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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내일은 어버이날…책으로 읽는 ‘우리 가슴 한 켠의 어머니·아버지’

중앙일보 2011.05.07 00:49 종합 20면 지면보기






화가 이종구씨가 고향인 충남 서산군 오지리에서 농사를 짓는 아버지와 농촌 사람들에 대한 충실한 다큐멘터리로 그린 ‘속(續) 농자천하지대본(農者 天下之大本)-연혁’. 부대종이에 아크릴릭, 1984. 양곡부대 위에 묘사된 아버지의 모습은 가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이 땅 모든 어버이의 초상이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열기가 뜨겁다. 희생과 인내의 모성(母性) 코드가 한국을 넘어 미국·영국 독자들을 울렸다. 어머니 하면 뭔가 그립고 울컥한 게 튀어나온다. 아버지란 단어는 또 어떤가. 8일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라는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사랑과 억압이란 야누스의 얼굴을 지닌 부모. 소설가 김도언·김성중씨가 어버이의 뜻을 반추하는 작품을 추천해왔다. 재일동포 강상중 도쿄대 교수의 신간 『어머니』도 감동적이다.



당신을 미워합니다, 사랑합니다



소설가 김도언이 권하는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작가에게 아버지란 일종의 ‘모스 부호(Morse Code)’ 같다. 작가는 백지와 마주하는 동안 자신의 기원인 아버지가 끊임없이 보내오는 신호를 해독해야 하는 의무에 시달린다. 특히 그 작가가 남성작가라면 이 진술은 거의 틀림이 없다. 아버지가 보내오는 신호는 불안과 공포를 수반하면서 작가의 감수성에 강렬한 돋을새김을 남긴다. 카프카는 아마도 아버지로부터의 불안과 공포를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인 작가였던 모양이다.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문학과지성사)가 그 추정의 근거다.



 첫 번째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와 파혼한 이력이 있는, 이미 30대 중반에 이른 카프카는 신부감으로 점 찍은 여성 율리 보리체크를 집으로 데리고 가 아버지께 인사를 시킨다. 그러나 카프카의 기대와는 달리 아버지는 결혼을 반대하고 카프카를 비난한다. 결국 카프카는 율리와의 약혼마저 파기하게 된다. 카프카의 아버지가 아들의 결혼을 극구 반대했던 것은 율리의 부친이 유대교당의 사환이자 구두수선공으로 법학박사이자 명망 있는 사업가인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확연히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아버지 때문에 두 번째 약혼이 파기되자 카프카는 작심을 하고 아버지를 수신자로 하는 편지를 쓰게 된다. 그는 자신을 왜 두려워하느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두려움 때문에 말로는 조목조목 설명할 수 없음을 깨닫고 대신 글쓰기를 택했노라고 고백한다.









김도언



 카프카의 아버지는 명석한 두뇌와 열정, 그리고 남자다운 단단한 강골의 체격으로 젊은 시절부터 승승장구한 끝에 사업가로 성공하게 된다. 그에게 자식이란 자신에게 빌붙어 사는 하찮은 식구일 뿐이다. 그는 자식들에게 매사 가부장적인 권위를 드러내면서 철저하게 단속한다. 카프카는 그런 아버지가 자신에게는 단 하나의 세계였다고 고백한다. 물론 그 세계는 화해 불가능한 세계다. 이 화해 불가능한 세계로부터 느낌 망단(望斷)이 훗날 작품 속에 반영돼 눈에 띄지 않는 벌레가 되기도 하고 굳은 성문을 두드리기도 하지 않았을까.



 책은 어느 페이지를 펼쳐봐도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존경과 원망, 질투와 동경, 조롱과 경배, 증오와 애정 같은 양가적인 감정이 가느다란 실핏줄 같은 섬세한 문장으로 그려져 있다.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가장 바란 것은 소통으로 완성되는 용서와 해방이다. 하지만 카프카는 그 희망 역시 스스로 기각해버린다. 이 편지는 아버지에게 전달되지 못한 채 작가의 자위적인 텍스트로만 남게 된다. 영민한 예술적 영혼이 타협을 포기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평생 해방되지 못했던 카프카를 생각하면 “나는 아버지가 일찍 죽는 행운을 안고 태어났다”고 말하며 의기양양해했던 사르트르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8일은 어버이날이다. 아무리 하늘이 정한 인연이라지만 부모와 자식 간에는 실내악단처럼 섬세한 조율과 연주가 필요하지 않을까. 부자가 함께 고갯마루 길 위에서 대화를 나누는 따뜻함을 한국 소설에서 찾아본다면 이순원의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이 있다.





 아비의 피는 가족의 밥이었다



소설가 김성중이 권하는 『허삼관 매혈기』












내 기억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부모와 자식의 이미지란 이런 것이다. 부모는 가족의 삶에서 앞면을 맡는다. 황량한 벌판에서 파라솔 같은 것을 펼쳐 들고, 생존을 위해 열심히 싸우는 사람들이다. 아이들은 그 전장(戰場)의 뒷면에서 자기 환상을 키우며 자라난다. 부유한 부모들의 빛나는 무기에 비해 가난한 부모들의 무기는 연약하고 초라하다. 그리고 선택할 수 없다. 뒷면에서 무럭무럭 크는 아이들 때문에 물러설 수도 없으니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허삼관 매혈기』(푸른숲)에 나오는 주인공의 무기는 무시무시하게도 자기 피다. 그는 문자 그대로 ‘피를 팔아 위기를 해결하는’ 가장이다. 아마도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은 나와 같은 공포를 품고 내내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즉, 허삼관이 저렇게 피를 팔아 치우다가는 언젠가 끔찍한 죽음을 맞지 않겠는가 하는 두려움 말이다. (실제로 그를 매혈(賣血)의 세계로 인도하고 피를 판 후에는 반드시 돼지간볶음 한 접시와 데운 황주 두 냥을 먹어야 한다고 알려준 근룡이는 결국 죽음을 면치 못한다)









김성중



 최초의 매혈로 아내를 얻고, 자기 씨가 아닌 장남이 친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두 번째로 피를 팔고, 가뭄이 심해지자 가족에게 국수를 먹이기 위해서 또다시 피를 판 허삼관의 인생은 매혈로 일군 가족사라 할 수 있다.



그 후에도 삶의 고비는 이어지고 공장 노동자인 그가 거금을 마련한 길이라곤 피를 파는 일뿐이다. 매혈 끝에 수혈을 받아야 하는 아이러니와 죽을 고비를 겪으면서도 그는 피를 파는 여정을 멈추지 못한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으니 오로지 신체, 그것도 생명 자체인 피를 내줄 수밖에 없다.



 허삼관의 삶에는 두 가지의 강력한 난관, 즉 가난과 모욕이 있었다. 생활의 위기가 가난이라면, 존엄의 위기는 모욕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물질적·정신적 위기가 도처에 놓여있는 우리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실수도 저지르고 좌절도 하면서 결국 난관을 극복해나간다. 얼핏 보기에는 잔혹할 것 같은 이 이야기 속에는 사실 엄청나게 웃긴 장면도 많은데, 허삼관이 그리 완벽한 위인이 아니라는 것도 한몫 한다.



 한 개인을 아버지나 어머니로 한정해 어떤 신화를 기대하는 것은 대체로 자식들이 저지르는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허삼관에게 박수를 쳐준다면 눈물겨운 부정(父情)을 지닌 아버지여서 아니라 그 힘든 자리를 통과한 ‘인간’이어서야 하지 않을까? 익살스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이 소설을 덮은 다음, 달력의 5월 8일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코맥 맥카시의 장편 『로드』(문학동네)와 캐나다의 여성 단편작가 앨리스 먼로의 소설집 『떠남』(따뜻한손)도 추천하고 싶다. 『로드』는 아들을 신(神)처럼 돌보는 아버지의 고된 여정이 종말의 세계를 배경으로 단단하게 빛난다. 『떠남』의 뒷부분, 세 편의 연작 단편 ‘우연’ ‘머지않아’ ‘침묵’은 모녀 이야기를 다뤘다. 어머니와 딸의 엇갈림에 대한 시적 서사가 눈부시다.



고난을 친구 삼아온 평생

그래도 당신은 말합니다 “이 어미는 참 행복했다 … ”











어머니

강상중 지음

오근영 옮김, 사계절

300쪽, 1만1000원




“소설 쓰지 마!” 여기서 ‘소설’이란 지어낸 이야기다. 작위성을 비판하는 뜻이 담겼다. 그리고 이어진다. “사실이 더 힘이 세다.” 우리네 대부분이 눈물 자아내는 곡진한 사연이 한 자락씩은 가졌으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문학의 위기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을 터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한 아들이 어머니의 삶을 더듬어 본 것이다. 언뜻 진부하리란 생각이 들 법하다. 그런데 절대 그렇지 않다. 우선 형식이 특이하다. 사실을 소설식으로 다뤘다. ‘평전(評傳)’처럼 한 사람의 일생을 꼼꼼히 복원했으니 당연히 사실이 뼈대다. 여기에 상상력을 입혀 이야기로 풀어갔다.



 지은이는 재일동포 2세인 강상중 도쿄대 교수. 1998년 한국 국적자로는 최초로 도쿄대 정교수가 됐다 해서 화제가 됐던 지식인이다. 『내셔널리즘』 『두 개의 전후와 일본』 등 진지한 책을 냈고 재작년에 나온 『고민하는 힘』 『청춘을 읽는다』로 대중적으로도 이름을 알린 바 있다. 한데 기존 강상중의 독자들은 이 책을 계기로 그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할 듯싶다.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좋은 필자를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겠다. 사변적이지 않으면서도 깊이가 있고, 상투적이지 않으면서도 흡인력이 있는 글 덕분이다.



 이야기는 강 교수 어머니의 고향인 경남 진해에서 시작해 진해에서 끝난다. 태평양 전쟁 직전인 16살 때 약혼자를 찾아 혈혈단신(孑孑單身) 도쿄로 와서, 종전 후 떠밀려간 구마모토(熊本)에서 2005년 숨지기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이야기는 지은이 개인 사와 한국 근대사가 겹친다.



 일제 강점기에 식민지 여성으로 태어나 자식이 쓴 책도 읽지 못했던 어머니가 한여름 땡볕 아래서 집 앞 도랑을 갈퀴로 헤집는 이야기가 실렸다. 시커먼 물에서 뽀글뽀글 거품이 올라오고 역한 냄새가 나는 데서 뭔가 돈 되는 것을 건져 생계에 보태려는 의도였다. 어찌해서 고물상을 차렸지만 글을 몰라 속임을 당하고는 “글을 모른다는 게 얼마나 불쌍한지” 탄식하는 이야기도 담겼다.



 그런가 하면 집안을 살리기 위해 일제 헌병이 됐던 숙부가 종전으로 겪는 혼란, 미군이 진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라디오에서 영어회화 강좌를 시작한 일본의 기민함, ‘제삼국인은 돌아가라’ 라는 핍박을 받으면서도 돌아갈 수 없었던 ‘자이니치(在日)’들의 속사정, ‘조선동란’으로 일본의 경제가 피어난 반면 마음을 졸이며 살아야 재일동포의 심정 등은 학교 교과서에서 만날 수 없는 우리의 역사다.



 어쩌면 구질구질하고, 어쩌면 가슴 먹먹한 글이다. 그런데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여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지은이는 이국 땅에서 평생을 지낸 어머니를 지탱해 준 ‘기도의 세계’를 알리고 싶어 글을 썼다고 했다. 어머니는 생전에 육성으로 지은이에게 남긴 편지에 “이 어미는 참 행복했다…. 예로부터의 법도를 지켜나가면서 그 힘으로 어떻게든 일본에서도 살아올 수 있었다”고 했다.



 차마 놓을 수 없어 밤 깊도록 단숨에 읽은, 모처럼 만난 진정한 이야기다. 아, 5월에는 『어머니』를 만났다.



김성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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