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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연의 매력 발전소] 119차례 낙방 … 그래도 장혁은 포기 안 했다

중앙일보 2011.05.07 02:21 주말섹션 1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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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연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롤 모델.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하고 묻는다. 누가 롤 모델인가? 그 대상처럼 되고 싶거나 대상을 닮고 싶다는 말이다. 누군가를 닮고 싶다는 것은 일단 그가 혹은 그의 삶이 매력적으로 보여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무언가 남다른 성취를 이룬 사람을 동경한다. 그리고 닮고 싶어 한다. 물론 그저 ‘멋있어 보여서’라는 가벼운 느낌의 것이 아닌, 내 인생을 걸고 그 대상처럼 살고 싶다는 진지함의 발원일 수 있다. 왜?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인생을 멋진 그 무엇으로 만들고 싶어 하니까.



 지난번에도 이야기했듯이 인터뷰를 하면서 나의 목적은 누군가의 삶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전류처럼 흘러들 한마디를 찾는 것이다. 그것을 찾기 위해 인터뷰를 할 때마다 나는 인터뷰이의 마음속, 세월 속의 겹을 헤집고 들어가 ‘도대체 무엇이야? 무엇이 이 사람을 만든 것이야. 이 사람은 무엇이 다른 거야?’라고 묻고 또 묻곤 했다. 남다른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서로 짜기라도 한 듯 한결같이 보여줬던 공통분모가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만이 갖는 성공유전자도 아닌, 배경도 아닌, 타고난 재능 이런 것이 아닌 다른 무엇이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내면의 산을 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 개념을 어떻게 설명해낼까 고민하다 이 개념을 머릿속에 떠올리고서 “바로 그것이야”라고 외치고 말았다.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











 임계질량이라고 흔히 번역되는 이 말은 물리학에서 나온 개념이다. 어떤 핵분열성 물질이 일정한 조건에서 스스로 계속해서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질량을 말한다. 이 개념은 사회학, 심리학, 경영학 등에 광범위하게 차용되면서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아직도 일반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런데 남다른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크리티컬 매스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정원에 나무가 있다. 그냥 나무가 아니라 꽃피는 나무다. 그 꽃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이룰 때 피워내는 꽃이다. 그런데 이 나무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영상 15도의 온도에 이르러야만 한다. 1도, 아니 0.1도만 모자라도 꽃은 피지 않는다. 바로 이 15도가 크리티컬 매스다. 사람들이 자신의 나무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내면의 자가발전기를 돌려야 한다. 자가발전기는 훈련일 수도 있고, 지독한 노력일 수도 있으며, 극기의 양일 수도 있다. 0도에서 시작해 2도, 3도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아직 12, 13도를 더 올려야 한다. 또다시 나를 추슬러 발전기를 돌릴 동력을 더 만들어낸다. 4도…5도…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조금씩이라도 올라가던 온도가 8, 9도에 멈춰 서서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지친다. 지레 내 나무는 꽃이 피지 않는다며 단정해 버리고 포기해 버린다. 실패가 무서워 지레 포기해 버리고 부정적 자아만을 쌓는 것이다. 자, 여기서 멈추면 그이의 인생의 나무는 꽃피우지 못하는 것이다. 그이의 안에 씨앗이 없거나 원래 꽃을 피우지 못하는 나무로 태어나서가 아니라 단지 15도, 크리티컬 매스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이다.



 스타 배우로 우뚝 선 장혁은 ‘피플인사이드’ 인터뷰에서 자신이 어떻게 발화했는지 이렇게 설명했다. “오디션에서 정말 많이 떨어졌어요. 제 성격이 상당히 긍정적인데 12, 13번 떨어지니까 못 버티겠더라고요. ‘내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괴로웠지만 무엇보다 날 미치게 만들었던 건 떨어질 때마다 도대체 왜 떨어지는지를 모르겠다는 거였어요. 그때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이 정도면 되지 않겠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깨달은 거죠. 아, ‘나름대로’와 ‘이 정도면’을 빼야 하는 거구나! 그러면서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의 차이를 메우기 시작했고, 남이 원하는 것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나를 만들어나간 것이에요.”



 119번이나 떨어졌단다. 120번째에야 붙었단다. 말이 그렇지 119번을 떨어지고 ‘이 길을 가겠다’라는 초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것도 생전 처음 본 사람들 앞에서 울라면 울고 웃으라면 웃고 춤춰보라면 춤추면서 말이다. 만약 그가 119번에 포기했다면 그는 ‘추노’에서의 대길도, ‘마이다스’에서의 김도현도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120번이 그가 배우가 되기 위해 그 내면의 산을 넘는 크리티컬 매스였던 것이다. 우리는 내면에서의 투쟁을 거쳐 크리티칼 매스를 만들어내고 멋진 배우로 서 있는 장혁의 현재 모습만을 보지만, 그의 내부에 크리티컬 매스가 쌓일 때까지 그가 내면에서 쌓아갔을 자신과의 싸움, 자포자기하고 싶은 마음과의 싸움, 인내와 노력, 훈련의 양을 알지 못한다. 마치 없었던 것처럼.



 계절의 여왕 5월 사방 천지에 형형색색 피어난 꽃들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있지만, 바로 얼마 전만 해도 그 나무들은 다시 꽃피우지 못할 것 같은 겨울나무의 모습이었다. 분명, 지금 우리가 보고 있듯이 황홀하게 꽃피우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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