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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개도 먹기 전에 꼬리를 먼저 흔든다

중앙일보 2011.05.07 02:20 주말섹션 15면 지면보기






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




이번 주는 단연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이 화제였습니다. 역시 현실은 어떤 할리우드 영화보다도 더 드라마틱합니다. 온갖 미확인 추측 보도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날개를 단 ‘카더라 통신’이 보태져 소란하지만, 테러리스트의 죽음 다음으로 감동적인 건 따로 있었습니다. 이번 작전의 성공이 8개월에 걸친 은밀하고 집요한 추적의 결실이었다는 것이지요. 오사마의 은신처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몇 달을 위성으로 감시만 했다는 겁니다. 은신처와 똑같은 집을 지어놓고 훈련한 특수부대의 준비가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린 거지요. 1㎜의 빈틈도 용납 않는다는 철두철미 정신의 승리입니다. 아무리 완벽을 기해도 실패 확률이 더 높을 수밖에 없던 작전이 성공한 이유겠지요.



 철저히 준비해야 성공한다는 결론은 조금 싱겁습니다. 밥 먹어야 배부르다는 얘기와 비슷하지요. 하지만 감동은 그 이면에 있습니다. 철저히 준비한다는 건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수많은 반대와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강단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이번 작전에서도 마찬가질 겁니다. 무슨 소린지 예를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청나라 말기에 증국번(曾國藩)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오쩌둥이 “근대 인물 중 나를 무릎 꿇게 하는 이는 오직 증국번뿐”이라고 평가하는 인물이지요.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고 근대화를 위한 양무운동을 추진했다지만, 마오쩌둥이 무릎까지 꿇을 정도일까 의아합니다.



 그는 우리가 흔히 아는 위인과 거리가 멉니다. 그가 맡은 첫 번째 주요 임무는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너무 혹독하게 다루다가 반발한 부하들에게 살해당할 뻔한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위기는 면했지만 치욕까지 씻을 순 없었지요. 이후 직접 군사를 이끌고 전투에 참여하는데, 세 번을 모두 패하고 맙니다.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은 곧 세 번의 자살 기도로 이어지지요.



 하지만 증국번의 진가는 이때부터 드러납니다. 그는 황제에게 수군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태평천국군은 반란 초기부터 일반 선박을 개조한 1만여 척의 전함을 거느리고 있었거든요. 태평천국군이 장강(長江) 전체를 장악하면서 청 관병은 육로로만 이동해야 했습니다. 강을 타고 신출귀몰하는 반란군을 당해낼 수 없을 수밖에요. 태평천국 소리만 들어도 달아나기 바빴지요.



 황제의 허락을 얻은 증국번은 최고의 수군 양성에 나섭니다. 하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습니다. 많은 연구와 시행착오 끝에 위력이 강한 서양 대포를 장착할 수 있는 견고한 전함을 만들어 냅니다. 배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지요. 뭍에서만 생활하던 호남에서 수군을 모집하는 데도 애를 먹었습니다. 가까스로 끌어모은 병사들의 훈련도 채 끝나기 전에 황제의 독촉이 떨어집니다. 세 달 동안 세 번이나 출병 요구를 받지만 증국번은 단호히 거부합니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거지요. 화가 난 황제는 “호남에서의 권력 놀음이 재미있나 본데, 그대가 그런 능력이나 있는지 모르겠다”는 비아냥까지 합니다.



 소름 끼칠 일 아닙니까? 말 한마디면 목숨도 내놓아야 할 황제한테 이런 소리를 듣다니요. 게다가 그의 정적들은 “증국번이 강남 4성의 군권을 독차지하려 한다”는 모략으로 황제의 분노를 더욱 부추겼겠지요. 증국번은 그러나 끝까지 굴하지 않고 황제를 설득하면서 준비를 마칩니다. 결국 당대 최고의 전함과 체계적으로 잘 훈련된 수군을 출병시켜 태평천국군을 압도하지요. 그가 양성한 수군의 장강 장악은 태평천국의 난 진압에 결정적 승부처가 됩니다.



 나중에 태평천국군의 명장 석달개는 체포돼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증국번을 이렇게 평합니다. “전쟁터에서는 별 볼 일 없었지만, 뛰어난 장수를 알아보는 탁월한 안목이 있고 끊임없는 연구 분석으로 치밀하고 완벽한 계략을 세웠다. 이런 지휘관은 처음 본다.”



 증국번이 황제의 노여움에 떨거나 황제의 사랑을 갈구했다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출병을 했을 겁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이번 제로니모 작전에서도 빈 라덴이 달아나기 전에 서둘러 공격하자는 주장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하지만 섣불리 공격했다 실패한다면 다시는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없을 겁니다.



 중국에 재미있는 속담이 있습니다. 선도미후지미(先掉尾後知味)! 개도 음식을 먹기 전에 꼬리를 먼저 흔든다는 말입니다. 계획과 준비가 있어야 목표에 이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꼬리를 많이 흔들면 먹이를 많이 얻을 수 있듯, 준비가 치밀할수록 목표에 도달할 확률이 높아지겠지요. 기억하십시오. 치밀한 준비란 그것을 방해하는 수많은 압력과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힘과 동의어입니다.



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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