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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15) 수퍼스타 핸디캡, 우즈와 웨스트우드의 경우

중앙일보 2011.05.06 00:16 경제 22면 지면보기






타이거 우즈 (오른쪽)와 웨스트우드가 지난 2월 벌어진 두바이 데저트 클래식에서 함께 라운드 하고 있다.



수퍼스타 핸디캡이라는 것이 있다. 전성기 아널드 파머와 한 조에서 경기한 선수들은 라운드당 2타 정도 손해를 본다는 각오를 하고 티샷을 했다. ‘아니(아널드의 애칭)의 군대’라고 불린 파머의 열성적인 팬들은 그들의 영웅을 일방적으로 응원할 뿐만 아니라, 상대를 야유했기 때문이다. 파머의 라이벌이었던 잭 니클라우스 등 많은 선수들은 이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들은 파머가 “상대 선수를 야유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은근히 이를 유도한다고 의심했다.



스캔들 이전 타이거 우즈와 함께 경기하는 선수도 무척 힘들었다. 우즈는 존재 자체가 커다란 부담인 데다 갤러리라는 플러스 알파가 더해진다. 우즈는 『나는 어떻게 골프를 하나』라는 책에서 “상대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매우 유리하다. 나는 마인드 게임을 좋아하며 그것은 골프라는 게임의 일부”라고 썼다. 우즈의 코치였다가 갈라서 사이가 틀어진 교습가 부치 하먼은 “우즈가 갤러리를 이용해 상대를 압박한다”고 주장했다. 하먼에 따르면 우즈는 짧은 거리에서도 가능하면 상대보다 먼저 퍼트를 해 홀아웃한다. 우즈가 홀아웃하면 갤러리는 좋은 자리를 잡으려 다음 홀로 대거 움직이는데 남은 선수는 그 소란 속에서 퍼트를 해야 한다. 하먼은 또 우즈가 티잉 그라운드엔 되도록 늦게 도착한다고 했다. 우즈에 대한 박수 소리에 위축된 상태에서 상대가 티샷을 하게 만든다는 거다.



한국에서도 이런 핸디캡은 있다. 최경주나 박세리 같은 대스타와 함께 경기하는 선수들은 성적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 지난해 신한동해 오픈에서 최경주와 함께 경기한 선수들은 약속이나 한 듯 오버파를 쳤다. 최경주가 우즈처럼 상대의 기를 누르는 전략을 쓰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스타의 아우라와 그를 일방적으로 응원하는 갤러리 때문에 위축되기 마련이다. 갤러리는 최경주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은 소란 속에서 퍼트를 할 때가 많다.



수퍼스타도 불리한 점은 있다. 모든 움직임이 갤러리와 TV 시청자를 통해 감시되기 때문에 조그만 룰 위반도 발각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스타급 선수들은 많은 관중에 익숙하며 의도했든 안 했든 이런 저런 도움을 받는다. 갤러리 때문에 공을 잃어버릴 염려가 거의 없고 룰 판정에서 무명 선수보다 호의적인 판결을 얻어낸다. 그래서 스타급 선수들은 갤러리가 많은 곳에서 경기하는 것을 즐긴다. 수퍼스타 핸디캡은 스타와 함께 경기하는 선수가 짊어져야 할 짐이다.



골프 역사가 길지 않아 갤러리 문화가 성숙하지 않은 나라에서 수퍼스타의 핸디캡 양상은 거꾸로 될 수 있다. 지난해 신한동해 오픈 최종라운드에서 최경주는 티샷을 하던 중 갤러리가 갑자기 다가서는 바람에 움찔해 OB를 내면서 우승을 놓쳤다.



세계 랭킹 1위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도 한국에서 열린 발렌타인 챔피언십에서 카메라 소리에 손해를 봤다. 특히 경기 운영요원이 갤러리를 통제하지 못한 1라운드에서 고생이 가장 심했다. 기자는 웨스트우드가 갤러리 때문에 최소한 3타를 잃은 것으로 본다. 팬들에게 열린 마음을 가진 웨스트우드가 아니라 타이거 우즈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분위기는 다소 험악해졌을 것이다. 우즈의 캐디인 스티브 윌리엄스는 갤러리나 사진기자 등이 경기를 방해한다고 느끼면 카메라를 빼앗아 집어 던져버린 일이 몇 차례 있었다.



수퍼스타 핸디캡이 좋은 것은 아니다. 모든 선수가 가능한 동등한 조건으로 경기를 해야 한다. 그래도 이 핸디캡이 거꾸로 적용되는 것은 가장 나쁜 경우다. 갤러리는 평범한 선수가 아니라 최고 선수의 베스트 샷을 보러 대회장까지 나온다. 만약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불리한 조건이 된다면 정상급 골퍼들은 한국을 찾지 않을 것이다. 명연주자들 사이에서 어떤 나라의 관객의 에티켓이 안 좋다고 소문이 나면 그 나라가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세계 최고 선수가 한국을 외면하면 가장 큰 피해자는 한국의 갤러리다.



웨스트우드는 악조건 속에서도 우승했다. “하루 하루 조금씩 좋아진 갤러리 에티켓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핸디캡을 이겨낸 정신력과 소탈함, 불평하지 않는 태도, 무엇보다 세계 1위에 걸맞은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에 감사한다.



성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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