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입하

중앙일보 2011.05.06 00:11 종합 33면 지면보기








오늘이 입하(立夏)다. 지금은 잊고 지내지만 예전에는 입춘(立春)·입추(立秋)·입동(立冬)과 함께 사립(四立)으로서 중시했다. 임금은 각 절기마다 다섯 근교를 뜻하는 오교(五郊)에 각각 제사 지내는데 입춘에는 동교(東郊), 입하에는 남교(南郊)에서 적제(赤帝)와 축융(祝融)에게 제사 지냈다. 적제는 남방을 맡은 신으로서 적정(赤精)이라고도 하고, 축융은 불을 다스리는 화신(火神)이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자연의 섭리를 높여서 여름 길목에서 불의 신에게 제사 지낸 것이다.



 『후한서(後漢書)』 ‘제사지(祭祀志)’에는 “입하일에는 남교에서 적제와 축융에게 제사 지내는데 전차의 깃발과 복식은 모두 붉은색을 사용했고, 주명가(朱明歌)를 불렀다”고 전한다. 오색(五色)에서 붉은색은 여름 색이고, 주명(朱明) 또한 여름이란 의미로도 사용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삼국사기』 ‘제사지(祭祀志)’는 “(신라는) 입하 뒤 해일(亥日)에 신성 북문에서 중농신(中農神)에게 제사 지냈다”고 전한다.



 고려에서는 입하 때 임금에게 얼음을 바쳤다. 『고려사』 정종(靖宗) 2년(1036)조에 보면 정종이 “금년은 일찍 덥지 않으니 5월에 얼음을 바치라”고 명했다. 그러자 담당 부서에서 “얼음은 춘분에 시작해서 입추 때 다하는 것이 사용법인데, 5월에 얼음을 바치면 옛법에 어긋나서 음양을 순조롭게 하려는 뜻에 어긋난다”고 주장해 그대로 입하에 바치게 했다.



 조선 후기 서영보(徐榮輔) 등이 편찬한 『만기요람(萬機要覽)』에 따르면 입추는 불씨를 갈아서 반포하는 날이었다. 『만기요람』 ‘군정(軍政)’의 ‘형방개화(刑房改火)’조에 따르면 조정에서는 1년에 다섯 차례, 즉 입춘, 입하, 토왕일(土旺日), 입추(立秋), 입동(立冬)에 각각 불을 갈아서 각 전궁(殿宮)에 올리고 민간에 반포하는데, 입하에는 ‘살구나무 판[杏板]에 대추나무 기둥으로 불을 일으킨다’고 전하고 있다. 토왕일은 오행(五行) 중 토(土)의 기운이 왕성한 절기를 뜻하는데, 한 번에 18일씩, 일 년에 네 번 총 72일이 된다. 입하에는 검은 오미반(烏米飯)을 먹는데 청정반(靑精飯)이라고도 한다. 원래 도가(道家)에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불가(佛家)에서도 사월 초파일에 공양(供養)했다고 전한다. 민간에서는 입하에 들깨를 심었다. 현대인은 대부분의 절기를 잊고 산다. 절기에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여겼던 선인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