패킹 동결 및 파손 문제를 ‘오(O)’자형 특수 고무링이 들어간 열 조정장치 개발로 해결했다. 또 2003년 컬럼비아호 공중 폭발로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이 중단되자 결빙방지 가열시스템(Anti-Icing Heating System)을 만들었다. NASA는 이 시스템을 장착하기 위해 2005년 5월로 예정됐던 디스커버리호 발사 시기를 7월로 미뤘다. 정 박사는 이 밖에도 화성 탐사선 스피릿호와 오퍼튜니티호의 핵심 부품인 극저온 신경조직도 개발했다.



 1948년 황해도 재령 출생으로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나왔다. 롱비치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기계재료공학 전공으로 석사, 어바인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우주 열복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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