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브라보 마이 라이프] 86세 김인자씨의 마라톤 인생

중앙일보 2011.05.06 15:24 1면 지면보기
전업주부로 한평생 살아온 평범한 여성이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마라톤의 매력에 빠졌다. 3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 새 나이는 80을 넘어 90을 향해 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사진 속 50대 그 모습 그대로였다. 달리는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몸의 세월은 거꾸로 흘렀다. 마라톤을 만나 인생의 최고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김인자씨를 만났다.


30년간 매일 달리기 … 지금이 나의 전성기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마라톤에서 찾은 나의 인생









마라톤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김인자씨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조영회 기자]







1일 대전에서 ‘3대하천마라톤대회’가 열렸다. 최고령 나이로 10㎞ 구간을 달린 김인자(86·아산시 장존동)씨가 완주 메달을 목에 걸었다. 매회 대회를 준비해 온 그에게 10㎞ 완주는 사실 큰 기쁨은 아니다.



 구순(九旬)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대회마다 완주하기까지는 자신만의 비결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다. 바람처럼 옆을 스쳐 지나가는 건장한 마라토너를 보고 좌절감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고 뛰다 걷기를 반복하는 무리에 끼고 싶은 유혹도 이겨내야 한다.



 그는 시간이 얼마 지났는가에 신경쓰지않고 같은 속도로 내달린다. ‘토끼와 거북이 경주에서 거북이는 결국 이긴다’는 전래동화를 매 경기마다 몸소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여느 가정집 엄마이자 남편의 아내로 생활하는 전업주부였다. 남편 뒷바라지에 삼형제를 키우느라 자신의 인생은 늘 뒷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라톤과 인연을 맺었다. 1979년 당시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이 운동복 차림으로 아침 조깅하는 모습이 신문에 실렸다.



 노랑머리를 바람에 휘날리며 달리는 대통령. 볼품 없는 추리닝 차림으로 달리는 모습은 그에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의 눈에는 대통령도 서양인도 아닌 평범한 길을 달리는 보통 사람으로 보였다. 지위도, 연령도, 인종도 초월한 자유와 평등을 상징하는 모습 같아 보였다. 이후 그는 달리기를 사랑하게 됐다.



 그때 나이 54세.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신문을 본 다음 날부터 운동화를 구입해 단독주택가 골목을 달리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목적도 없이 동네를 무작정 돌았다. 숨이 차오르고 온몸이 뻐근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달린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아시안게임을 앞둔 85년 한 방송사가 광복 40주년을 기념해 서울에서 ‘시민건강달리기대회’를 개최했고 5㎞를 처음 완주했다. 이어 87년 서울올림픽 개최 예정 기념 마라톤 대회 등 2차례에 걸쳐 진행된 ‘성화봉송로달리기대회’도 참가했다. 달릴 때마다 받아와 하나하나 집에 걸어둔 메달만 무려 107개에 이른다.



새벽마다 동네 5㎞ 뛰어



그는 매일 아침 6시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곤 자신이 사는 동네 아파트를 달리기 시작한다. 어림잡아 25바퀴를 돌면 5㎞. 처음엔 1시간을 넘겨서야 끝났지만 지금은 45분 정도로 짧아졌다. 15분을 단축하기까지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산에 자리 잡은 후 하루도 거르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운동시간이 새벽이어서 처음엔 보는 이도 없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서 동네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해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넨 주민도 나타났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나이를 듣고 놀랬다.



 ‘늙은 나이에 주책없이 동네를 돌아 다니는 노인이 있다. 정신 나간 건 아니냐’는 손가락질을 받을까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달렸다. 지금은 “힘드실 텐데 꾸준히 운동하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건강해 질 수 있냐”며 응원하거나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민들이 생겨났다. 혹시나 하는 걱정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시련과 고통 딛고 다시 달렸다



그는 “왜 달리냐”는 주위 사람들의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에 대한 답은 건강을 위한다거나 그렇다고 오래 살기 위해서도 아니다. 달리지 않으면 기분 나쁠 정도로 몸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습관이 됐고 중독이 됐다”는 간단한 말로 표현을 대신했다.



 그는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다. 참가 횟수만 1년이면 40회에 달한다. 명절이나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을 제외하곤 거의 매주 마라톤을 위해 집을 나선다.



 인터넷에서 마라톤 일정을 보고 자신이 참가해야 할 대회를 고른다. 그리곤 몇 시에 일어나 어떻게 이동해야 할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꼼꼼히 노트에 받아 적는다. 지금도 방안 구석에는 지난 3년 간 대회일정과 교통이동수단, 출발·도착시간, 준비물 등을 빼곡히 적어 놓은 공책과 대회에서 단 40여 장의 등번호가 수북이 쌓여있다. 거리가 먼 지역의 경우 경기장 근처 찜질방에서 밤을 보내기도 한다. 1년 동안 대회 절반을 찜질방에서 지낼 정도로 마라톤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하지만 얼마 전 그에게 큰 시련이 찾아왔다. 2007년 3월 횡단보도를 건너다 학생과 부딪혀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졌다. 인공뼈를 넣어야 하는 대수술을 2차례 받아야 했다. 장애 5급 판정이 내려졌다. 의사는 앞으론 운동은 삼가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1년 동안 달리지 못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심한 운동은 자제했지만 운동을 지속한 지금 건강은 더욱 좋아졌다. 대회 기록도 좋아졌다. 10㎞ 구간을 1시간 33분 기록에서 4분이나 단축했다.



몸과 마음 균형 잡힌 상태가 건강한 것









마라톤 연습중인 김인자씨. [조영회 기자]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뛰다가 죽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쓰러질 때까지 뛰고 싶다”는 그의 말과 눈빛은 패기 넘치는 젊은 마라토너 못지 않게 강렬했다.



 그는 얼마 전부터 헬스클럽을 다니기 시작했다. 운동 후 느껴지는 상쾌함과 뿌듯함은 마라톤을 완주했을 때와 비슷하다고 했다. 운동하고 나면 지칠 법도 한데 힘들기 보다 오히려 기운이 넘친다고 웃음지었다.



 그는 “남들이 86세라는 나이에 달린다는 것이 대단하다고들 하지만 나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마라톤은 별다른 기술이나 능력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달리고자 하는 발심(發心), 도중하차 하지 않는 의지, 지속하는 끈기와 인내심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다. 달리는 것을 습관화하면 마라토너다. 마라토너로 불릴 때쯤이면 전신이 근육질로 단단해 진다. 근육이란 젊음의 상징이다. 그것이 마라톤을 통해 얻어지는 포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가 책을 읽고 자는 것도 건강이 뒷받침 돼야 한다. 마라톤을 했기 때문에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건강은 비결이 있는 게 아니고 균형 잡힌 상태다. 만약 배가 아프면 뛰지 못한다. 몸의 내·외부가 모두 균형이 맞춰져 있을 때 건강한 것이다. 건강한 몸은 건강한 정신과도 연결된다.”고 덧붙였다.



  자신에게 있어 마라톤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마라톤은 그냥 달리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한 부분이다. 사람들이 건강을 타고 났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상한다.



30년 넘게 뛰며 건강을 유지했는데 그들은 피나는 노력의 대가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이를 악물고 뛴다. 노력의 결과물을 사람들이 알고 그들도 건강을 지키며 성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건강을 타고 난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달리다 보니 건강은 자연스럽게 찾아온다”고 밝혔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