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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오마주 투 코리아’ 단상

중앙일보 2011.05.06 00:09 종합 33면 지면보기






정재숙
문화스포츠부문 에디터




오래전 1970년대의 기억이다. 외국 항공기의 1등석에서 잠을 청하던 우리나라 한 정치인은 수면용 안대 귀퉁이에서 ‘Made in Korea(메이드 인 코리아)’를 발견하고 감격해서 눈물이 났다고 술회했다. 이 일화는 요즘 세대로서는 이해하기 힘들 게다. 60년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의 수출품목이 광물, 합판, 머리카락 따위였으니 비록 하찮은 물건이어도 ‘메이드 인 코리아’를 보고 감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간혹 1960년대에 제작된 한국영화를 볼 때면 화면의 주변부를 외려 더 주시하게 된다. 이를테면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남루한 거리의 풍경 같은 것. 먼지를 뒤집어쓴 잿빛의 나지막한 지붕들이 끊임없이 이어질 때 가슴 한구석이 아려 온다. 오죽하면 자연조차도 너무나 황량하고 빈곤해 보인다. 아마 나무들마저 모두 땔감으로 베어 쓴 탓이겠지.



 지금의 기성세대가 자랄 때는 ‘라인 강의 기적’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러나 독일의 부흥을 일컫던 ‘기적’은 장차 이 땅의 몫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해 변변한 천연자원도 없이 이렇게 ‘잘나가는’ 나라는 매우 드물다. 그래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들어와 갈등을 겪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인터뷰할 때면 으레 그 점을 강조한다. “한국도 예전엔 못살았잖아요!”



 이런 기적의 나라이니 과연 ‘상찬(賞讚)’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오마주 투 코리아’라는 곡을 쓴다고 했을 때 이런저런 상념이 떠올랐다. ‘오마주’는 경의와 헌신, 충성을 의미하는 단어다. 따라서 충분히 가능한 제목이겠지만 어쨌거나 나라 이름과 결부시켜 사용하는 예가 흔치는 않으니 말이다. 그보다는 주로 예술가를 존경하는 의미로 쓰이는 듯하다.



 그런데 현장에서 취재하던 어느 서양 기자는 이 배경음악이 한국적인 것인지는 몰랐고 다만 뭔지 모를 멋진 곡이 흘러나오더라고 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모토가 완벽하게 실현되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변 관객들을 붙잡고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이 아름다운 곡이 한국 고유 음률과 가락으로 만든 거랍니다!” 사실이지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그곳 러시아 모스크바의 아이스링크에 있었다면 아리랑 곡조와 판소리 가락이 울려 퍼질 때 어찌 감동받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하물며 텔레비전 중계를 본 이들도 감동에 겨워했으니.



 하지만 냉정히 따져 보자면, 김연아는 혹시 그 곡 때문에 예술점수에서 손해 본 것은 아닐까 싶다. 김연아의 몸짓에서 발현되는 예술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말이다. 음악적 수준에 관한 판단을 떠나서 피겨스케이팅의 서구적 속성을 고려해 본다면 ‘오마주 투 코리아’의 선택은 모험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김연아는 이미 챔피언이며 여왕이었 다. 점수로는 손해 볼 수도 있을 선택을 넉넉히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진정한 챔피언이기에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김연아의 ‘오마주 투 코리아’는 우리의 조바심과 넉넉함의 경계에서 벌어진 상징적인 퍼포먼스였다. 아마 이 ‘오마주 투 코리아’가 반복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마주 투 USA’ ‘오마주 투 러시아’라는 제목을 떠올려 보자. 생뚱맞지 않은가. 한 국가사회가 의인화되어 인간승리를 자찬할 때, 그것은 곧 지지리도 못살던 궁상맞은 기억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 제목만을 놓고 보면 외국인들은 둘 중 하나를 떠올리지 않을까. 즉 코리아는 경관이 아주 빼어난 자연친화적인 나라이거나, 아니면 최근 몹시 힘든 일을 겪고 재기한 나라이거나.



 국격(國格)이란 벼락부자 뻐기듯 해서 얻어지는 건 아니다. 인류 보편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는지도 한번쯤 돌아보고 자랑스러워하거나 부끄러워할 때가 되었다. 당장 내년 올림픽 때는 금메달 개수에 좀 둔감해져 보자. 다소간 의젓하게.



정재숙 문화스포츠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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