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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수석→기획수석→노동장관→재정장관…박재완, 초고속 질주

중앙일보 2011.05.07 01:49 종합 2면 지면보기



‘깜짝 인선’ 박재완 재정장관 후보자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의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내정은 5·6 개각의 ‘깜짝 카드’다. 이번 개각과 관련해 그간 여러 가지 하마평이 나왔으나 박 후보자의 이름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 8·8 개각에서 노동부를 맡은 지 9개월밖에 안 됐고, 과거 재무부 근무 경력도 짧기 때문이다.



 박 장관 스스로도 기자와의 통화에서 “오늘(6일) 오후 6시쯤 임태희 대통령실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전까지는 전혀 언질이 없었기 때문에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임 실장의 전화를 받았을 때 박 후보자는 서울지방노동청을 방문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지명을 두고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발상의 전환을 한 인사이기는 하지만 이 대통령과 박 후보자의 관계를 고려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한다. 박 후보자가 이 대통령의 두터운 신뢰를 받으며 현 정부에서 ‘고속 승진’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박 후보자는 17대 국회의원을 하던 시절인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든 이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 박 후보자는 강재섭 당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경선 규정을 다듬는 역할을 했다. 그가 정리한 규정에 따라 치러진 경선에서 이 대통령은 초반 열세를 극복하고 박근혜 전 대표를 아슬아슬하게 눌렀다.



 이후 박 후보자는 이 대통령의 대선 후보 캠프에 참여했고, 대선 승리 이후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도 합류했다. 인수위에서 그는 정부 조직을 간소화하라는 대통령 당선자의 특별지시를 받고 ‘별동대’처럼 활동했다. 이 대통령이 비교적 짧은 인연에도 불구하고 박 후보자에게 중책을 맡긴 건 그가 지독한 ‘일벌레’이기 때문이다. 박 후보자는 의원 시절 사무실에 간이침대를 놓고 거의 밤샘을 하며 일하는 의원으로 소문이 났었다.



 그런 그를 이 대통령은 현 정부 출범(2008년 2월) 때 청와대 정무수석에 기용했다. 그로부터 3개월 만에 ‘광우병 파동’으로 청와대 1기 수석들이 대부분 교체됐을 때도 그는 국정기획수석으로 자리를 옮겨 청와대에 남았다. 당시 여권 내부에서는 “정무수석이 ‘촛불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 여론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박 후보자를 곁에 뒀다. 박 후보자는 국정기획수석으로서 ▶세종시 원안 수정 ▶4대 강 살리기 사업 ▶녹색성장 등 굵직한 ‘대통령 어젠다’를 다뤘다.



 그래서 박 후보자는 당시 청와대에서 함께 일하던 박형준(현 대통령 특보) 전 정무수석, 이동관(특보) 전 홍보수석과 함께 ‘청와대 순장(殉葬) 3인조’로 불렸다.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옆에서 보좌할 참모라는 얘기였다. 이들 3인조는 지난해 7월 16일 한꺼번에 수석직에서 물러났지만 지금은 모두 정부와 청와대로 복귀한 상태다. 그중에서도 청와대를 떠난 지 23일 만에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재기용된 박 후보자의 복귀가 가장 빨랐다.



 그랬던 그가 다시 재정부 장관으로 이동하게 되자 청와대와 정부에선 “박 후보자가 진짜 순장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박 후보자에게 경제운용의 책임을 맡긴 것은 그와 끝까지 함께 가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박 후보자는 1979년 행정고시(23회)에 합격한 뒤 감사원에서 공직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학업을 병행했고 하버드대 정책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재무부로 옮겨 2년여 근무했다. 96년부터 성균관대 교수(행정학)가 됐다. 박 후보자는 “서민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에 올인하겠다”고 말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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