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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도 쩔쩔맸다 … ‘브레이크 없는 권력’ 금감원

중앙일보 2011.05.06 02:09 종합 3면 지면보기



‘반민반관(半民半官) 공룡’ 금감원 <상>





“금융감독원 검사역이 지적한 걸 고쳤더니 다음 해 다른 사람이 나와 다시 바꾸라고 하더라.”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 참석차 베트남을 방문한 신동규 은행연합회장이 5일 밝힌 수출입은행장 당시의 경험이다. 금감원의 금융회사 검사에 전문성과 일관성이 없다는 얘기다. 다른 금융사도 대부분 같은 경험을 갖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복잡한 파생상품 거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검사역을 가르치면서 감사를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금융사들은 다들 입이 나와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금융회사는 토를 달지 못한다. 금감원의 권한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과 검사권은 금감원에 집중돼 있다. 예금보험공사나 한국은행이 공동검사권을 갖고 있지만 금감원이 동의하지 않으면 행사할 수 없다. 지난달 농협 전산망 마비 사태 때 한국은행 검사역들은 사고 발생 일주일 뒤에야 현장을 볼 수 있었다. 금감원에 공동검사를 요청하기 위해 금융통화위원회 소집 등 내·외부 절차를 밟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농협사태로 금융결제망 마감이 지연되는 등 금융권과 국민에게 큰 피해가 있었는데도 중앙은행이 직접 상황을 파악할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금감원의 힘은 법적 감독기구인 금융위원회도 버거워할 정도다. 공무원인 금융위 인원이 200명가량인 데 비해 금감원은 1600명이 넘는다. 스카이(SKY,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이 70% 이상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들이 가진 정보와 네트워크를 금융위가 도저히 당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일반 국민이 금융위와 금감원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 그만큼 금감원의 월권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룡권력을 만든 건 정부 책임”이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현 정부는 출범과 함께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을 분리해 금감원의 힘을 키워줬다. 금감원을 공공기관에서 해제하고 금감위의 조직 승인권을 없애는 등 그나마 있던 브레이크도 잇따라 풀어줬다.



 이런 힘은 종종 정치적으로 이용됐다. 2009년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KB금융지주 회장에 내정됐다 사퇴한 데엔 금감원의 힘이 작용했다. 강 행장이 청와대가 민 다른 후보를 물리치자 금감원의 전방위 검사가 시작됐다. 결국 강 행장이 사퇴하고 어윤대 현 회장이 CEO가 됐다. 김정태 초대 국민은행장의 사퇴에도 금감원 검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금감원이 저축은행에 대해서만 유독 종이호랑이였던 것도 정치와 무관치 않다. 지난달 저축은행 청문회에서 많은 야당 의원은 “지난해 개최한 주요 20개국(G20) 회의 분위기를 흐리지 않기 위해 1년 넘게 구조조정을 미루다 저축은행 사태가 파국을 맞았다”고 주장했다.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빨리 해결하자”는 금융당국의 주장을 청와대가 “공적자금의 기역자도 꺼내지 말라”며 묵살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금감원의 한 팀장급 검사역은 “정치·경제 권력의 눈치를 잘 봐야 살아남는 조직이 되면 대주주 등 외부의 유혹에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는 “금감원 하부 조직은 진급하기 위해 윗사람 눈치를 보고, 윗사람은 정치권 눈치를 본다”며 “외풍이 많고 정치바람이 센 데다 나중에 감사로 나가려면 업계에도 잘 보여야 하니 일이 될 리가 없다”고 말했다.



글=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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