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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차전-맨유 VS 샬케] 최영미의 관전기

중앙일보 2011.05.06 00:25 종합 28면 지면보기



9일 첼시전 위해 주전 쉬게 하고
굶주린 1.5군 미친 듯 뛰게 하는
퍼거슨, 당신 역시 노련해



시인·본지 객원기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설명이 필요 없는 영국 최고의 축구팀이다. 18번의 리그 타이틀과 11번의 FA 컵, 그리고 유럽 컵을 세 번 차지했다. 1958년 비행기 사고로 8명의 선수를 포함해 23명의 목숨이 희생된 ‘뮌헨 참사’는 영국만 아니라 세계 축구팬들의 가슴을 사로잡았다. 위기가 기회가 되어, 팀을 재건하고 10년 뒤인 1968년 영국의 축구팀으로서는 최초로 유럽을 제패하고 이후 맨유는 세계 축구계의 새로운 권력으로 떠올랐다.



 감독들의 수명이 길어야 3년인 프로축구계에서 24년간 장기 집권한 알렉스 퍼거슨 경(Sir Alex Ferguson)은 맨유의 살아 있는 역사다. 늘 지퍼를 목까지 채워 올린 허름한 스웨터 위에 코트를 걸치고 껌을 씹는 할아버지. 수수한 안경테 속의 두 눈은 운동장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날카롭게 빛난다. 골이 터질 때마다 일흔 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게 아이처럼 팔짝팔짝 뛰는 순진함. 전반전을 마치고 경기 내용이 맘에 들지 않으면 라커룸에서 바로 코앞에서 욕을 퍼부어 선수들의 머리카락이 날린다고 ‘헤어드라이어’라는 별명을 얻은 독재자. ‘사나운 퍼기’의 취미는 승마와 피아노 치기라니. 노동당의 열성적인 지지자라는 이미지와 어긋나는 사진 한 장이 내 머릿속에서 춤춘다. 승마복을 차려입고 말에 올라탄 퍼거슨 경은 그 우아한 옷차림에도 불구하고 촌스러워 보였다.



 훗날 영국 축구에 기여한 공으로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퍼거슨 경은 1941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마추어 축구선수였던 그는 선박제조공장의 보조기능공으로 일하다 노동조합에 가입해 나중에 상근노조원이 되었다. 짧은 선수생활을 마치고 애버딘(Aberdeen) 팀을 이끄는 감독이 되어 1982년에 스코티시 컵을 차지하고, 다음 시즌에 바이에른 뮌헨과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마침내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European Cup Winners’ Cup)을 들어올리며 그는 세계 축구계에 화려하게 등장한다. 그리고 3년 뒤에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지명되었다. 최고의 선수들을 모아놓은 맨유를 지휘하면서도 고된 훈련과 팀워크를 중시하는 그의 축구스타일은 변하지 않았다. 축구가 노동계급 문화의 정수라면, 퍼거슨은 가장 노동계급다운 축구를 추구한다.



 어젯밤 맨유와 샬케04의 챔스리그 경기에서도 드러났듯이, 맨유는 후방에서 전방으로 가장 빨리 공이 투입되는 전술을 구사한다. 이기기 위해 퍼기가 선수를 뽑는 기준은 그날의 몸 상태 그리고 동기부여가 아닐까. 그의 그림자도 본 적이 없지만, 나는 이 늙은 고집쟁이를 잘 알 것 같다. 이번에는 어떤 녀석이 싱싱할까? 누가 공에 굶주렸지? 벤치멤버들로 팀을 구성한 것도 물론 며칠 뒤 첼시와의 한판(9일 0시10분)을 고려해서지만, 후보들의 허기를 이용하자는 생각도 깔렸을 터. 전광석화 같은 맨유의 역습을 막지 못하고 샬케04의 수비조직은 무너졌다. 애처로울 만큼 일방적인 경기였지만, 맨유를 상대로 1골을 뽑았으니 독일에서 날아온 팬들의 발걸음이 그렇게 무겁지만은 않았으리.



최영미 시인·중앙일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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