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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근대화 성공한 아시아, 인도에서 배울 점은 …

중앙일보 2011.05.07 00:41 종합 21면 지면보기








다른 누군가의 세기

패트릭 스미스 지음

노시내 옮김, 마티

304쪽, 1만5000원




저자는 3년 전 번역됐던 『일본의 재구성』으로 저널리스트의 통찰이 얼마나 값진가를 보여줬던 사람이다. 20년 넘게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등에서 아시아통 기자로 활동해온 그는 『일본의 재구성』에서 현대일본의 내면과 정체성 위기를 섬세하게 보여주었다. 루스 베네딕트의 고전 『국화와 칼』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른 누군가의 세기』에선 아시아 전체로 시야를 넓혔다.



 이 책은 일본·중국·인도를 중심으로 탈(脫)서구 시대 아시아의 부상을 다루고 있다. 르포나 스케치를 훌쩍 웃돈다. 때론 여행하듯 여러 풍경을 보여주지만 근대화(성)에 대한 관심을 놓치는 법이 없다. 고급 문장을 구사하고 행간 뉘앙스가 만만치 않기에 정독이 필수이지만, 메시지는 명쾌하다. 미국의 세기, 유럽의 세기는 끝났으며 21세기는 분명 아시아의 세기라는 것이다. 아시아는 경제발전과 사회변화 측면에서 서구를 따라잡았거나 이미 추월했다.



 일본 메이지시대의 후쿠자와 유기치가 외쳤던 ‘탈아입구(脫亞入歐)’는 요즘 들어 ‘입아입구(入亞入歐)’내지 ‘재아친구(在亞親歐)’로 바뀌고 있는 형편이다. “아시아에도 합류하고 서구에도 합류하자”는 문명의 퓨전, 혹은 “아시아로 남아 있되 서구와도 친하자”는 말에는 자신감이 보인다.



 서구·아시아 사이의 패권다툼을 다룬 책일까. 아니다. 훨씬 포괄적이다. 진정한 근대성을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근대화·산업화와 근대성 사이를 구분한다. 껍데기만 바뀌는 것은 근대화(modernization)에 불과하며 보편의 근대성(becoming modern) 확보가 관건이다.



 저자는 근대화에 이미 성공한 아시아가 동서문명의 구분을 넘어선 근대성을 어떻게 창출할까를 거듭 묻고 있다. 일례로 일본에 흔한 오타쿠, 즉 자잘한 것에 코 박는 현상이란 표면적 근대화 달성 이후 찾아온 우울증내지 허무주의의 표현이다. 중국의 경우 좀 거칠지만 자기쇄신, 즉 중국적인 것의 의미를 갱신하려는 에너지와 노력은 평가할 만한 대목이다.



 저자의 관심은 인도 쪽에 많다. 서구 콤플렉스나 원한도 없으며, 아시아만의 것을 지키겠다는 강박증에서도 자유롭다고 평가한다. 이 책에 한국은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저자의 활동무대가 일본·중국·인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한국 모습은 책에 서문을 쓴 경제학자 장하준이 나름 짚어내고 있다. 눈부신 모더니티를 구축한 한국은 근대화에만 매달린 채 ‘서구화 역주행’을 하고 있고, 정체성 문제가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한체서용(韓體西用), 즉 우리를 중심으로 놓고 서구를 활용하는 문화적 여유가 필요하다는 바람도 넌지시 비춘다. 반복하지만 『다른 누군가의 세기』는 근래 나온 이 분야 책 중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텍스트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을 경우 의외로 많은 암시를 받을 수 있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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