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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의 시시각각] ‘나가수’와 ‘나작가’

중앙일보 2011.05.06 00:08 종합 34면 지면보기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굳이 이름 붙이자면 ‘원형경기장 증후군’ 같은 게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고 느낀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글래디에이터’나 얼마 전 시즌2가 끝난 드라마 ‘스파르타쿠스’에서 강렬하게 묘사된 로마 시대 원형경기장 말이다. 검투사들이 어떻게 경기장에 내몰리게 됐는지 따지기엔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격투 장면이 너무나도 급박하고 생생하다. 관중들로서는 당장 눈앞에서 펼쳐지는 승부에 열광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맨몸에 기본적인 전투 장비만 갖추고 대결하므로 매우 ‘공정’해 보인다. 불공정한 세상에 시달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선 가뭄의 단비 같은 공정성이다.



 ‘슈퍼스타 K’에 이어 ‘위대한 탄생’ ‘나는 가수다(나가수)’ 같은 서바이벌 예능 TV프로그램들이 선풍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별 볼일 없던 사람’이 ‘공정한 과정’을 거쳐 ‘성공’하는 드라마를 우리 사회가 얼마나 원하는지 새삼 느꼈다. 신인 아닌 기성 가수가 대결하는 ‘나는 가수다’라면 속곳까지 벗어제끼고 실력만으로 다투는 ‘진정성’이 감동거리 아니겠는가.



 급기야 문학판에도 짝퉁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이름은 ‘나는 작가다’. 출판사 자음과모음이 이달 1일 시작한 신인작가 공모전이다. 자유롭게 소설 주제를 정해 출판사에 신청하면 1단계로 인터넷 카페에 연재를 시작할 수 있다. 연재 분량이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100장이 되면 편집자·독자의 평가를 거쳐 연재 지속(2단계) 여부가 결정 난다. 독자 평가는 페이지뷰 수나 파워블로거 등으로 구성된 독자평가단에 맡긴다고 한다. 500장이 되면 다시 연재 3단계로 갈지 탈락할지 갈라진다. 3단계에서는 평론가·작가가 작품의 전체적인 구도나 방향에 대해 조언을 해 주며, 창작지원금이 지급된다. 800장 이상으로 작품이 완성되면 전자책으로 출판된다. 뛰어난 작품은 종이책으로도 발간한다.



 출판사 측은 ‘나는 작가다’라는 이례적인 기획에 대해 “문학의 자폐성(自閉性)을 탈피해 독자와 소통하는 문학, 경계 없는 문학을 지향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기존 신춘문예나 문예지 공모전은 벽이 너무 높으므로 보다 널리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것이다. 작품도 순문학이든 판타지든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몇몇 기성 문인에게 ‘나는 작가다’에 대해 물어보니 거의가 고개를 저었다. “대중 앞에서 노래하는 것과 홀로 원고지와 씨름하는 작업이 같을까” “예술은 안목이 중요한데 일반 독자에게 평가를 맡길 수 있나” “페이지뷰와 댓글에 신경 쓰며 연재한 작품이 과연 어떻겠나” 등등이었다. “우리 문학이 이젠 여기까지 왔나 싶다”는 탄식도 들었다. 어제 연재 코너에 올라 있는 소설 29편을 훑어보니, 내 낮은 눈에도 다른 건 제쳐놓고 문장·어휘의 기본이 안 된 작품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하지만 몇몇은 어느 정도 수준이어서 앞으로의 전개가 적이 궁금했다.



 출판사가 내건 기획 의도와는 별도로, 문학판에까지 ‘나는 ○○다’가 등장한 것은 일단 흥행성이 엿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흥행성의 배경에 무엇이 있을까. 저 공정해 보이는 원형경기장에 나도 뛰어들고 싶은 심리 아닐까. 아득히 높아만 보이는 기성 문단의 엘리트주의를 향해 ‘나도 작가다’ 또는 ‘너만 작가냐’라고 외치고 싶은 대중의 마음 아닐까. 기성 가수든 문인이든 정치권력이든, ‘너희가 뭔데. 나도 있다’라는 항변 말이다. 그래서 투표할 때도 깎아놓은 밤 같은 후보보다는 천상병 시인이 환생한 것 같은 외모의 최문순 후보에게 표를 주고픈 심리가 발동한 것 같다. ‘위대한 탄생’이란 명칭도 ‘위대’하지 못한 데다 태어난 것도 ‘탄생’이 아니라 그저 ‘출생’에 불과한, 왠지 억울한 느낌을 품고 있는 일반 국민의 정서에 기댔을 것이다. 부정(不定)과 참여와 도전이랄까. 뭔가 거센 흐름이 사회 저변에서 요동치고 있다. 정치 하기 점점 힘들어지게 생겼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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