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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한-EU 관세가 사라진다

중앙일보 2011.05.06 00:18 경제 2면 지면보기
한국과 유럽연합(EU) 사이의 자유무역협정(FTA)이 곡절 끝에 지난 4일 국회 비준을 받았다. 이에 따라 EU의 관세 장벽 대부분이 7월 1일부터 시작해 순차적으로 허물어지게 됐다. 국내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그만큼 높아지게 됐다.


10% ‘굴레’벗는 자동차, 176% ‘방패’ 잃는 분유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10개 국책연구기관은 한·EU FTA로 인해 수출은 한 해 25억 달러 증가하고, 일자리는 25만3000개가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쟁국인 일본과 중국은 아직 EU와 협상 시작조차 못한 상태여서 경제적 이득이 더 클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하지만 이해득실은 산업마다 다르다. 피해를 볼 업종도 있다. 한·EU FTA의 산업별 영향을 알아본다.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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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더욱 질주, 전자는 중립, 화장품은 흐림’.



 한국무역협회와 경제연구기관, 그리고 산업 전문가들은 한·EU FTA가 이런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자동차가 질주하리라 보는 이유는 EU가 그간 10%라는 높은 관세를 매겨 왔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고율 관세는 3~5년에 걸쳐 사라진다. 게다가 지난해 남유럽 재정위기로 인해 유럽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현지 소비자들 사이에 ‘가격 대비 만족도’를 따지는 경향이 더 강해졌다. 10% 관세의 굴레를 벗어버린 한국차에 주목할 소비자가 더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에서는 2008년 9월 금융위기 이후 소비자들이 실속을 따지면서 현대·기아차의 점유율이 쑥 올라갔다.



 자동차 업체별로는 상황이 좀 다르다. 지난해 쉐보레 브랜드로 유럽에 72만 대를 수출한 한국GM은 수출 경쟁력이 크게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에 현대·기아차는 체코·터키·슬로바키아 등 현지 생산이 많다. 따라서 완성차 관세 철폐에 따른 수혜는 별로 없다. 하지만 부품 관세(4.5%)가 사라짐에 따라 원가가 줄어드는 이점이 있다. 한국에서 부품을 싸게 들여다가 현지에서 조립할 수 있는 것이다. 푸조·폴크스바겐 등에 부품을 납품하는 만도는 4.5% 관세가 없어진다는 점을 활용해 벤츠·BMW·아우디 등 프리미엄 메이커를 적극 공략할 계획이다.



 선박의 경우는 현재 EU의 관세율이 2.7%로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선박 한 척이 워낙 비싸 선주 입장에서는 2.7%만 값이 떨어져도 큰돈을 아낄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선박의 매력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최근에는 유가가 오르면서 값싼 중국 배보다 연비가 훨씬 좋은 한국 배를 찾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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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는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업종으로 꼽혔다. 컬러TV·모니터(14%) 등에 붙던 높은 관세가 없어지지만, 이미 유럽 판매분의 거의 100%를 현지 공장 생산분으로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또 휴대전화와 반도체 등은 현재도 관세가 없다. LCD도 현재 관세가 붙지 않는 패널 형태로 유럽 공장에 보내서 조립한 완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EU와의 FTA로 햇살을 볼 중소기업들도 있다. KOTRA는 LED 조명, 위성방송수신기, CCTV 카메라, 디지털도어록 등을 만드는 업체들을 꼽았다. 중기 생산품 중에 지난해 유럽 수출이 크게 늘어난 것들로, 관세마저 없어지면 수출 증가세가 더욱 클 것으로 예측된다. LED조명의 경우엔 관세 철폐에 유럽의 백열전구 사용 금지라는 호재까지 겹쳤다.



 기계 분야는 피해 업종으로 분류된다. 유럽이 워낙 강한 분야다. 부품·소재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유럽산 기계·부품·소재가 일본제를 대치해 대일 무역 역조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섬유·패션 업계는 창과 방패를 동시에 얻었다. 쌍방 모두 가격 경쟁력이 생긴다. 유럽 시장도 넓어지겠지만, 넘쳐 들어올 유럽 브랜드로부터 국내 시장도 지켜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잖아도 스웨덴의 H&M, 스페인의 자라 등 유럽의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LG패션 김인권 팀장은 “신제품을 더 자주 출시하는 등의 전략으로 유럽 패션 브랜드의 공략에 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화장품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한국 시장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대형업체는 물론, 대중 시장을 겨냥한 중소업체들까지 몰려들 것이어서 국내 화장품 업체들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는 처지다. 화장품협회 관계자는 “현재 한국 시장에서 외국 브랜드의 점유율은 35~40% 선이지만, FTA 발효 5년 후 관세가 완전 철폐되면 국산과 외산의 점유율이 역전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브랜드숍 ‘잇츠스킨’을 운영하는 한불 화장품 정해영 팀장은 “유통 채널을 국내 브랜드들이 장악하고 있고, 신제품을 내놓는 속도도 빨라 중저가 쪽은 유럽산 화장품들의 진입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반대 견해를 내놨다.



 우유 같은 유제품 업계도 걱정이 태산이다. 유럽산은 값이 싸고 품질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금까지는 36%(치즈)~176%(전지분유)에 이르는 높은 관세가 국산 제품을 지켜주는 보호막 역할을 했다. 하지만 앞으로 관세가 사라지면 유럽산이 물밀 듯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요구르트와 아이스크림 등의 원료인 탈지분유의 경우 국내산은 1㎏에 7000원 수준인데, 유럽산 탈지분유는 ㎏당 3000~4000원에 유통될 전망이다. 이 시장을 유럽산에 뺏기면 국내산 원유 수요가 줄어든다. 결국 젖소 목장까지 타격을 입는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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