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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세계 ‘히든 챔피언’ 독일 기업이 왜 많을까

중앙일보 2011.05.06 00:28 경제 8면 지면보기






황창규
지식경제 R&D 전략기획단장




작가 생텍쥐페리는 말했다.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가져오게 하거나 일감을 주지 마라.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먼저 키워 줘라.”



 비전이란 터무니없이 이상적이어선 안 되지만 사람들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할 정도는 돼야 한다. 국가 R&D 업무를 시작하면서 어디서 그런 이상을 찾을 수 있을지, 어떤 나라를 집중 벤치마킹하면 될지 고민을 많이 했다. 미국? 혁신적 창조물을 끈기 있게 밀고 나가 사업화하는 ‘벤처 정신’이 태동한 곳이며 학제 간 (Interdisciplinary) 연구가 일상화된 강력한 대학 시스템도 배후에 있다. 하지만 응용기술이 강점인 우리와는 태생적 환경이 너무 달라 전적으로 지향해야 할 국가 모델로는 썩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일본? ‘교토식 경영’이 우선 떠오른다. 반드시 연구해야 할 모델이긴 하나 신시장 창출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해야 하는 우리와는 지향점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나는 강소국이 많은 유럽을 주목했다. 강소국은 아니지만 유럽 재정위기 속에서도 2008년 수출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등 건재한 독일이 눈에 확 들어왔다. 경제 규모에 비해 대기업이 많지 않다는 사실도 무릎을 칠 만했다. 수출 총액 중 중소기업 비중이 80%가 넘으며, 수출의 75%가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는 소비재가 아니라 자본재나 중간재다.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작지만 강한’ 기업이 많다는 증거다. 성장판이 닫힌 듯 수출 비중이 2001년 43%를 정점으로 최근에는 30% 초반대까지 하락한 우리 중소기업들과 비교된다.



 ‘히든 챔피언’.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60~80%의 독보적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으며 대체할 만한 품질의 제품도 거의 없어 경기와 무관하게 높은 가격을 받는 기업들을 말한다. ‘글로벌 작은 거인’이다. 세계 2000개의 히든 챔피언 중 1300개가 독일 기업이란 사실에서 나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봤다. 경제의 허리를 담당할 탄탄한 중견 기업을 다수 육성하는 일이다. 우리가 만든 기술만 우리 것이 아니다. 남의 기술이라도 우리가 경쟁력을 가진 주력 산업과의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융·복합을 통해 대한민국 산 ‘작은 거인’들을 배출할 수 있다.



 마침 다음달 7~9일 R&D전략기획단이 주관하는 ‘글로벌 R&D 포럼’이 한국에서 열린다. 우리 기획단의 해외 자문위원들을 포함해 한분 한분 따로 모시기도 힘든 15명의 세계적 석학이 한날 한시에 우리나라를 찾는다. R&D라는 한 주제 아래 각 산업 분야의 엄선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세계 최초의 국제 포럼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첫날 주제는 ‘R&D가 주도하는 동반 성장’이다. ‘유럽의 피터 드러커’라 불리며 비(非)미국인으로는 이례적으로 세계 경영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히든 챔피언’의 저자 헤르만 지몬이 참여한다. 해외자문단의 좌장 격이며 미국 과학기술계를 대표하는 석학으로, 미국·일본·중국·인도 등 각국 정부의 자문을 맡아 온 조지 와이트사이즈 하버드대 최고명예교수가 기조 연설을 맡는다. 신(新)민·관협력체제를 다룰 ‘NP3(New Private Public Partnership)’ 등 세 개 세션이 뒤를 잇는다.



 행사를 매끄럽게 잘 치르는 것,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 포럼이 일회성 행사가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더욱 무겁게 누른다. 대기업이 제 발로 찾아와 기술 좀 쓰게 해달라고 매달릴 정도의 실력을 갖춘 ‘작은 거인’들, 그들과 우리 자랑인 주력산업을 일군 대기업들이 한데 어우러져 글로벌 시장에서 가공할 힘을 발휘하는 날, 사람들은 이번 포럼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길 바란다.



황창규 지식경제 R&D 전략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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