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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효도화

중앙일보 2011.05.06 00:06 종합 35면 지면보기








예부터 노인의 잔치에 빠지지 않았던 게 복숭아다.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복숭아꽃을 바치거나 상 위에 복숭아가 담긴 바구니가 놓였다. 복숭아꽃을 바치는 게 헌도(獻桃) 혹은 공도(供桃)다. 복숭아를 수(壽)로 여겼기에 헌수(獻壽) 혹은 공수(供壽)라고도 했다. 회갑 선물로 복숭아 그림을 주기도 한다. 그림을 받는 사람의 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다.



 복숭아꽃은 우리 민족을 비롯한 동양에서 신선화(神仙花)로 불렸으며 불로장생을 상징했다. 도연명이 『도화원기』에서 묘사한 무릉도원은 복숭아꽃이 만발한 별천지다. 늙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는 사람들, 즉 신선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서왕모(西王母)를 비롯한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선녀들만 산다는 요지궁에도 사철 복숭아꽃이 가득 피어난다. 중국 전한(前漢)시대 동방삭이 몰래 숨어 들어가 천도복숭아를 훔쳐 먹고 삼천갑자(三千甲子·1만8000년)를 살았다는 속설에 등장하는 바로 그곳이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 투도도(偸桃圖)는 동방삭과 훔쳐온 복숭아를 담고 있다.



 잔치에서 복숭아꽃을 바친 전형은 조선 정조가 수원 화성행궁에서 연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인 진찬연(進饌宴)이다. 정조는 어머니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복숭아꽃 3000 송이를 바쳤다. 바로 헌수다.



 정조가 바친 꽃은 생화가 아니라 지화(紙花)다. 지화는 한지를 여러 겹 접어 만든 종이꽃이다. 지화는 단순한 가화(假花)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삶 속에 녹아 있는 혼(魂) 같은 것이란 얘길 듣는다. 궁중의 각종 행사에서부터 여염집의 혼례상이나 잔칫상 치장하는 데 지화가 쓰였다. 장원급제자에게 내리는 어사화(御賜花)도 지화요, 상여를 덮는 꽃도 지화다. 불가나 도가, 무속에서도 정성을 담는 상징이 지화였다. 향기 없는 지화지만 정성이 담겨 있기에 생물인 생화보다 더 깊은 향기를 가진 것으로 여겨졌을 터다.



 어제 수원시 청소년문화센터에선 청소년들이 직접 한지 복숭아꽃을 만들어 함께 온 부모에게 달아주는 행사가 열렸다. 이른바 효도화(孝桃花)란다. 수원시청소년육성재단이 어버이날을 앞두고 펼치는 ‘효도화 달기 캠페인’의 일환이다. 서양 풍습에서 온 카네이션을 한지 복숭아꽃으로 대신하자는 거다. 자식이 달아주는 꽃이라면 무슨 꽃인들 기쁘지 않겠나. 하지만 효(孝)와 무병장수의 의미가 담긴 복숭아꽃이라면 부모의 기쁨이 더할 성싶다. 부모들 가슴에 효도화가 얼마나 달리게 될지 기대해 볼 일이다.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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