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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그래피티

중앙일보 2011.05.07 00:13 종합 31면 지면보기








뱅크시(Banksy)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낙서화가다. 건물 벽에 스프레이 페인트 등을 이용해 쥐·원숭이·소·경찰 등을 그린다. 전쟁과 폭력, 정부와 권력, 자본주의와 소비사회를 비판한다. 2005년엔 이스라엘을 비난하며 팔레스타인 장벽에 9점의 낙서화를 남겼다. 처음엔 언짢아했던 영국인들도 이젠 건물에 페인트칠을 다시 할 때 뱅크시의 그림은 남겨둔다.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 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이 그의 작품을 샀다. 별명이 ‘낙서화계(界)의 대미언 허스트’인 것도 이해가 간다.



 낙서하듯 그리는 길거리 벽화를 그래피티 아트(graffiti art)라고 한다. 어원은 ‘긁어서 새긴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그라피토(graffito)’. 1970년대 뉴욕에서 힙합과 더불어 발달한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대명사다. 태생이 뒷골목이다 보니 은어도 발달했다. 스프레이꾼은 ‘라이터(writer)’라 불린다. ‘태그(tag)’는 구불구불한 장식문자, ‘피스(piece)’는 알록달록한 그림이다. 피스가 작품성을 인정받으면 ‘버너(burner)’라고 한다.



 그래피티 아트는 예술이지만 현행법상 불법이다. 열네 살부터 그리기 시작했다는 뱅크시는 1974년 백인 남성이라는 것 외엔 본명을 포함한 신원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체포될까 봐서다. 스위스 작가 하랄트 나에겔리처럼 실형을 선고받은 전례도 있다. 별명이 ‘취리히의 스프레이꾼’이었던 그는 77년부터 2년간 도시의 익명성을 풍자하는 낙서화 900여 개를 그렸다. 80년 스위스 법원은 궐석재판에서 징역 9개월과 벌금형을 선고했다. 당시만 해도 그래피티는 예술보다는 ‘재물 손괴’와 ‘법질서 동요’에 더 가까웠던 모양이다.



 G20 포스터에 스프레이를 뿌려 쥐를 그린 한 대학강사가 최근 징역 10월을 구형받았다. 그는 뱅크시의 쥐 그림을 패러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창동·박찬욱·봉준호 감독 등은 “표현의 자유를 허(許)하라”며 법원에 탄원서를 내 그를 옹호했다. 남의 재산이나 공공기물에 피해를 끼쳤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하나 그 행위에 예술적 측면이 있음을 간과하는 건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뉴욕시는 90년대 중반 ‘반(反)그래피티 업무추진팀’을 만들어 낙서화 소탕작전을 벌였다. 하지만 대개 경범죄로 처리했다. 불법이니 단속하되 예술이니 호되게 벌주진 않았다는 얘기다. 하물며 지금은 관용과 소통을 부르짖는 21세기 아닌가.



기선민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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